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를 대표하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스테이크 요리다. 실제 미국에서 값비싼 스테이크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곳이 바로 뉴욕시다. 그래서 100여 년이 넘은 유명 스테이크 하우스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그곳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스테이크집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100년간 변하지 않은 스테이크의 유구한 역사
스테이크 하우스의 역사는 비프스테이크 연회와 촙하우스에서 기인한다. 비프스테이크 연회는 19세기 미국 정치에서 후보자의 모금 행사로 개최되거나 선거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남성들의 값비싼 정치 행사였다. 후보자와 기부자들이 모여 얇게 썰어진 쇠고기 안심을 흰 빵 위에 얹어 먹었다. 한마디로 승리한 정치인이 후원자들에게 한 턱을 내는 자리였다.
20세기 들어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면서 비프스테이크 연회에서는 새우칵테일 등 여성을 위한 해물 요리들도 함께 제공되기 시작했다.
촙하우스는 1800년대 중반 생겨났다. 뉴욕시에 기업과 상인들이 성장하고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기업인과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비프스테이크는 여전히 비쌌기 때문에 양고기, 즉 머튼촙(양갈비)과 내장을 활용한 요리 그리고 베이컨 등이 주로 많이 팔렸다. 이곳에선 디저트로 애플파이·치즈케이크·초콜릿 무스 케이크 등을 내놓았다.
지금도 뉴욕시의 스테이크 하우스들은 스테이크를 빵과 함께 제공하며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상당한 크기의 초콜릿 무스 케이크 등을 디저트로 내놓는다. 스테이크는 이처럼 지난 100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곁들이는 주류는 계속 변해 왔다. 19세기 당시엔 맥주가 스테이크와 함께 소비됐지만 금주법이 등장한 이후 알코올이 없는 칵테일로 대체됐다. 지금처럼 비싼 와인들로 가득한 와인리스트가 일상화되기 시작한 것은 월스트리트가 번성하던 1980년대부터다.
뉴욕 미트패킹 지역에 있는 올드홈스테드 스테이크 하우스는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의 산 역사와 같은 곳이다. 1868년 세워진 올드홈스테드는 남북전쟁 직후 처음으로 차콜로 구은 스테이크 고기를 내놓았다.
또 피터 루거(Peter Luger)·킨스(Keens)·스미스앤드월렌스키(Smith & Wollensky) 등이 모두 그 당시 생겨나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 가고 있는 곳들이다. 이후 뉴욕엔 시카고에서 인기를 끈 모튼스(Morton’s), 뉴올리언스에서 유명해진 루스크리스(Ruth’s Chris) 등 전국적인 스테이크 하우스들도 속속 가세했다.
뉴욕시에서 가볼 만한 스테이크 하우스들을 소개한다.
피터 루거(Peter Luger)
무관심한 서비스, 예약도 신용카드도 잘 받지 않는 불친절함. 하지만 언제 가더라도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뉴욕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주로 포터하우스를 주문한다. 안심과 등심이 함께 T본에 딸려 나오는 쇠고기에서 가장 좋은 부위다. 단골손님들은 주로 점심때 루거 버거를 찾는다. 0.5파운드의 생고기 패티가 들어간 버거가 10달러대 초반에 제공된다. 다만 오후 3시 45분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1887년 설립된 이후 브루클린에 자리 잡고 있다. 분점도 한 곳(롱아일랜드 그레잇넥)밖에 없다. 창업자인 피터 루거가 죽었을 때 하루 두개씩 스테이크를 먹던 기업가 단골이 인수해 맛을 이어 간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 출신의 웨이터가 만든 스테이크 하우스가 한국에도 들어온 울프강이다.
올드 홈스테드(The Old Homestead)
1868년 만들어진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의 원조 격이다. 립아이가 유명하다. 워낙 커다란 덩어리의 스테이크를 내놓기 때문에 남자도 1인분을 다 먹기 힘들다. 일명 ‘도기백’이라는 먹다 남은 고기를 싸가는 방식이 처음 등장한 곳도 이곳이다.
킨스(Keens Steakhouse)
1885년 오픈한 고풍스러운 스테이크 하우스다. 촙하우스로 탄생해 지금도 26온스의 거대한 머튼 촙을 내놓는다. 킹스컷 립촙(갈빗살)이 주특기다.
이곳에선 천장과 벽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행가 JP 모건,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 뉴욕 출신의 대통령 테오도어 루스벨트 등이 이곳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피우던 담뱃대 등 수백여 개의 담뱃대가 전시돼 있다.
꽃(COTE)
재미 교포 김시준 씨가 2017년 봄 플랫아이언 지역에 세운 한국식 스테이크 하우스다. 들어가자마자 ‘꽃’이란 한글 이름이 손님을 반긴다.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미슐랭 1스타를 받으면서 맨해튼의 새로운 맛집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격찬을 받았고 이터(Eater)·타임아웃(Time-out) 등이 꼽는 뉴욕의 베스트 스테이크 하우스에 포함됐다. 40달러대의 모둠구이 부처스 피스트(Butcher’s Feast)가 인기 메뉴다.
울프강(Wolfgang)
피터 루거에서 40년 이상 웨이터로 일한 울프강 즈위너가 2004년 맨해튼의 최고 상업지역인 파크 애비뉴에 문을 열었다. 피터 루거에 납품하던 최고급 프라임 고기를 그대로 쓴다. 현재 뉴욕시내 다섯 곳을 포함해 한국 등 세계에서 10여 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스팍스(Sparks Steakhouse)
뉴욕의 마피아들이 모이던 스테이크 하우스다. 1985년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인 폴 카스텔라노가 식사를 하려고 들어가던 중 입구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66년 펍으로 문을 열었고 1977년 3번가의 지금 위치로 옮기면서 스테이크 하우스로 이름이 났다. 포터하우스를 취급하지 않고 뼈 없는 등심이 가장 유명한 메뉴다.
델모니코스(Delmonico’s)
1837년 월가에서 문을 연 뒤 JP 모건 등 유명인들이 단골로 찾던 최고급 레스토랑이다. ‘베이크드 알래스카’, ‘에그 베네딕트’, ‘랍스터 뉴버그’ 같은 요리를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와인리스트를 처음 제공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델모니코 스테이크와 안심·립아이 등이 뉴욕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스미스앤드월렌스키(smith and wollensky)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매년 한 번 경매에 부쳐 판매한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먹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도 나온다. 1997년 뉴욕타임스는 레스토랑 리뷰에서 “모든 논쟁을 끝내는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테이크보다 ‘클래식 26온스 프라임 립’이 더 맛있다는 이들도 있다.
창업자인 앨런 스틸맨의 아들인 마이클 스틸맨은 인근에서 퀄리티 밋츠(Quality Meats)라는 또 다른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7호(2019.08.12 ~ 2019.08.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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