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에 카레 가루와 케첩 곁들여…올해 탄생 70주년 맞아 원조 논쟁
독일 서민 음식 ‘커리부어스트’를 아십니까
[베를린(독일) = 박진영 유럽 통신원] 독일은 소시지의 나라다. 그 종류만 해도 무려 1500여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시지를 만드는 재료와 방법도 다양하고 지역적 특색도 뚜렷하다.

돼지고기와 감자가 가장 흔한 식재료인 독일에서 긴긴 겨울을 위한 보존 식량으로 소시지 등이 발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소시지와 달리 돼지의 어느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활용해 만든 여러 가지 버전의 소시지는 그 특성에 따라 먹는 방법 또한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대표적 소시지 요리이자 이제는 독일의 간판 길거리 음식이 된 커리부어스트(currywurst)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익숙하고 흔한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소시지(wurst)에 카레(curry)와 케첩을 뿌린 커리부어스트는 보통 감자 칩과 함께 종이 접시에 제공된다.

조리법도 간단하고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간편한 식사를 원하는 독일인들도, 시간을 아끼고 싶은 관광객들도 선호하는 메뉴다. 현지인들은 잘 먹지 않는 ‘여행자용’ 음식이 아니라 독일인의 일상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 속 음식이다. 연간 판매량만 8억 개에 달하고 베를린에는 심지어 커리부어스트 박물관까지 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관광지는 물론이고 동네 곳곳에도 커리부어스트를 파는 임시 매점이 즐비하다. 주로 ‘테이크 아웃’으로만 판매하는 임시 스낵 바 형태로 운영되지만 일부 매장은 제대로 된 레스토랑 형태인 곳도 있다. 물론 커리부어스트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독일식 레스토랑에서는 대부분 커리부어스트 메뉴를 판매한다.

◆커리부어스트 탄생에 관한 여러 설과 주장들

지난 9월 4일은 커리부어스트 탄생 7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그렇다. 커리부어스트는 ‘탄생일’이 있는 일종의 ‘발명품’이다. 커리부어스트의 ‘발명’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존재하지만 베를린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9월 4일을 커리부어스트 탄생일로 기념하는 것도 베를린을 기준으로 한다.

70년 전인 1949년,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당시는 식량이 부족했고 황폐해진 수도를 재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다. 베를린의 한 길거리 음식점 주인이던 헤르타 호이베르 씨는 당시 베를린에 주둔 중이던 영국군 장교에게서 카레 가루를 얻게 됐다. 인도를 식민 통치했던 영국은 인도의 문물인 카레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터였다.

어느 날 호이베르 씨는 토마토 페이스트와 파프리카, 여러 가지 향신료와 카레 가루를 섞어 소스를 개발해 삶은 소시지 위에 부어 팔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좋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이 나면서 노동자들과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커리부어스트의 탄생지로 베를린과 경쟁하는 지역들이 있다. 바로 함부르크와 루르 지방, 작센 지방 등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함부르크는 강력한 경쟁자다. 독일 작가 우베 팀은 1993년 펴낸 ‘커리부어스트의 발견’이라는 소설에서 커리부어스트가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테이크아웃 음식점 운영자였던 레나 브뤼커 씨로, 소설은 그녀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 회상 형식을 빌려 전달하는데 내용 중에 1947년 브뤼커 씨가 커리부어스트를 개발한 것으로 나온다.

작센 지방 사람들 역시 소시지에 관해서라면 자신들이 앞서 있다며 커리부어스트의 발명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센의 한 도시인 요한게오르겐슈타트의 막스 브뤼크너 씨는 껍질이 없는 소시지를 발명한 사람이었다. 당시 소시지의 껍질로 쓰이는 돼지 창자가 공급량이 적어 그는 껍질이 없는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껍질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소스로 소시지를 뒤덮어 버리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데 그게 바로 커리부어스트라는 주장이다.
독일 서민 음식 ‘커리부어스트’를 아십니까
◆커리어부스트는 독일의 떡볶이? 선거철 단골손님

여러 설에도 불구하고 커리부어스트가 호이베르 씨의 발명품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관련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커리부어스트 소스가 개발된 지 약 10년 후인 1959년 호이베르 씨는 ‘칠리’와 ‘케첩’을 합성한 ‘칠업(chillup)’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받았다. 커리부어스트 소스 발명에 관해 숱한 도전을 받았을 호이베르 씨 역시 “나는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전부다”라는 간결한 말로 모든 주장을 일축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호이베르 씨의 특허 소스는 맛볼 수 없다. 20년 전 그가 발명한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은 채 무덤에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의 소스 맛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베를린에는 그 뒤를 잇는 커리부어스트 ‘맛집’들이 존재한다. ‘커리36’과 ‘콘노프케의 임비스’는 오늘날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커리부어스트 가게로,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몰리며 줄을 서야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세계문화유산’을 자처하는 ‘재밌는’ 발상을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는 커리36은 1980년 오픈, 몇 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며 일부 매장은 아침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오픈한다. 콘노프케의 임비스는 호이베르 씨가 소스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1949년보다 훨씬 이전인 1930년부터 소시지 음식을 판매해 온 전통 있는 매장이다. 콘노프케 가문 4대를 이은 사업으로, 이곳의 커리부어스트를 맛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어떤 면에서 커리부어스트는 한국의 ‘떡볶이’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도자기 접시에 샴페인까지 곁들인 ‘고급’ 버전이 존재하긴 하지만 여전히 서민 음식의 대표 격인 커리부어스트는 선거철 자주 등장하는 메뉴 중 하나다. 한국 정치인들이 선거철 시장을 방문해 떡볶이를 먹으며 ‘서민 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것처럼 독일의 정치인들 역시 선거를 앞두고 길거리 매점 앞에서 커리부어스트를 먹는 모습을 흔히 연출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자신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커리부어스트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일각에서는 2002년 그가 재선에 당선된 이유가 그러한 ‘고백’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