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옥우석의 경제돋보기] 스웨덴 말뫼와 혁신 성장의 비밀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 경제가 과거 고도성장 시절 투입에 의존한 양적 성장 체제에서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질적 성장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담론이 시작된 지 거의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를 반영해 과학기술 측면에서 한국은 2006~2016년 10년간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은 2.83%에서 4.24%로 증가해 세계에서 둘째, 같은 기간 경제활동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는 6.2명에서 13.3명으로 증가해 세계에서 셋째로 높은 수준을 차지하는 등 R&D 투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경험했다. R&D의 성과 측면에서도 과학기술 논문 수가 세계에서 열둘째로 많고 미국·일본·유럽에 등록된 특허의 수도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혁신과 효율성 개선이 기여하는 정도는 여전히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작년 한국은행은 2016년에서 2020년까지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0.7%까지 하락, 잠재성장률 하락에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해 기술과 혁신의 중요성은 곳곳에서 설파되고 있지만 정작 국내 R&D 시스템은 과거 추격형 모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한국 R&D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거론하면서 매우 중요하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분야는 바로 산학 협력 관련 사항이다. 최근 지역 산업 혁신에서 대학은 매우 중요한 참여자로 부각되고 있다. 스웨덴의 말뫼라는 소도시에서는 1970년대까지 주력 산업이었던 조선소가 있던 자리에 말뫼대를 유치해 바이오·IT·재생에너지 등 신산업을 위한 인력과 기술을 공급했다. 그 결과 수백 개의 첨단 신생 기업과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로 부흥에 성공한 바 있다. 이 밖에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 일본 요코하마의 요코하마국립대 등 대학이 지역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좋은 성과를 거뒀던 예들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 말뫼와 같은 감동적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이 대학과 연구자 평가에서 산학협력 실적보다 국제 학술지 연구 논문 게재를 우선시하고 있어 대학의 연구자와 기업 사이에 유인과 방향성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부도 산학협력 실적을 대학과 개인 평가에 더 잘 반영하기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수용하는 대학들도 많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 현장에서 산학협력의 양과 질이 과거보다 많이 늘고 있다고 체감하기 어렵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국가 R&D 시스템이 공급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연구자가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면 현재 여러 부처가 분산적으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운영하면서 각자 고유한 규정과 정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규정과 정산 시스템이 복잡해 대학과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행정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때때로 의도하지 않게 위법에 이르기까지 한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규정은 2011년 제정돼 시행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 등에 대한 규정’으로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부분적인 개정만 반복됐고 더군다나 모든 부처가 이 규정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최근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에서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한 간담회에서 전국 대학 산학협력단장들은 입을 모아 입법을 환영했다. 다만 국가 연구·개발과 관련된 해묵은 과제가 정치적 논리에 휩쓸려 폐기되지 않도록 대학과 산업이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국회의 회기가 내년에 종료된다는 점은 대학과 기업의 마음을 더욱더 급하게 만들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8호(2019.04.01 ~ 2019.04.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