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전통적 금융 부서와 디지털 전환 부서 간의 충돌 예상…JP모간은 ‘태세 전환’ 시작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골드만삭스의 ‘이중적인 태도’는 왜?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지난 5월 디지털 자산·블록체인업계에서는 골드만삭스가 화제였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제 전망과 인플레이션, 금과 비트코인에 대한 현재 정책의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고객들을 대상으로 콘퍼런스 콜을 열었다. 콘퍼런스 콜을 주최한 곳은 골드만삭스의 자산 관리 사업 부문이다. 발표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와 골드만삭스 리서치 이코노미스트가 맡았다.

골드만삭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 현황에 대해 브리핑하며 금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을 ‘자산군(asset class)’으로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한 온갖 역기능·해킹·사기·자금세탁·다크넷 등 을 강조하며 비트코인을 ‘튤립 버블’과 비교해 투자를 추천하지 않았다.

골드만삭스의 자료를 보고 다소 아쉬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골드만삭스의 업계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2017~2018년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시레이트, 인프라 성숙도, 반감기, 테크 기업들의 비트코인 관련 사업, 1970년대 금과 비트코인의 비교,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비트코인 선물 거래, 기관 자금 플로, 비트코인 투자 상품, 전 세계적인 제도화 트렌드 등이 소개돼야 마땅한데 해당 자료에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빠져 있었다.

또 골드만삭스는 “당사는 누군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따라 가격 상승이 전적으로 결정되는 증권은 고객에게 적합한 투자가 아니라고 믿는다”고 적었다. 이 대목에서도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가 디지털 자산 관련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적으로 비트코인은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정의된다. 현재 미국에서 비트코인 규제를 주도하는 기관 또한 증권 규제를 담당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아니라 상품 규제를 담당하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다.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은 비트코인이 증권이 아니라고 이미 발언한 바 있다. 필자가 보기에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공개(IC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여타 알트코인을 구분 짓지 않고 비트코인을 증권으로 취급하는 것은 난센스다.

◆2018년에 머무른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이 자료를 보고 느낀 또 다른 점은 골드만삭스 내 전통 비즈니스를 하는 부서와 핀테크 비즈니스를 하는 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을 대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2015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가 “골드만삭스는 기술 기업”이라고 선포한 이후 골드만삭스는 핀테크 사업과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골드만삭스는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의 이름을 딴 디지털 뱅크 ‘마커스(Marcus)’를 출시했다. 2019년 애플과 파트너십을 맺고 애플카드를 출시했다. 이런 배경 아래 골드만삭스가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게다가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에서 비트코인은 주의 깊게 모니터링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빗고(디지털 자산 월렛), 빔(비트코인 송금), 서클(스테이블 코인) 에 투자한 바 있다.

2019년 2월 골드만삭스가 공개한 ‘은행의 미래’라는 영상에는 ‘암호화폐 계좌(crypto currency account)’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만약 골드만삭스 최고 경영진이 비트코인을 단순한 21세기 튤립 버블로만 치부한다면 골드만삭스 핀테크 비즈니스를 하는 부서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사업은 말이 안 된다. 골드만삭스는 약 3만8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관련 신규 사업 현황은 극소수의 최고 경영진만 알 것이고 전통 비즈니스를 하는 부서는 이 내용을 모를 수도 있다는 점은 합리적인 추측이다.

◆“파도를 못 막으면 올라타라”


한편 골드만삭스와 함께 월가의 핵심으로 불리는 JP모간의 최근 행보는 인상적이다. JP모간은 원래 비트코인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CEO는 2017년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2018년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후회한다고 밝히며 말을 바꿨다. 2019년 JP모간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업 간 정산에 쓰이는 스테이블 코인 JPM코인을 출시했다. 2020년 JP모간은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가상 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제미니에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가상 자산 거래소 제미니 출신 임원을 채용하는 과감한 인사도 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간은 왜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질까. 전통 금융사들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알리바바·텐센트·페이스북·아마존·구글·스퀘어·네이버·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리테일 금융 시장의 파이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핀테크가 아니라 테크핀의 시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 금융사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바로 빅테크 기업들의 침공에 맞서거나 혹은 협력하는 것이다. 과거에 전통 금융사들은 전자의 방법을 택했다. 거금을 들여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했고 애플리케이션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통 금융사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사용자들은 유저 네트워크, 세련된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환경(UI), 실생활에서의 편의성을 높여 주는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에 몰렸고 전통 금융사들이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를 외면했다.

이에 따라 전통 금융사들이 빅테크 기업들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처사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애플과 협력하고 미래에셋은 네이버와 협력하며 노무라는 라인과 협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비트코인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피델리티·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와 같은 전통 금융사와 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스퀘어 같은 테크 기업들이 비트코인 관련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금융사로서는 무허가형 블록체인이자 오픈 소스 생태계인 비트코인 관련 사업화를 위해 사토시 나카모토와 파트너십을 맺을 필요가 없다. 단지 자금 세탁에 주의하고 관련 규제를 준수하며 사업을 전개하면 될 뿐이다.

이미 눈치가 빠른 글로벌 기업들은 비트코인 열풍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자사의 사업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거대한 파도를 막을 수 없다면 올라타라.” 필자가 보기에 골드만삭스와 JP모간은 이를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