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장례식장에 취업한 청년의 리얼 노동 밀착 에세이
[서평]웃기고 오싹한 장례식장에서의 별별 일화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
다스슝 지음 | 오하나 역 | 마시멜로 | 1만5000원

[한경비즈니스= 윤효진 한경BP 편집자]장례식장이란 어떤 곳인가. 한 사람이 자신의 가족·친구·세상과 작별하는 곳이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할 곳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엔 되도록 멀리 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곳이 직장이고 매일 가야 하는 곳이며 삶의 대부분이 펼쳐지는 배경이다.

신간 ‘나는 장례식장 직원입니다’는 실제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청년의 자전적 에세이다. 대만에서 출간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단박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에세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언론의 극찬과 함께 ‘죽음에 관한 최고의 블랙 유머’, ‘유머러스한 일화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심오한 진실’ 등 독자들의 찬사도 쏟아졌다.

이 책은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청년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들을 보고 듣고 겪은 관찰기로, 그 속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부조리한 체험들도 가득하다. A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례식장에 무엇이든 가장 값싼 물건들만 사용해 달라고 하더니 유골함조차 생략한 채 과자 통을 가져와 “아버지 유골은 여기에 담아 주세요”라고 말한다. B 씨는 시체를 안치하는 냉동고로 옮겨지던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숨을 쉬며 살아나자 기뻐하기는커녕 “그럼, 냉동고에는 어떻게 넣죠”라고 되묻는다.
이처럼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는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죽은 자와 산 자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자신을 희화화해 장례식장의 무거운 분위기를 명랑하게 바꿔 버리는 저자의 연금술적 입담에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장례식장에서도 손님들에게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가 “내 가족이 죽었는데, 넌 반갑냐”라는 타박을 받기도 한다. 어두운 새벽녘 순찰을 돌다가 “나 좀 도와줘”라고 붙드는 여자의 손을 무서워 뿌리치고 도망쳤다가 다음 날 쓰레기 치우는 할머니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이란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이 청년은 가난하고 못 배웠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도 없으며 스스로를 ‘아무 생각 없는 뚱보 오타쿠’라고 칭하는 사내다. 하지만 그는 일을 좋아하고 일터에서 만나는 모든 사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낙천적이고 소탈한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싹한 일조차 저자의 시선을 통과하면 기이하면서도 우습고 이상하면서도 따뜻한 일들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장례식장이 일터인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유쾌하고 신랄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소박한 그들은 매일 같이 시체를 옮기고 꿰매고 화장하고 시체안치실과 봉안당을 관리한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가슴팍에 용머리를 문신한 미남 운전사의 사연이다. “전에는 칼로 사람을 이쪽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시신 운반 차량으로 사람을 이쪽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는 그는 직업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젊은 날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는 기회로 삼는다.

독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으스스한 괴담들도 가득하다. 정성 들여 죽은 시신의 장례를 치러 줬더니 보답처럼 위패 앞에 세 개의 숫자가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그게 로또 3등 번호였다든지, 편의점 창가에 스친 여자애의 얼굴이 낯익어 떠올려 보니 안치실 관속에 누워 있던 그 얼굴이었다든지, 여름밤 더위를 한순간 서늘하게 만들 실화들이 가득 담겨 있다.

이 책의 57편에 달하는 짧은 이야기는 그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코믹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전개된다. 고발성 짙은 르포르타주 에세이는 아니지만 죽음과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블랙 코미디 같은 인생의 페이소스를 진하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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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6호(2020.07.18 ~ 2020.07.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