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코로나19로 기존 ‘시장 법칙’ 바뀌어- 디지털 자산 적극 수용해 한국 위상 높여야
지금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허브’ 될 최적의 타이밍
[한경비즈니스 칼럼 = 김성호 해시드 파트너] 바야흐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커져 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리스크로 시장 상황은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져 가고 있다. 시장의 특성에 따라 빠르게 나빠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수혜를 보는 회사들도 있다. 여행업이나 공연 사업과 같은 야외에서의 활동이 주된 산업은 매출이 급감했고 화상 채팅 서비스나 온라인 유통사들은 고객들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위기가 온라인에서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영향을 준 것은 산업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달러를 거침없이 찍어내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발행된 달러화들은 당장은 코로나19 위기를 막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달러 공급이 무제한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달러의 가치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게 되면 글로벌 기축 통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달러 보유를 줄이고 금과 같은 대체 자산 보유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도 향후 어떻게 금융 전략을 짜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역대 한국 정부들은 서울을 글로벌 금융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어 왔다. 하지만 실상은 금융 도시 경쟁력 순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터넷 인프라를 매우 빠르게 대규모로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역사처럼 이번 위기에서 한국이 글로벌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자산 인프라를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보급해야 한다.

◆KB, 커스터디 내놓고 디지털 자산 수신 곧 시작


KB국민은행이 얼마 전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보관)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상표권을 등록했다. 제도권 은행이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행하게 되면 많은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은행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처음 시행하게 되는 디지털 자산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충분한 사용자를 확보하거나 왕성한 활동이 보이는 디지털 자산들이 차례로 추가될 것이다. 성급하게 다양한 코인들을 추가하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보안성이나 기술성을 세심하게 판단해 충분히 탈중앙화돼 있고 안정성이 검증된 디지털 자산들을 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 다양한 현물들을 담보로 한 디지털 자산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금과 같은 자원을 등록한 토큰이라든지 부동산을 일부 소유할 수 있는 토큰 등 지금까지 개인 투자자들이라면 기관을 통해서만 투자할 수 있고 개인이 직접 투자하기 힘들었던 자산들이 디지털화될 것이다. 투자자들이 이런 자산들을 규제 내에서 안전하게 보유하기 위해서는 커스터디 서비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커스터디 서비스는 단순히 자산을 수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 금융 서비스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또 커스터디에 수탁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 상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면서 사업 모델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 이용자뿐만 아니라 해외 이용자에게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된다. 수많은 디지털 유목민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국적 없는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이들에게 비트코인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국내 커스터디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런 디지털 유목민들이 한국 금융 시장에 들어와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글로벌 금융 허브 중 하나인 싱가포르에서는 암호 자산을 담보로 결제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많은 디지털 자산 보유자들이 싱가포르에 계좌를 개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도 비슷한 전략으로 디지털 자산 보유자들을 유치한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금융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빠른 제도화로 ‘디지털 실리콘밸리’ 만들어야


커스터디 서비스로 디지털 자산을 담을 준비를 한 후 고객들이 투자할 수 있는 자산들을 그 플랫폼과 연계해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규제를 확립해야 하는 것은 증권형 토큰 공개(STO : Security Token Offering)다.

STO는 ‘증권의 성격을 가지는 디지털 자산’을 발행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STO는 2018년부터 이슈화돼 필요성이 부각돼 왔지만 아직까지 적절한 규제 지점을 찾지 못해 현재는 역외 금융을 제공하는 국가에 회사를 설립해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 이런 비즈니스를 진행하려면 변호사 비용, 회사 등록비용 등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된다. 이미 디지털 자산을 발행하는 한국 회사들이 역외 금융지인 싱가포르·홍콩·케이맨·몰타와 같은 역외 금융이 발전된 국가에서 높은 비용을 부담하면서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이를 법제화한다면 한국 회사들이 더 낮은 비용에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디지털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뛰어난 창업자들이 몰려드는 디지털 실리콘밸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STO가 정착된 이후 거래 시장이 활발해져야 된다. 거래 시장의 크기는 금융 시장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이미 한국은 2017년 디지털 자산 거래량으로 전 세계 순위권 안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도 한국 시장은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초기에 수많은 투기 세력과 검증되지 않은 암호화폐들이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향후 ‘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과 같은 적절한 규제를 통해 건전하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자산 거래소가 정식으로 규제권 내로 들어와 정착되면 제도권 안쪽에 있던 증권사·은행·대기업 등과 같은 규모 있는 회사들이 디지털 자산 거래소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시장에서 신뢰를 받고 있던 회사들이 거래소를 운영하게 된다면 더 다양한 투자자들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투자자, 신뢰받을 수 있는 중재 기관, 투자할 만한 자산들이 모이면 네트워크 효과를 내며 한국 시장이 글로벌 금융 허브가 되는 데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위기 속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적절하게 대처해 한국 브랜드는 신뢰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우수한 인터넷, 무선 통신망 등은 이미 다른 나라보다 크게 앞서 있기 때문에 디지털 금융 허브를 만들기에 충분히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만약 한국이 지금 이 시기에 조금이라도 앞서 디지털 자산 시장을 세계를 향해 연다면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 금융 허브 중 하나로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지금 중국은 디지털 위안을 만들어 비밀리에 테스트하고 있고 미국 Fed에서도 조금씩 디지털 화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 당국은 해외 결제를 위한 블록체인 시스템을 만드는 중이다.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디지털 경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남들보다 앞서 다양한 경제 실험을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방식에만 머물렀다가 서서히 망해 갔던 역사 속의 나라처럼 될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