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함수(Y=f(K,L,A), K=자본, L=노동, f( )는 함수 형태)에서 보듯이 인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가장 크다. 소비 함수와 투입 산출(IO)표를 통해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 지출, 생산 유발액, 부가 가치액, 고용 창출 규모 등을 모두 산출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떤 유망 산업이 떠오를 것인지도 추정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을 예상하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다. 5년 전 ‘한국 부동산(특히 강남) 시장이 인구 절벽에 따라 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해리 덴트 HS덴트투자자문 대표의 ‘인구 절벽(The Demographic Cliff)’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말 5대 시중은행장의 강남 집값 15% 폭락 예측도 같은 근거에서다.
◆“통화정책 간과한 ‘인구 절벽론’의 한계
결과는 두 예측 모두 틀렸다. 금융 위기 이전까지 부동산 시장 예측에 관한 한 정확하다고 평가받던 덴트 대표는 2010년을 기점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미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충분하지 않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보다 은퇴 후 삶의 수단으로 주식 보유 비율이 낮은 한국으로서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최소한 자가 소유(특히 아파트) 시장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960년대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2년까지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 계층이 두텁게 형성됨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한 단계씩 뛰었다.
그 후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때까지 4년 동안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빠졌다. 예측 기관과 부동산 전문가의 비관론도 쏟아져 나왔다.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이 겹쳐 국민들 사이에는 ‘이러다간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자 곧바로 부동산 가격을 띄워 경기 회복을 모색하는 ‘초이노믹스’가 발표됐다.
당시 비관론의 근거는 하나같이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자산 계층이 받쳐줄 가능성이 낮다“고 본 점이다. 특히 핵심 자산 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덴트 대표가 쓴 ‘인구 절벽’의 핵심이다.
덴트 대표의 주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관할 대상이 바뀐 점을 무시한 결정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맞으려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의 의지대로 통화 정책 관할 대상에 자산 시장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그린스펀 독트린).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의 주장대로 자산 시장을 포함시켜 통화 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버냉키 독트린).
버냉키 독트린대로 통화 정책을 운용하면 인구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부동산과 같은 실물 투자 수익률이 낮게 예상되더라도 금융 차입 비용이 빨리 올라가는 것을 막으면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출구 전략을 미루거나 작년 7월 이후 Fed가 금리 인하를 재추진하는 이유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내렸다.
아직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보는 예측 기관과 부동산 전문가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도권(특히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강한 대책만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내놓고 있다. 효과가 있기보다 집값을 잡지 못하고 풍선 효과가 커지자 6·17 대책에서는 잠실·삼성·대치·청담을 대상으로 주택 거래 허가제까지 도입됐다.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까지 제기되는 강도 있는 대책이다.
◆“직접 규제보다 ‘풍부한 자금길’ 터줘야
과연 이번 대책으로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의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작년 이후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잡히는 이유에 있다. 런던·베를린·시드니·밴쿠버·토론토·뉴욕·로스앤젤레스·상하이 등 끝없이 오를 것으로 보였던 세계 주요 도시 집값(연간 누적 변동률 기준)의 상승세가 작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안정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집값이 안정되기 시작한 도시와 여전히 불안한 도시 모두가 해당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각국 중앙은행은 출구 전략을 쉽게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집값 안정 대책을 추진한 국가보다 시장에 맡겨 놓은 국가일수록 해당국 도시의 집값이 안정되고 있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융 위기 이후 부채 경감 신드롬이 팽배한 부동산 시장에서는 도시 집값일수록 ‘편향적 순응성(biased procyclicality : 오를 때 더 오르고 내릴 때 덜 내리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둘째,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더라도 부동산 시장을 직접 규제하기보다 풍부한 자금의 통로를 마련해 준 국가일수록 해당국 도시의 집값이 안정적이다. 금융 위기 이후 주가 상승률과 도시 집값 상승률 간 상관 계수가 낮게 나온다. 자금이 증시에 유입될수록 도시 집값이 안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외 자산 투자를 권장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증시로 자금의 통로를 마련할수록 경기도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성·모험성·투자성 자금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성장 여건에서는 증시가 활성화돼야 주력 산업(혹은 기업)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확충되기 때문이다.
셋째, 집값 대책도 ‘가격’보다 ‘수급’, 수급 대책도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국가일수록 도시의 집값이 안정되고 그 폭도 크다는 점이다. 같은 도시라고 하더라도 수요가 많은 곳, 즉 서울의 경우 강남에 공급을 늘리는 ‘수요 타깃식 공급’ 정책이 도시 집값이 안정되는데 효과적이다. 우리처럼 강남 수요 대체식 뉴타운 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 정책은 도시 집값 안정보다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다른 자산 시장과 달리 그 나라 국민의 성향과 인구 구조 등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잡히는 요인이 우리 부동산 대책의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값 결정에 가장 독특하다는 ‘인구통계학적 이론’도 제라미 세겔 미국 와튼스쿨 교수가 주장한 ‘글로벌 해법’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 정책은 부동산 정책밖에 없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강남 등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애쓰는 한국 경제 각료에게 좋은 대안이 됐으면 한다. 강남 등 수도권의 집값이 잡혀야 부동산 이탈 자금이 증시에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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