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칼럼=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 경제가 시계 제로, 위험천만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지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많은 국내 기업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과의 경제 전쟁터로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토로한 백악관은 새로운 먹잇감을 노리는 듯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지 않는다.
이 와중에 북한은 청와대를 조롱하며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한 미국이 한국에 새로운 전략무기를 배치한다면 한국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는 형국이다.
대외 환경의 급속한 악화는 이미 휘청거리는 한국 경제에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이 높다.
첫째, 미국의 경제 보복이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안보를 이유로 한국 철강 수입 쿼터를 더 줄이거나 한국산 자동차를 건드릴 명분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돈세탁방지법이나 이란과 북한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삼국 제재) 위반을 내세우며 한국의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한두 개를 작심하고 손볼지도 모른다.
화웨이 제재에 소극적인 한국 기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는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도 참여국에 대중 공동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의했었다.
미군 주둔에 따른 한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을 갑자기 몇 배나 올리려는 무모한 시도는 한국을 더 이상 동맹국으로 예우하지 않겠다는 워싱턴의 기류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악에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나서 개정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맞춰 미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개정하자고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둘째, 일본과의 확전 가능성이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고 한국은 이에 지소미아 폐기로 맞대응한 상태다.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외교적 불만을 통상 보복으로 들고나온 일본이나 통상 문제를 안보 협정의 폐기로 나온 한국이나 교차 보복이라는 방식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다만 지금의 갈등이 수출 금지로 현실화하면 불리한 쪽은 우리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기술 수준과 시장 규모에서 좁히기 힘든 간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기업들은 확전이 아닌 서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외교·통상 관계의 복원을 원하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의 정부 대응책은 지친 기업에 피로감을 더할 뿐이다.
셋째,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 현상이다. 많은 해외 학자들은 한국이 미국 시장에서의 중국산 대체 가능성이나 중국 시장에서의 미국산 대체 가능성이 모두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대체 투자처로서도 한국은 대만·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에 뒤져 인기가 없다.
만약 미국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30%로 높인다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1~1.5%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대미 결사 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돈은 글로벌 안전 자산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과 중국에 부품·소재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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