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고객’ 중국인 방문 뜸해지면서 매출 비상…중국 본토 박람회도 대부분 연기
코로나19에 비상 걸린 ‘전시 강국’ 독일
[베를린(독일) = 이유진 유럽 통신원]전시 산업의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시 산업은 전 세계에서 관련 업체와 방문객들이 몰려드는 산업의 특성상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우려가 높은 분야 중 하나다.

특히 그동안 전시 산업의 ‘큰손’으로 군림하던 독일 전시 산업 또한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독일에서 개최되는 박람회 방문객 수가 줄어들고 있고 독일이 중국 현지에서 기획하던 박람회도 줄줄이 취소됐다.
코로나19에 비상 걸린 ‘전시 강국’ 독일
◆독일 전시 산업 규모 40억 유로 달해

독일은 전시 산업의 양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전시 산업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는 곳이다. 전 세계 매출 상위 15위의 전시 기업 중 7곳이 프랑크푸르트 전시회, 쾰른 전시회 등 독일 회사다. 독일 전시산업협회(AUMA)에 따르면 매년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전시회와 국내 전시회는 160~180여 건이다. 이들 전시회엔 18만여 개의 업체가 참가하고 방문객 수는 1000만 명에 이른다. 독일 전시 기업의 총매출액은 2018년 기준으로 40억 유로(약 5조14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국제 박람회는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업의 60%가 외국 기업이고 방문객의 30% 정도가 외국인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고객’은 바로 중국이다. 매년 독일 박람회에 참가하는 중국 기업은 1만7500여 곳, 전시회를 방문하는 중국인 산업 관계자는 11만 명으로 추산된다.

전시 산업의 강국답게 독일은 1월부터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물론 분위기는 좋지 않다. 전시회마다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이 수치로 나타난다.

지난 1월 말 뉘른베르크 전시회가 주최한 장난감 전시회(1월 27~31일)에서는 참가를 예정했던 중국 업체 300여 곳이 대부분 참가했다. 다행히도 중국발 항공편이 오가던 때였다. 참가 취소를 알린 중국 업체는 두 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전시회 종료 후 집계해 보니 박람회에 참석한 산업 관계자 수가 전년도에 비해 3400여 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박람회 측은 이를 코로나19의 여파로 분석했다.

쾰른에서 2월 2~5일 열린 국제 제과·단과류 박람회에서는 중국 참여 업체 70여 곳 중 7곳이 참가를 포기했다. 중국 산업 관계자 방문객들은 300여 명이 참석했다. 전년도에 비하면 30% 정도 줄어든 것이다.

베를린에서 2월 5~7일 열린 국제 과일 채소 마케팅 전시회에는 참가할 예정이었던 중국 업체의 50%가 참가를 포기했다. 베를린 전시회 측은 이들 대부분이 중국발 항공편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면서 참가가 어려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베를린 전시회 측도 전시회 기간 동안 모든 방문자들에게 ‘건강 상태 확인서’를 받고 사람들의 접촉이 잦은 부분을 수시로 소독하면서 코로나19에 적극적으로 대비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월 7~11일 열린 세계 최대의 소비재 전시회인 암비엔테(Ambiente)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참가한 중국 업체는 700여 곳. 참가를 포기한 업체는 37곳 수준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중국 업체와 중국 관계자들은 이른 시기에 전시회장에 도착해 부스를 설치하면서 프랑크푸르트 보건 당국에 신고하고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고 한다.

전시회 참가를 위한 관련 업체와 관계자들의 이동이 둔해진 이유는 중국 현지 조치로 직접 참가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항공 노선 중단의 여파도 큰 것으로 전시 산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현재 독일 루프트한자·영국항공·에어프랑스 등 유럽 주요 항공사들이 중국으로 오가는 항공편을 모두 중단했다. 루프트한자·스위스항공·오스트리아항공은 당초 2월 9일까지 중국행·중국발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이후 2월 29일까지 운항 중단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에 비상 걸린 ‘전시 강국’ 독일
◆대형 전시회 무산되며 독일 중소기업 ‘흔들’

독일 전시 산업계의 진짜 고민은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있다. 독일 전시 업체들의 총매출액의 15%가 독일 이외의 국가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서 나온다. 독일 주요 전시 업체들은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아시아판’으로 같은 이름의 전시회를 중국 현지에서 열고 있다.

뮌헨 전시회가 2월 중순 베이징에서 개최하던 스포츠 용품 전시회(Ispo Beijing)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고 취소됐다. 중국 당국의 조치도 있었지만 뮌헨 전시회 측도 이미 1월 29일 이후 임직원들의 중국 출장을 전면 금지한 상태였다.

슈투트가르트 전시회가 2월 말 상하이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국제 도어·창호 전시회(R&T Asia)도 일정이 연기됐다. 이 밖에 프랑크푸르트 전시회, 하노버 전시회 등 중국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행사가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힌 전시회도 사실상 ‘취소’로 간주되고 있다. 전시회는 대부분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면서 일정이 1, 2년 전부터 확정돼 있고 이미 확정된 일정 사이로 새로운 날짜를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 상반기에 개최되는 대부분의 독일 전시회는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공개하면서 고객들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베를린 국제관광전시회(ITB) 측은 “코로나19와 관련된 현재 상황이 ITB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시 업체와 방문객·파트너사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시회 측은 행사장에 영어권 의료 인력은 물론 추가 의료진을 대기시키고 전시회장 입구 등에 손 소독제를 구비하고 청소·소독 인력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 전시회, 뉘른베르크 전시회 측도 전시회장 내 위생 관리와 응급 의료진 강화 등을 강조하면서 코로나19 전염 대비에 힘쓰고 있다.

분야별로 특화된 독일 전시회는 글로벌 기업은 물론 독일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특히 중요한 행사다. 홍보 마케팅과 함께 새로운 바이어를 찾고 기존의 바이어들을 관리하는 일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전시회 기간 동안 해당 도시에서 발생하는 숙박·요식·교통·관광 산업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독일 전시 산업계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를 떨쳐가며 전시회장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4호(2020.02.17 ~ 2020.0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