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80년대 플라자 합의로 엔화 준기축통화 인정
-내년 이맘때 새 합의로 무역 전쟁 마무리될 듯
USA and China trade war. US of America and chinese flags crashed containers on sky at sunset background. 3d illustration
USA and China trade war. US of America and chinese flags crashed containers on sky at sunset background. 3d illustration
[한경비즈니스 칼럼=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큰 경제 이슈는 미·중 무역 분쟁이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교역량 감소 요인으로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금융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마디에 요동을 쳤다. 연초에는 미·중 협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승했고 5월 이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여파로 시장의 변동성을 높였다.

6월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의 기대감 상승, 7~8월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와 중국 희토류 협회의 대응, 위안화의 절하와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까지 모두 같은 맥락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키워 왔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이유 주목해야

한마디로 미·중 갈등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했던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은 관세 부과로 나아가고 중국은 위안화 약세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9월이 걱정이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은 정치적 부담을 감안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점점 더 커진다.

분쟁을 완화해 줄 조정자의 부재가 아쉽다. 결국 조정자가 출현하고 그 역할을 해줘야 상황은 반전한다. 다만 상황이 더욱 악화됐지만 게임이 충분히 반복되면 배신보다 협조로 나아갈 것으로 판단된다. 미·중 무역 협상의 마무리는 결국 ‘신(新)플라자 합의’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미·중 무역 분쟁을 플라자 합의의 연장선에서 판단하는 이유는 현재의 경기 기조, 특히 미국의 경제정책 기조가 1980년대와 유사하다는 점에 기반한다. 단순히 비교하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자문으로 큰 역할을 했던 이가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였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자문 역시 래퍼 교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의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새로운 경제 엔진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며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위한 공평한 운동장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국의 무역정책 목표는 평평한 경기장을 만들어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레이건 전 대통령이나 ‘공정한 무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타 국가에 대한 압박을 정당화했다. 다만 당시 미국의 주요 무역 흑자 국가가 일본이었다면 현재의 주요 무역 흑자국이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차이가 있다.

간혹 미·중 무역 분쟁을 1930년대 대공황 시대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1920년에서 1930년까지의 글로벌 경제와 각 국가의 무역정책을 현대 경제와 비교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있다. 1930년 스무트-할리 관세법 이전의 미국 평균 관세는 최저 수준이 20%였다면 현재는 미국 평균 관세의 최고 수준이 5% 수준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글로벌 무역과 경제 체제는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를 전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즉 1947년 이전의 경제는 해석에 도움을 주는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현시점의 경제와 유사하다고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현대적인 자유무역 체제가 형성되고 달러가 기축통화로 작용한 이후 글로벌 무역 분쟁이 일어난 최초의 시점은 1980년대로 볼 수 있다.

이제 이전 시대는 잊고 1980년대 이후에 집중해 보자. 앞서 말했던 첫째 조건인 플라자 합의가 재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관세 인상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관세를 올리는 과정에서 했던 많은 논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관세 인상이 단순히 중국의 손실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소비자도 분명히 관세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 효과를 겪게 되고 도소매업자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관세를 끝없이 올린다는 것도 부담이 크다.
‘신플라자 합의’를 기다리게 하는 이유
하지만 위안화 환율이 강해진다는 것은 다르다. 관세 부과 품목이 아닌 전 품목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미국의 수출 기업이 중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를 고려해 보자. 바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와 달러화의 약세다. 어떤 방식이 합리적이냐의 측면에서 위안화의 절상 이외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 다른 정책보다 위안화의 절상이 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는 점도 협상에서 위안화가 절상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과거 엔화는 1980년 준기축통화 지위를 획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이 16개 국가 통화에서 5개 국가 통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엔화가 준기축통화로 인정받았다.

중국의 위안화는 2016년 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됐다. 비율은 일본의 8.33%보다 높은 10.92%였다. 하지만 2019년 1분기까지 글로벌 외환보유액 비율을 보면 엔화는 20.24%인 반면 위안화는 1.95% 수준으로 여전히 낮다. 중국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는 위안화의 준기축통화 지위 획득일 것이다.
‘신플라자 합의’를 기다리게 하는 이유
플라자 합의와 같은 통화 합의가 어떻게 준기축통화 지위를 만들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 플라자 합의 당시 달러화 약세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뉴욕 Fed를 통해 32억 달러(3조8467억원) 규모의 엔화와 마르크화를 매수했다. 일본 중앙은행은 30억 달러(3조6048억원) 규모, 영국·프랑스·서독은 20억 달러(2조4032억원) 규모의 달러를 매도했다.

이 정책을 통해 달러화의 10~15% 절하를 유도한 것인데 미국이 타국 통화를 매수한 중심에는 환율 안정화 펀드(ESF)가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엔화와 마르크화를 매수하게 되는데 현재 ESF는 엔화와 유로화로 구성돼 있다.

미국과 중국이 환율 변화에 합의한다면 미국은 ESF 내에 위안화를 편입시키고 중국은 인민은행을 통해 달러화를 매도하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결국 타 국가의 외환보유액과 유사한 구실을 하는 미국 ESF에 위안화가 편입된다면 위안화의 준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강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 중국에 1년간의 협상 기간 제시한 셈

최근 미국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한 인위적 환율 조정 이후 1988년 환율 조작국 지정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한국과 대만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고 두 국가 모두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중국은 1992년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이후 통화 바스켓을 변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한국·대만·중국 모두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환율 시스템이 변화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단순한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미국의 공격이 아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3월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에 환율이 포함돼 있다고 인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미·중 무역 협상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1년간의 협상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현시점에서 중국에 1년간의 협상 기간이라는 데드라인을 설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세만이 아닌 다른 방식의 공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선제적 조치를 포함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이전에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준 조치라는 판단이다.

미·중 무역 협상의 끝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협상 결과가 환율 변화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협상 시기는 내년 8월 이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긴 호흡으로 보면 미·중 무역 분쟁은 새로운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 시기는 내년으로 예상되는 ‘신(新)플라자 합의’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