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한·일 경제 분쟁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국가 간 경제 분쟁의 한·일 수정판

[강문성의 경제돋보기] ‘잘사는 한국’이 불편한 일본 보수 고령층



[한경비즈니스 칼럼=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일본은 7월 1일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하고 이어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이러한 일본의 결정에 대해 한국 정부 역시 일본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하고 더 나아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까지 고려하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고 당분간 양국의 상호 강경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한·일 경제 분쟁은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각종 국가 간 경제 분쟁의 한·일 수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미·중 무역 마찰에서 나타난 미국의 중국 견제가 일본의 한국 견제로 주체가 바뀌어 나타났고 영국의 고립주의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기저에 존재하는 반외국인 정서가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으로 투영될 수 있다.

즉 기술 패권, 상호 견제, 반외국인 정서 등에 기반한 경제 분쟁에 한·일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역사적 불편한 관계가 반영된 것이 한·일 경제 분쟁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아베 신조 행정부의 등장으로 이러한 경제 분쟁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 분쟁을 기획하고 실제 정책으로 시행한 것은 아베 행정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일본 보수층의 불편한 심기는 그 이전부터 있어 왔고 이러한 불편한 심기를 정책으로 반영한 것이 아베 행정부라고 해석해야 한다.

일본의 보수 고령층은 과거 일본보다 지극히 못살던 한국이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육박할 정도로 잘살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부문에서는 오히려 일본을 능가한다는 게 불편한 것이다.

미국 백인층에 확산돼 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과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견제 요구를 정치 이슈화하고 정책으로 승화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이라면 일본 사회 기저에 깔린 반한 감정과 견제 요구를 정책적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아베 행정부라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 반외국인 정서, 보호무역주의적 정책 수요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외에도 영국의 고립주의와 브렉시트, 세계무역기구(WTO)의 위기 등으로 국제 질서, 특히 국제 통상 질서의 큰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향후 국제 통상 질서는 다자 무역 체제의 약화, 지역 무역 체제보다 현안 위주의 양자 간 협상 우선 등으로 체제의 변화가 예상되며 그동안 확산되고 심화돼 온 글로벌 가치사슬 역시 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일본과의 경제 전면전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하되 냉철한 감성으로 임해야 한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대응은 지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국제 통상 질서의 변화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 세계는 현재 국제 질서, 특히 국제 통상 질서의 변곡점에 직면해 있다. 미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와 관련한 국제적 논의를 파악하고 분석해 우리의 대응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글로벌 가치사슬 약화에 대비해 국내 공급 사슬을 확충하고 경제 생태계 복원에 정책적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7호(2019.08.12 ~ 2019.08.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