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 총선 100명 가까운 당선자 내 명실상부한 최대 계파
- 원내대표·대표·대선 경선 핵심 키 잡아
[홍영식의 정치판] 여당 당권·대권판 손에 쥔 친문의 선택은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2004년 17대 총선 뒤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득의양양했다. 당 소속 의원의 약 71%를 차지한 초선 의원 108명은 대부분 ‘386 운동권’ 출신으로 ‘말발’이 셌다. 친노(친노무현)계의 주축인 이들은 선배 의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총선 직후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한 재선 의원이 “초선 의원들의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한 초선 의원이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겠다”고 말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초선 의원들이 천둥벌거숭이처럼 제각각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108번뇌’라는 말이 나왔다.

지도부의 리더십은 땅에 떨어졌다. 극심한 계파 싸움으로 당 대표인 의장은 수시로 바뀌었다. 정동영 1대 의장에 이어 신기남(2004년 5월)→이부영(2004년 8월)→임채정(2005년 1월·비상대책위 체제)→문희상(2005년 5월)→정세균(2005년 10월·비대위 체제)→유재건(2006년 1월·비대위 체제)→정동영(2006년 2월)→김근태(2006년 6월)→정세균(2007년 2월) 등으로 이어졌다. 2004년 6월 재·보궐, 2005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하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이 무너졌다. 2006년 실시된 4회 지방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중 1곳만 건지는 참패를 기록했다. 2007년 대선에선 정권을 내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17일 4·15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계파 정치로 몰락한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다. 5월 원내대표, 8월 대표 선출에 이어 내년 대선 경선 국면으로 들어가면 계파 정치가 부활할 것으로 예상해 미리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당 대표 경선과 대선 경선 등 큰 정치적 행사에서 당내 세력화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계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4·15 총선에서 당선된 범친문계 정치인은 100명 가까이 된다.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 2017년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및 당 대표 시절 참모들, 현 이해찬 대표 체제 당직자 그룹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당 기반 약한 이 전 총리도 총선 승리 이끌며 세 확장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의 총선 당선자는 20명 가까이 된다. 수석·비서관급에서는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중원),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을),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서울 양천을),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서울 구로을), 고민정 전 대변인(서울 광진을),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갑),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광주 광산을),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전남 나주·화순) 등이다. 행정관 출신 중에는 박영순(대전 대덕), 문정복(경기 시흥갑), 이장섭(청주 서원), 이원택(전북 김제·부안), 윤영덕(광주 동남갑), 김승원(경기 수원갑), 한준호(경기 고양을) 당선자 등이 국회에 입성한다.

이미 정치권에 들어와 있는 친문계 의원들도 대부분 당선됐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함께 ‘3철’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과 박범계·황희·김종민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다. 김진표·홍영표·박광온·진선미·박주민·이재정 의원 등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및 당 대표 시절 인연을 맺었다. 윤호중 사무총장과 김태년·홍익표·김경협·윤관석·조정식 의원 등도 친문계다.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대책위원장)가 4·15 총선을 계기로 당내 세력을 얼마만큼 확보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 전 총리는 당내 최대 주주인 친문이 아닌 비주류에 속한다. 그는 2003년 친노(친노무현)계가 동교동계를 겨냥해 벌인 ‘정풍운동’으로 당이 분화할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호남계 위주의 민주당에 남았던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당내 지지 기반이 취약한 그는 이번 총선에서 인적 기반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현재 당내에서 확실한 이낙연(NY)계는 설훈·이개호·오영훈 의원 등이다. 이 의원은 이 전 총리의 옛 지역구(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를 물려받았다. 여기에 총선에서 이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해준 후보 38명 가운데 당선된 22명이 ‘NY 지지 기반’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2명 중 현역은 강훈식·고용진·김병욱·김한정·백혜련·정춘숙 의원 등이다. 초선이 되는 김용민(경기 남양주병)·김주영(경기 김포갑)·문진석(충남 천안갑)·소병철(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이소영(경기 의왕·과천)·이탄희(경기 용인정)·허종식(인천 동구 미추홀갑) 당선자도 있다. 호남에서 당선된 상당수 의원들도 같은 호남 출신(전남 영광)인 이 전 총리의 우군이 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까운 인사들도 상당수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현역 중엔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기동민 의원과 박홍근·남인순 의원 등이다. 김원이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전남 목포), 윤준병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전북 정읍·고창), 천준호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서울 강북갑), 최종윤(경기 하남)·허영(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전 서울시 정무수석, 박상혁 전 서울시장 정무보좌관(경기 김포을), 민병덕 변호사(경기 안양 동안갑) 등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가까운 현역으로는 김경협·정성호·김영진·김병욱 의원이 있다. 경기 안성에서 당선된 이규민 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 이외에 상당수 이재명계 인사들은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홍영식의 정치판] 여당 당권·대권판 손에 쥔 친문의 선택은
◆원내대표·대표 경선 때 친문끼리 경쟁하며 분화 가능성도

그러나 계파 분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최대 계파인 친문계가 그렇다. 당장 5월 원내대표 경선과 8월 당 대표 경선에서 같은 친문계가 경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때 친문계는 이인영-김태년 지지로 각각 갈라졌다. 당시 ‘부엉이 모임’ 등 친문 지원을 등에 업은 비주류 이인영 의원이 친문계인 김태년 의원을 제쳤다. 2018년 전당대회 땐 친문은 이해찬-김진표 지지로 나뉘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친문계가 워낙 많다 보니 모든 사안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원내대표 경선과 대표 경선 때 이합집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친문계가 당권 경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친문 일각에선 이 전 총리에게 당권 주자로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는 설도 있다. 친문계가 차기 대권 주자로 누구를 밀 것인지도 관심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 전 총리에게 힘을 몰아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친문 후보로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때 친문에서 또 한 번 계파 분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내에선 이해찬 대표뿐만 아니라 계파 정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2016년 친문 대 반문의 격심한 투쟁은 국민의당 분당 사태를 불렀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기득권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보여 달라는 것”이라며 “1인 보스에 충성하고 앞날을 보장받는 계파 정치가 횡행한다면 다음 대선에서 독배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4호(2020.04.27 ~ 2020.05.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