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정계 개편 회오리…한국 정치 풍토서 정치 거물·지지 기반·명분 ‘3박자’ 못갖춘 신당은 ‘모래성’
강력한 대선주자 없는 신당, 성공할 수 있을까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정치권이 또 정계 개편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극심한 내분을 겪어 온 터라 정계 개편은 이미 예고됐던 바다. 내년 총선을 8개월 앞둔 시점에서 헤쳐 모여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대안정치 소속 의원 11명이 8월 12일 집단 탈당한 것을 신호탄으로 정계 개편의 연쇄반응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이합집산의 그림은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다.

여러 시나리오들만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호남’이 중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우선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에 소속된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주축이 되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이 떠오르고 있다.

박지원·유성엽 등 대안정치 소속 의원들은 안철수·유승민계로부터 거센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뿐만 아니라 김동철·박주선·주승용 등 호남 출신 의원들과도 꾸준히 접촉하면서 호남 신당 창당에 대해 의견을 나눠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제3지대 신당·범보수 빅텐트 등 시나리오 분분

박지원 의원은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흡수설에 대해 “(선거는) 결국 이합집산이고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며 “‘도로호남당’이 뭐가 나쁘냐. 정치라는 것은 생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바르게 가면 더 커지는 정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호남 신당 창당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평화당 탈당파와 바른미래당 호남계뿐만 아니라 안철수계를 포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안철수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은 안 전 의원의 정치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자유한국당 내에선 유승민 의원과 우리공화당을 모두 포괄하는 범보수 빅텐트론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범보수 통합에 팔을 걷어붙인 양상이다.

나 원내대표는 “유 의원과 통합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말해 파장을 낳은 바 있다. 한국당 일각에선 안 전 의원까지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모두 박형준 전 의원이 8월 20일, 27일 주최하는 ‘야권 통합과 혁신의 비전’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범보수 통합을 염두에 둔 행보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한국당 내에서 친박계가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유 의원이 움직일 공간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무엇보다 제3지대 신당 창당 세력들이 ‘신당 창당의 성공 조건’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정당정치에서 흔히 봐왔듯이 신당 창당 성공 제1의 법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다.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대선 주자급 리더가 없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은 한국 정당사에서 입증됐다.

역대 총선에서 선전했던 대부분의 신당이 강력한 리더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1987년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1987년 11월)과 새정치국민회의(1995년 9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신민주공화당(1987년 11월)과 자유민주연합(1995년)이 그랬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끈 통일국민당은 1992년 창당 한 달 만에 치른 총선에서 31석을 얻어 돌풍을 일으켰다.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를 갖춘 정 명예회장이 차기 대선 주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념과 철학보다 대선 유력 주자 등 인물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지다 보니 ‘가치’보다 ‘간판’이 더 중요해진 것이 한국적 정치 풍토였다.

물론 그 인물이 대선 패배 등으로 정치판에서 사라지면 정당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은 것도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정당들의 평균수명은 평균 2.6년에 불과한 실정이다.

제3지대 신당 추진파들이 대선 주자급 거물 정치인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바른미래당이 극심한 내분을 겪으면서도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야권 각 정파들이 독일에 가 있는 안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있다.

박지원 의원은 안 전 의원에 대해 “본래 보수인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진보로 위장 취업했다가 실패하니까 다시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면서도 “제2의 안철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안 전 의원이 아니더라도 그와 버금가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당 성공의 또 다른 법칙은 강력한 지역적 지지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당 탈당파 의원들이 대부분 호남 출신이고 바른미래당 내 신당 합류가 거론되는 의원들도 마찬가지여서 ‘호남발 정계 개편’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이 지역에서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갤럽이 8월 6~8일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민주평화당의 호남 지지율은 1%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69%)에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뒤진 것은 물론 정의당(9%)과 자유한국당(3%)에 비해서도 낮았다. 바른미래당(3%) 상황 역시 민주평화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신당 세력들이 신당 창당의 명분을 갖췄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민주평화당이나 바른미래당 모두 창당 당시 ‘양당 기득권 타파’를 내세웠다. 대안정치 의원들이 민주평화당을 탈당하면서 “양당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해 새 당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아이러니다.
강력한 대선주자 없는 신당, 성공할 수 있을까
◆ 평화당 분당 뒤엔 박지원·정동영 ‘20년 애증’이 자리

명분보다는 권력 다툼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평화당 분당 뒤엔 정동영 대표와 박지원 의원 간 ‘20년 애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다.

둘 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고리로 정치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 대표는 1996년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 의원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두 사람 간 감정의 앙금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정 대표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정풍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천정배·신기남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며 쇄신파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은 박 의원도 쇄신파의 공격 대상이 됐다. 두 사람은 2016년 국민의당에서 뜻을 함께했지만 지난해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가 대표로 뽑히면서 다시 사이가 틀어졌다.

두 사람 갈등의 표면적인 이유는 노선 차이다. 박 의원은 “DJ 때부터 중도 개혁을 표방해 왔는데 정 대표가 지나치게 좌클릭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박 의원 측은 정 대표가 인터넷 전문은행에 반대한 것을 좌클릭의 대표적 예로 꼽았다.

정 대표 측은 박 의원이 사사건건 정 대표를 견제하고 딴죽을 걸었다는 불만이 크다. 정 대표는 박 의원을 겨냥, “탈당을 조종한 한 분의 원로 정치인에게 유감을 표한다.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뒤에서 들쑤시고 분열을 선동하는 그분의 행태는 당을 위해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쏘아붙인 것에서 이런 불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선 두 사람 간 패권을 놓고 벌인 갈등이 분당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