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 사후 항우와 유방은 패권을 놓고 싸우게 된다. 이때 초나라 희왕은 관중을 차지하는 자가 중국의 왕이 될 것이라는 숙제를 던지고 내심 유방을 지원한다.
항우가 황하강 북쪽 방향으로 거록을 거쳐 관중 지역을 돌아올 때 유방은 황하 남쪽으로 진군하면서 두 달 정도 빨리 관중 땅으로 들어와 진나라 도성인 함양에 입성한다.
이 소식에 화가 난 항우가 함양성에 들어서자 유방은 자신의 군대를 패상(覇上)에 물린 후 홍문에 주둔해 있던 항우를 찾아 나선다. 자신을 ‘신(臣)’이라고 낮추며 항우를 치켜올리자 이내 마음이 부드러워진 항우가 연회를 여는데 이것이 ‘홍문의연’이다.
이때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 유방을 시해할 것을 계획하고 항우의 사촌인 항장에게 칼춤을 추다가 유방을 찌를 것을 주문했으나 유방의 책사인 장량과 오랜 친구이면서 그에게 천문학을 배웠던 항우의 또 다른 사촌인 항백이 이런 음모를 미리 알려준다.
장량은 연회 중 개 도축업자 출신의 유방 심복이었던 번쾌 장군을 불러 ‘항장무검, 의재패공’을 일러주며 항장의 칼춤을 막아섰고 결국 범증과 항우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유방을 제거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놓친 후 72번을 싸워 71번 승리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였지만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 유방에게 딱 한 번 패함으로써 자신과 우희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사면초가(四面楚歌)’도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로, 이런 내용은 ‘패왕별희(覇王別姬)’로 전해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항우(미국)가 패공(유방·중국)을 죽이고 자신의 사촌 동생인 항장(한국)을 시켜 칼춤을 춘다(사드 배치).”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 미국은 독일엔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일본엔 1983년 이후 무역 전쟁을 통해, 1991년 구소련의 붕괴를 통해 글로벌 절대 패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특히 1983년 이후 일본과의 무역 전쟁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종결됐고 일본은 이후 ‘잃어버린 20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연 미국이 존 미어샤이머 유형의 밀어붙이기식 무역 전쟁과 갈등을 통해 중국과의 패권 다툼을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키신저와 같은 점진적 힘 빼기를 통해 글로벌 패권을 공고히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역사적 빅데이터를 놓고 보면 일단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형태로 보인다.
전선을 여러 개 펼치는 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 갈등은 그 본질이 무역 불균형에 있지 않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대미국 수출 의존도는 16% 남짓이다. 미국 역시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3%대에 불과하다. 그러니 무역 불균형이 본질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이에 대한 기술과 자본의 패권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향후 20~30년 후 디지털 기술은 ‘양자컴퓨터 시대’의 출발로 다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단지 3회전 세계 헤비급 UFC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1회전을 탐색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뿐이다.
혹자는 1961년 세워졌다가 1989년 무너진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편, 중국 편으로 편 가르기가 이뤄지는 것을 묘사한다. 누가 항우고 누가 유방일까. 일본은 항우의 사촌 항장일까, 항백일까. 북한은 번쾌일까. 우리는 범증일까, 장자방일까. 새로운 경제 장벽이 세워지고 있는 이때 강동육주를 되찾아 온 서희와 같은 전략가가 중요한 시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9호(2019.06.17 ~ 2019.06.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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