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차은영의 경제돋보기] 정책 실패에 멍드는 공기업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공공 기관들의 부채가 머지않아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3년 498조5000억원에서 2017년 472조3000억으로 4년 동안 감소세를 보여 왔던 공공 기관 부채가 작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22년까지 67조원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공공 기관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르면 올해 주요 공공 기관의 부채는 491조8000억원으로 추산돼 전년 대비 11조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 기관의 부채 규모는 2020년 506조2000억원, 2021년 520조6000억원, 2022년 539조원까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발표된 시장형 공기업들의 악화된 실적을 보면 사정이 심각하다. 시장형 공기업은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이고 총수입액 중 자체 수입액이 85% 이상인 공기업을 지칭한다. 공기업의 속성상 영리만 추구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수익성이 보장돼야 지속적인 공공 서비스가 가능하다.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 탈원전 정책 기조는 에너지·사회적 인프라 분야 공기업의 부채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던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순손실이 1조원이 넘었다.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던 한국동서발전을 비롯한 발전사들도 적자로 돌아섰다. 디테일한 계획과 대안 없이 정치적으로 던진 탈원전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결과다.

한국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의 부채도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1만 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여전히 노조의 농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업의 재무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올해 공공 기관 신규 채용 규모를 기존 2만3000명에서 2만5000명 이상으로 늘리고 53조원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포퓰리즘에 편승한 정책으로 일방적으로 돈을 풀어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논리지만 결과적으로 공공 기관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고 비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은 자명하다.

어렵게 노사 간 대타협을 이룬 성과연봉제도 대부분 폐기됐고 주52시간 근무제도 공공 기관이 선봉에 서는 분위기다. 성과제에 대한 절충안으로 제시했던 직무급제도 노조에 밀려 실행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공공 기관 임금피크제도 보완하겠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후퇴할 공산이 크다. 무소불위의 노조로 인해 공공 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막는 공공 개혁은 백지화되고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은 정부가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추진하는 경기 진작 정책의 일종이고 그 결과 실업자 수가 오히려 늘어났다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자리인 척하는 일자리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첫째 과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인 척하는 일자리’를 국민의 세금으로 양산할 뿐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은 도외시하고 있다. 공공 부문의 과도한 팽창은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공기업은 실패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실험 대상으로 삼기에는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중요한 공공 서비스 공급자다.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정책 실패의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