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해관계인의 사내 조정을 거쳐야 한다면 새로운 발상이나 사업은 더더욱 탄생하기 어렵다. 뚜렷한 대안은 없지만 몇몇 회사는 혁신적인 도전에 나선다. 발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적극적인 대내외 합종연횡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결과를 내려는 실험 시도가 그렇다.
요컨대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는 신시대 성공 방정식의 모색이다. 특징은 자원 결합이다. 기업 내부에 한정됐던 개발의 관성을 깨고 외부 자원이나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日 ‘넘버원’으로 성장한 크라우드 펀딩사 ‘마쿠아케’
일본에선 그 연결고리로 크라우드 펀딩의 활용 사례가 주목된다. 잘만 올라타면 안전망을 두루 완비한 채 어디에도 없는 참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와 공유하며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두 주자는 2013년 창업한 크라우드 펀딩 운영 사이트 ‘마쿠아케’다. 단순한 자금 중개를 넘어 기획 발굴과 제품 생산의 컨설팅까지 아우르며 업계 ‘넘버원’으로 성장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상품 아이디어와 외부 자금 조달의 플랫폼 연결 창구에 가깝다.
특정 안건을 제안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조달하는데 사전 설정 희망 액수에 도달하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실행된다. 신청자에게는 특정한 보답이나 사례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사회문제 해결형의 공공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최근 성격과 규모가 다양해졌다. 독특한 사업거리로 자금 조달을 넘어선 활용법까지 목격된다. 수요 조사나 선행 판매로 제격인데다 본격적인 사업의 안전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쿠아케는 이용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며 누계 실행 건수(프로젝트)만 약 5500건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크라우드 펀딩 회사다. 선행 예약 판매 사이트답게 시작 단계의 정보 공개 후 신청 희망자를 연결해 준다.
초기 시점에 개발 자금과 구입 고객을 확보해 확실히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출자자에겐 금액과 비례해 해당 제품을 보내주는 식이다. 그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하는 참신하고 유일한 신제품을 가장 빨리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당연히 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구입(소비)을 넘어 지원(출자)이란 점에서 획기적 제품에 대한 응원도 잇따른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려는 쪽도 반갑기는 매한가지다. 목표 금액을 1000% 이상 웃도는 사례도 급증해 관심이 뜨겁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혁신 활로를 여는 중요한 채널로 부각된다.
가령 히로시마의 소공장이 제안·제품화한 고양이용 줄(고양이의 피부와 털을 긁어주는 물건)은 목표 금액이었던 30만 엔보다 훨씬 많은 283만 엔을 모아 성공적으로 출시됐다. 개당 3780엔에 일반인에게도 판매하며 대히트를 쳤다.
와카야마의 중소기업이 내건 접이식 전동 자전거 아이디어는 300만 엔이 목표였는데 40배인 1억2800만 엔을 기록, 모두 1000대를 생산해 출자자에게 되돌려 주며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 초음파의 음파로 찌든 때를 제거하는 기기나 노트북 터치패드에 숫자를 입력하는 패널 등 재미있으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제품화된 사례가 상당하다.
대기업부터 장수 기업까지 찾는 크라우드 펀딩은 초기 자금이 부족한 신생 기업이나 창업가가 활용하기 좋다는 인식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만나 획기적 제품을 탄생시킨 것도 적지 않다.
기대 효과는 비슷하다. 대기업일수록 회의가 많거나 결제 라인이 복잡하다. 여기에 조직 문화는 익숙함에 반기를 들고 전례가 없는 것을 거부해 신속성이 핵심인 혁신적 제품 출시의 걸림돌로 작용하는데,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크라우드 펀딩이 요긴하다. 크라우드 펀딩의 독특한 시스템이 대기업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것이다.
사내 반대로 좌절된 사례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성공한 것도 적지 않다. 크라우드 펀딩에 넘겨보고 승인(목표 금액을 넘길 경우)되면 제품화하는 식이다. 사내 허들을 외부 평가로 대체해 위험을 줄이고 지원까지 얻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아예 마쿠아케는 2017년 대기업과 함께 신규 사업과 상품 개발을 위한 팀인 ‘MIS=마쿠아케·인큐베이션·스튜디오’를 발족했다. 마쿠아케 스태프가 대기업에 파견돼 신제품 프로젝트 기획에 동참하는 구조다. 최종적으로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 조달부터 제품 출시까지 지원하는 목적이다.
이 경험을 토대로 대기업 의뢰가 속출, 모두 17개사와 30개 프로젝트를 실행해 왔다. 대기업의 연구·개발비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결과물이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한 시도다.
일례로 가전 메이커 ‘샤프’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일본 청주의 보랭 팩을 제품화했다. 샤프의 액정 기술을 활용한 보랭제의 활용 범주를 넓히려는 시도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실현된 것이다. 술병을 감싸주는 것만으로 마이너스 2도가 유지돼 술맛을 지켜준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전통 장수 기업의 새로운 성공 루트로 부상
후지쓰는 신기술인 사물인터넷(IoT)을 녹여낸 전자줄자 시판에 성공했다. 휴대전화로 실물 사진을 촬영한 후 전자줄자로 실제 길이를 재면 자동으로 화면에 수치가 기입된다. 원래는 개개인을 대상으로 고안됐는데, 현재 의류메이커·백화점·의류판매점 등 도매업체의 대량 주문까지 연결됐다.
후지쓰는 사업 확대를 검토 중이다. 전용 용기에 담긴 샤워 거품이 미세하게 나오도록 조정되는 샤워 헤드도 제품화 단계에 돌입했다. 소화기 제조 회사인 모리타의 합작 제품으로 레버만 바꾸면 물과 거품을 자유자재로 틀 수 있다. 상상은 해도 실제품은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체현 결과다.
일본 최초로 카세트테이프를 만든 ‘막셀’은 이온전지 이후 최근엔 특화 기술인 보온성을 활용,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만으로 로스트비프가 완성되는 전용 용기 개발에 착수했다. 라이온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소비 수요를 확인한 후 칫솔처럼 입안 근육을 전동 자극해 표정을 밝게 해주는 미용 가전의 일반 판매까지 돌입했다.
대기업과의 협업도 독특하지만 전통적인 장수 기업도 새로운 성공 루트로 크라우드 펀딩에 주목한다.
섬유업계 장수 기업인 도요보는 방적에서 시작해 섬유 소재 개발·제조를 축으로 해 고기능섬유·필름까지 아우르는 전형적인 소재 기반의 B2B 기업이다. 1882년 창업해 노동자만 1만 명인 거대 기업이다. 고신축성 셔츠 섬유나 신칸센 좌석 쿠션, 비닐·캔 등 식음료 패키지의 신제품도 많다. 즉 일상생활에서 친숙하지만 정작 일반 고객에겐 지명도가 거의 없다. 특화 소재를 다양한 곳에 사용하도록 알리고 싶은데 B2B 기업으로선 한계가 뚜렷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이때 활용된다. 외연 확장을 위한 일반 소비자와의 접점 확보가 그렇다. 크라우드 펀딩을 전제로 임직원 아이디어를 모아 회사 기술을 알리고 신제품까지 수용 여부를 타진해 보는 차원이다. 모두 30명(5명씩 6팀)이 도전, 새로운 실험에 나섰고 고기능 섬유를 반영한 기획안이 호평을 받았다.
항균 기능과 신축성은 물론 쾌적하고 보온·방풍·방수성 등에 특화된 새로운 섬유가 일상생활 의류·가방·쿠션 등에 연결되는 사업적 확신성을 크라우드 펀딩의 타깃 유저(공략 고객)에게 물어 검증받고 제품화를 결정한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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