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이순신은 탁월한 책략가이자 전쟁역량을 키워낸 경세가
이기는 전략, 축적된 힘에 '신의 한수'를 더해야’ [박찬희의 경영전략]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전쟁을 소재로 한 역사물에는 기상천외한 작전, 신출귀몰한 용병으로 수십 배가 넘는 적을 격파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런 스토리에 빠지다 보면 기업 경영에도 기발한 발상으로 세상을 뒤집는 전략을 찾게 된다.

남다른 발상으로 경쟁자의 허를 찌르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기본 실력이 받쳐 주지 않는 ‘묘수풀이’는 허망한 공상에 그치고 만다.

전쟁사의 영웅들은 비상한 작전을 편 책략가이자 흩어지고 무너진 성시(城市)를 다시 세워 군대를 먹이고 입힌 행정가였다. 화려한 무용담에 과장이 더해지며 황무지를 개간하고 부대를 훈련시키는 지루한 얘기를 가렸을 뿐이다. 경영 전략은 비상한 책략과 성실한 행정을 같이 다룰 때 의미가 있다.

◆사례1-‘삼국지’에 중독된 A 사장


A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국지’ 애호가다. 비단 주머니에 담긴 신묘한 계책으로 천리 밖의 전쟁을 이겨내는 제갈량의 신화에 감동하고 기민한 현장 지휘로 전쟁의 판을 바꾸면서 몇 배나 강한 상대를 제압하는 조조의 용병술을 동경한다.

이런 A 사장의 현실 경영은 만만치 않다. 최신 기술을 응용한 휴대용 저장 장치 겸 충전 배터리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지만 막상 내놓은 제품들은 고스란히 불량품과 재고로 남았다.

한때 참신한 발상으로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이에 힘입어 유망 중견기업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A 사장이 ‘획기적’ 아이디어가 새나갈까 막판까지 꽁꽁 숨겨 두고 세계를 뒤흔들 ‘신의 한 수’를 찾는 사이 알맞은 소재와 부품을 찾지 못했다.

대폭 확장된 저장 공간과 배터리 용량을 갖춘 스마트폰이 속속 나오면서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사실 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할 직원들은 이런 현실을 다 알고 있었다.

기상천외한 책략과 황당한 꼼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자기 혼자 갈고닦은 기발한 전략은 앞뒤 사정이 검증되지 않은 어이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삼국지’에는 제갈량이 아끼던 인재를 직접 벌하는 ‘읍참마속’의 고사가 나온다. 마속이 기발한 책략으로 차세대 스타가 되려다 전략적 요충지인 가정(街亭)을 잃고 전쟁 자체를 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사의 사례들은 사실은 대중의 로망을 충족하려는 이야기꾼들의 창작인 경우가 많다. 제갈량의 기발한 전략들이 대표적인데 역사가들은 오히려 그의 견실한 국가 경영과 전쟁 운영을 더 높이 평가한다.

강물을 막아 수나라 30만 대군을 몰살시켰다는 을지문덕의 신화도 당대의 토목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적을 끌어들이며 힘을 모아 역전시킨 고구려의 저력을 퇴색시키는 면이 있다.

21세기의 미디어 환경도 다르지 않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각광받고 마음이 급한 경영자를 보채게 만든다. 하지만 바둑에도 ‘묘수 3번이면 반드시 진다’는 말이 있듯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위험하고 무리가 따른다.

기본적 체력과 운동 기능이 부족한 권투 선수는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익히고 기발한 경기 운영을 배워도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의 능력을 끌어내 사업안을 만들고 실행하는 체제가 받쳐 주지 못하는 ‘남다른 발상과 기민한 전략’은 작은 돌발 요인에도 무너지고 만다.

혁신적 발상은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들이 이해해 실천하고 현실에 비춰 검증할 때 의미 있는 전략이 된다. 이런 협동적 의사 결정과 실천이 더 빠르게 이뤄지는 체제를 만들면 승산은 더 높아진다.

이순신 장군의 작전도 판옥선·거북선·화포와 같은 무기 체계와 함께 이를 운영하는 군사들의 작전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순신의 비범함은 그의 지도력과 작전 능력에도 있지만 조정의 지원이 없는 가운데 삼남 지방의 경제력을 되살려 내고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경세가(經世家)의 능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례2-교과서에 갇혀 버린 B 사장


B 사장은 중견 제약 회사를 물려받은 성실한 2세 경영인이다. 해외 유학과 컨설팅 경험을 통해 쌓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회사 전반의 운영 체제를 가다듬고 직원들에게 전문 분야와 경영 일반의 내용을 공부시킨다. 핵심 역량을 키우고 조직의 능력을 갖춰 경쟁 우위를 차지하라는 교과서의 가르침 그대로다.

탄탄한 연구·개발 역량, 합리적인 관리 체제로 유지되는 안정적 영업 방침으로 사고는 줄었지만 불행히도 회사의 실적은 우울하다. 영악한 경쟁자들은 B 사장의 무리하지 않는 성향을 읽고 온갖 사술(詐術)을 써 공격한다.

애써 개발한 신약을 확실한 안정성 실험을 거쳐 출시하면 경쟁사는 과장 광고에 덤핑까지 얹어 유통망을 선점해 버린다. 정치권과 관련 기관의 복잡한 속사정을 지렛대 삼아 출시 일정에 재를 뿌리기도 한다.

B 사장이 추구하는 내실 위주의 정도 경영은 한복판 직구만 고집하는 투수와 같다. 먹고살기 바쁜 생활인들은 B 사장의 조용한 내실을 알 수 없고 경쟁자의 광고와 언론 플레이는 이들에게 훨씬 쉽고 편하게 꽂힌다.

예측 가능한 전략은 영악한 상대에게 답안지를 먼저 보여준 셈이고 업계 전반의 먹이 사슬은 야구 배트와 회칼이 난무하는 싸움판과 같아 B 사장과 같은 ‘낭만파 협객’의 맨주먹으로는 버틸 수 없다.

세상일은 사필귀정이라지만 영악한 상대들이 치고 빠지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면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B 사장의 경영은 태권도 단증 따고 바로 실전 격투기에 나선 것과 비슷하다. 핵심 역량과 경쟁 우위를 강조하는 교과서의 가르침은 능력 없이 함부로 일을 벌이지 말라는 뜻이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경영학 교과서의 내용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빤한 암기 지식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 이론은 상대의 전략을 읽고 판을 바꿔 주도권을 잡는 지혜를 다루고 있다. 허를 찌르는 기습, 허허실실의 심리전은 기본이다.

‘공존의 사업 생태계’는 착하게 어울려 살라는 가르침만이 아니라 다양한 군상들이 맞물린 세상의 현실을 읽고 헤쳐 가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아둔한 교수들이 그 속뜻을 몰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학교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라 여겨 살짝 다뤘을지도 모르겠다.

남다른 발상과 기민한 전술 없이 기본기에만 의지하는 우직한 경영은 영악한 상대의 먹거리가 된다. 이순신 장군은 물결과 바람을 읽고 예상하지 못한 작전으로 적의 약점을 공격했기에 부족한 전쟁 자원으로도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경영학이 빤한 내용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을 뿐 쓸모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신출귀몰한 전략의 지혜를 기대했는데 고작 ‘잘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말이나 듣다 보면 절망감이 든다고 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상대의 혼을 빼놓으며 제압하는 용병의 지혜와 함께 군대의 체제를 갖추고 힘을 모으는 장수의 역할을 같이 논하고 있다.

경영 전략 분야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이냐(what to do)’를 ‘어떻게 잘할 것이냐(how to do)’로 나눠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생산·마케팅·재무 등의 ‘관리’ 과목들이 후자에 해당되는데 이런 능력이 쌓여 핵심 역량 혹은 경쟁 우위가 된다.

게임 이론과 생태계적 접근은 누구나 공부하지만 더 생각한 사람에게는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도인이 전해 주는 신묘한 비전(秘典)은 무협지에서만 존재할 뿐 전쟁사의 영웅들은 그저 그런 병법서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어 기발한 작전을 성공시킨 사람들이다. 탄탄한 체제와 기동 역량을 만드는 노력과 함께….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6호(2020.05.09 ~ 2020.05.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