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 文의장
· 주 원내대표가 꺼낸 사면론
- “7월 10일 형 확정 뒤 광복절 즈음 가능성 · 형 집행정지 방안도”
- “반성이 먼저” 기류도 있어 현실화는 쉽지 않을 듯
[홍영식의 정치판] 與 “前 대통령 사면, 명분·조건·공감 3박자 갖춰야”
[한경비즈니스= 홍영식 대기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 선출을 위한 ‘2·8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황교안 후보뿐만 아니라 비박(비박근혜)계 오세훈 후보도 사면을 주장하면서 정치권의 주요 이슈가 됐다.

이후 미래통합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제기했다. 황교안 전 대표는 3월 25일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많이 아프다”며 “고령의 몸으로 아픈데 계속 그렇게 교도소에 갇힌 상태로 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구속 취소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총선을 겨냥한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 성격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지난해 성탄 사면설, 신년 특사설 또는 형 집행정지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4·15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 분열을 위해 사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주로 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의 야당 정치인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에 정치적 파급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문 의장 “전직 대통령 사면 겁내지 않아도 될 시점 됐다”

그러다가 문희상 국회의장이 5월 21일 퇴임 기자 간담회에서 사면 문제를 꺼내 주목을 받았다. 문 의장은 “모든 지도자가 초장에 적폐 청산을 갖고 시작하는데 적폐 청산만 주장하면 정치 보복 연장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개혁 동력이 상실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감히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해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면을 의미하는 말씀인가”라는 질문에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점이 됐다”고 했다.

문 의장이 “(사면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문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데 아마 못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발언은 정치권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권 인사 중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문 의장이 처음이다. 비록 임기를 앞두기는 했지만 입법부 수장인데다 여권의 어른으로 통하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다른 여느 정치인과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간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한 여권의 반응은 다소 모호했다. “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지만 여지를 두는 듯한 발언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9일 취임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사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숨을 쉬면서 “누구보다도 제 전임자 분이라서 제가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리라 생각한다”면서도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형이 확정되면 사면을 고려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당시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가 문 대통령 모친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이) 몸이 좀 안 좋으시니 배려를 좀 해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말씀드렸더니 웃음으로 대답하셨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말씀을 드렸더니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10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자 간담회 내용도 주목받았다. 노 실장은 “사면은 언제나 대비는 해 둔다”며 “계기마다 혹시 필요성이라든지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면 그게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라지만 당시 보수 야당들이 박 전 대통령 사면 또는 형 집행정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문 의장의 사면 언급이 있은 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사면을 우회적으로 요청했다.
[홍영식의 정치판] 與 “前 대통령 사면, 명분·조건·공감 3박자 갖춰야”
◆박 전 대통령 세 가지 혐의 중 두 가지 형 확정 받지 않아

사면에 대해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지금은 사면을 건의할 때가 아니라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성과 사과를 촉구할 때”라고 말한 것을 제외하고 여권 인사들은 언급을 꺼리고 있다.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데다 정권 차원의 문제다. 고려해야 할 사안도 많다. 문 의장의 사면 거론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사면에 대한 방침은 없다”는 짤막한 반응을 내놓은 것도 그런 차원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사면에 대해 정치적 고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되려면 조건과 명분, 국민적 공감대 등 세 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며 “아직까지 이런 조건들이 성숙된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조건은 법적인 것을 뜻한다. 특별 사면이나 감형 대상은 형을 선고 받아야 한다(사면법 3조 2항). 형을 선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대법원에서 형을 확정 받았거나 대법원 상고 또는 고등법원에 항소하지 않아 1~2심에서 형이 확정되는 것을 뜻한다.

박 전 대통령은 세 가지 사건 가운데 한 가지만 형이 확정됐다. 2016년 20대 총선 개입 혐의에 대해선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국정 농단’ 사건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과 관련해선 대법원이 파기 환송해 서울 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이다. 서울고법은 7월 10일 선고할 예정이다. 이때 박 전 대통령 측이 대법원에 재상고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되고 사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광복절 즈음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측이 재상고한다면 형 확정이 미뤄지고 사면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이럴 경우 문 대통령이 이미 확정 판결된 공천 개입 사건에 대해서만 먼저 사면해 주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정 농단과 국정원 특활비 사건에 대해 유죄가 확정되면 추후 또 사면해야 한다. 다스 회삿돈 횡령과 다스의 미국 소송비 뇌물 혐의를 받는 이 전 대통령은 2심 판결만 받아 사면 대상이 되지 않지만 지난 2월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장 기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여권에서도 부담이라는 기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구속돼 현재까지 3년 2개월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어깨 수술과 재활 치료를 위해 지난해 9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해 12월 재수감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2년 2개월 정도 수감됐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만큼 문 의장도 언급했듯이 과거를 털고 이제 통합과 미래로 갈 때가 됐다”면서도 “여론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어렵다면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한 형 집행정지를 하는 방안도 있다. 형 집행정지 결정권은 검찰이 갖고 있다. 지난해 4월과 9월 박 전 대통령 측의 형 집행정지 신청을 검찰이 모두 불허한 바 있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부는 형 확정 판결 뒤 여론 상황, 국민적인 공감대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8호(2020.05.23 ~ 2020.05.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