1965년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후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국가경제 전체의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도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0.7% 하락했다. 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부터 연속 3분기에 걸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언뜻 보면 소비자물가가 감소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저물가가 지속된다면 내수침체가 가속화하고 소득 감소로 이어져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물가가 급속히 하락한 것이 수요 측면보다 농산물이나 국제 원유 가격의 변화에 따른 공급 측 요인이고 일시적 변동성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주요 거시경제 지표와 글로벌 경제 환경의 움직임을 보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디플레이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해외 투자은행들이 한국의 거시경제 펀더멘털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견과 함께 1%대 성장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이 9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고 민간소비의 증가세도 완연히 둔화되고 있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정부부문의 성장률 기여도가 1.2%포인트인 반면에 민간부문의 기여도는 오히려 마이너스 0.2%포인트로 나타난 것을 보면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로 그나마 경제성장률 1%대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는 저성장·저물가·저금리라는 이른바 3저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유럽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독일의 2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0.1%를 보였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영국의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내홍에 휩싸인 홍콩의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 0.4%로 나왔다.
저성장으로 인한 실물경제의 악화는 저금리로 이어진다. 일본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만 나타나던 마이너스 금리 현상이 독일·프랑스·스위스를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던 미국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실제로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미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가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역전됐다. 일반적으로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로 인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게 책정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단기금리가 더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 경우 대체로 미국은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하고 글로벌 경제의 동반 하락이 본격화된다면 대외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여건상 물가하락과 경기 침체가 복합된 디플레이션 국면을 피하기 어렵다.
0%대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불확실성을 양산하는 정부를 고려하면 디플레이션을 동반한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기우는 아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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