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특별기획 대한민국 ‘구해줘! 홈즈’ 프로젝트① 싱가포르 편]-600만 국민 주거 안정 만든 ‘공공주택’…세련된 디자인과 좋은 입지로 선호도 높여

[편집자 주 = 치솟는 ‘집값’ 문제로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1인 가구의 77.3%는 전월세·고시원·원룸에 거주한다. 청년층 63%가 월세로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집 없는 민달팽이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공공임대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해외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을 연재한다. 그 시작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싱가포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살펴봤다. 이를 통해 향후 한국 공공임대주택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
‘집 걱정 없는 나라’…국민 90%가 ‘내 집’ 가진 싱가포르의 기적
[한경비즈니스=이정흔] ‘평생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정적인 주거의 보장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다. 동시에 국민들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활동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를수록 그 해결책으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또한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핫이슈로 부각되면서 요즘 들어 유명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자주 소환되는 국가가 있다. ‘공공주택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인구 600만 명, 면적은 700㎢로 서울보다 조금 큰 ‘도시 국가’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을 거쳐 1965년 독립 국가가 됐다. 독립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초국가적인 도시 모델’을 구축하며 빠른 경제 성장을 거듭해 온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만 6만4000달러(약 7589만원)에 육박할 정도다. 그렇다면 ‘좁은 국토, 많은 인구, 높은 국민소득’ 등 주택 시장이 과열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는 어떻게 ‘공공주택의 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일까.
‘집 걱정 없는 나라’…국민 90%가 ‘내 집’ 가진 싱가포르의 기적

◆‘공공주택의 천국’ 이끄는 HDB


2018년 싱가포르 통계청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 시민권자 가운데 자가로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91%에 달한다. 국민 10명 중 9명은 ‘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를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이다. 싱가포르 정부 국가개발부(MND Ministry of National Development) 산하의 독립 행정 기관으로 싱가포르의 공공주택과 관련한 모든 정책 실행을 도맡고 있다. HDB가 발간한 2018·2019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전체 국민 중 HDB에서 공급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의 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81%에 달한다. 1985년 처음 이 비율이 80%를 넘어선 뒤 40년간 줄곧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이처럼 ‘기적의 숫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데는 오랫동안 싱가포르 주거 정책의 철학이 됐던 ‘주택 자가 소유(Home Ownership)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국민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오랫동안 주거 정책의 핵심으로 여겼다. 1960년대 독립 당시 싱가포르의 상황은 급증하는 이민자들과 열악한 주거 환경 등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었다. 여러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싱가포르의 특성상 이들 시민들 간의 정치적 갈등이 빈번해지며 경제적인 타격 또한 커져 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리콴유 초대 총리는 강력한 ‘사회 통합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주거 안정’이었다. 특히 리 총리는 주택을 ‘장기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자신의 재산을 갖게 된다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싱가포르인들에게 가장 큰 자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이는 국가의 조세 기반 구축은 물론 효율적인 자산 관리, 재원 부담 경감 등의 결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의 집을 제공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는 1966년 토지수용법을 제정, 토지를 국유화했다. 현재 싱가포르 토지의 90%는 국가 소유다. 이에 따라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주택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싱가포르의 ‘주택 자가 소유’ 정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은 HDB의 역할이다. HDB는 1964년 ‘홈 오너십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1960년 설립된 HDB는 초창기만 하더라도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아파트를 ‘임대’하는 것만 가능했다. 하지만 자가 소유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저소득층 국민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공공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정부로부터 99년간 집을 임대하는 ‘영구임대주택’의 형태로, 사실상 임대보다 소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HDB는 국민들의 주택 소유를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정부 지원금과 주택 마련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1968년 중앙연금기금(Central Provident Fund, 이하 CPF)을 주택 마련에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줌으로써 ‘주택 자가 소유’ 정책에 힘을 실었다.

싱가포르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국민들은 의무적으로 CPF에 가입하도록 돼 있다. 현재 가입자는 약 400만 명으로 싱가포르 전체 인구의 80%를 웃돈다. CPF는 노동자가 급여의 17%를 적립하면 회사와 정부가 15%를 적립해 총급여의 32%를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일종의 ‘강제 저축’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국민들의 주택 구매 여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밖에 싱가포르 정부는 다양한 금융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자가 소유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셸린 얩 HDB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여러 정책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일관성 있게 시행되며 HDB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저렴하면서도 매력적인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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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내 집’ 90%가 HDB아파트


현재 HDB는 싱가포르 내 24개 타운에 120만여 채의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다. 공공주택의 설계에서부터 시작해 공급, 분양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얩 매니저는 “싱가포르는 공공주택과 관련한 정책을 HDB로 일원화함으로써 안정적인 공공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토지를 확보하고 공공주택의 품질을 높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며 “무엇보다 공공주택 정책의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맨파워를 확보함으로써 대규모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DB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주택을 설계하고 건축하고 분양하는 모든 과정을 별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관점에서 ‘공공주택’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공주택을 많이 만들어 많이 보급하는 데 최종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공공주택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어떤 삶을 꾸려 갈 것인지에 더욱 중점을 둔다는 얘기다. 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정책이 ‘도시 계획 정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HDB에서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특히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를 비롯한 ‘첫 주택 구매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모든 국민들이 공평하게 ‘주택 구입’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HDB에서 주택을 구입하길 원하는 시민들은 가구당 한 채의 아파트만 소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HDB 측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에서 처음 집을 구매하는 이들의 90%가 HDB의 BTO(Build-to-Oder,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수주 생산 방식) 프로그램을 통해 주택을 마련한다. BTO를 통해 공급되는 아파트는 대부분 새 아파트로, HDB가 직접 판매한다. HDB를 통해 공급되는 이들 ‘새 아파트’는 기존의 부동산 재판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아파트와 비교해도 가격이 상당히 절반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특히 생애 첫 주택 구매자들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 받는 등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얩 매니저는 “HDB는 아파트 가격을 책정할 때 시민들의 경제성과 수익성을 주요 지표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새 아파트에 대한 부채 상환 비율(DSR)을 면밀히 모니터링한다. 현재 싱가포르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들이 평균적으로 주택 융자에 지불하는 금액은 월 소득의 4분의 1 미만으로, 이는 국제적인 수치(30~35%)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편이다.

싱가포르는 공공주택의 비중이 워낙 큰 만큼 ‘민간 부동산 시장’에서의 거래는 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시장은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다. HDB를 주축으로 한 공공주택 시장 외에 민간 주택 시장이 따로 존재한다. 공공주택과 민간 주택 시장의 비율은 9 대 1 정도다. 민간 주택 시장에서는 주로 고급 단독 주택 등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정부는 민간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 또한 특징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민간 주택 시장에서 고급 주택 거래 수요가 살아날 수 있도록 고소득층의 공공주택 거주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월평균 소득 6000싱가포르 달러(약 518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HDB의 공공주택 공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민간 시장을 통해 더 좋은 집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주거 이동 사다리’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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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 ‘공간’이 아닌 ‘생활’의 디자인


싱가포르의 공공주택 정책의 성공 비결을 말하기 위해서는 ‘소셜 믹스(social mix)’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최근 국내 공공주택 정책과 관련해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 ‘소셜 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다른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 홍콩과 함께 ‘소셜 믹스’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당시 싱가포르 또한 빈부 격차가 심해지며 이를 해결할 방안의 하나로 소셜 믹스가 부각된 것이다. 다양한 이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싱가포르에서 ‘주택’은 사회 통합을 위한 기반이다. HDB 역시 다양한 특성을 지닌 거주민들이 쉽게 어울리며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것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공공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는 첫 출발점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세련된 아파트 디자인’과 ‘편리한 교통 시스템을 갖춘 좋은 입지 조건’이었다. 특히 아파트의 외관을 세련되게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 아파트 내부 역시 크기와 디자인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얩 매니저는 “HDB는 싱가포르 국민들이 원하는 다양한 수요와 예산에 맞춰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HDB가 제공하는 공공주택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고 설명했다. HDB에서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기본적으로 방 2개 아파트부터 방 5개 아파트까지 다양하다. 공공주택의 대부분이 방 4~5개를 갖춘 중대형 규모로, 아파트의 디자인은 물론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HDB의 공공주택 구입을 원하는 싱가포르 시민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HDB로부터 직접 구입하거나 혹은 부동산 재판매 시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공공주택 거주자들의 건강한 커뮤니티 활동을 독려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시행 중이다. 먼저 시민들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장려하기 위해 ‘공유 공간’을 늘린 것이 두드러진다. 피트니스 코너부터 놀이터와 같은 다양한 공유 공간이 가득하다. 특히 새로 온 입주자에 대한 환영 파티를 열고 공개 강연이나 워크숍 등을 수시로 개최하는 등 거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자주 보고 유대감을 키울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얩 매니저는 “HDB는 싱가포르의 최대의 주택 개발 업체로, 공공주택 공급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전반적인 주거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최근에도 최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 공공주택, 친환경 공공주택을 선보이는 등 싱가포르 시민들에게 더 깨끗하고 나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데 궁극적인 지향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집 걱정 없는 나라’…국민 90%가 ‘내 집’ 가진 싱가포르의 기적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