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문화 사업에 투자한 금액 7조원…‘기생충’의 칸 영화제 수상으로 결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문화보국’ 사명감…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영화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이어온 CJ그룹의 노력 역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CJ는 지난 20년간 다양한 장르와 신선한 소재의 한국 영화에 꾸준히 투자하고 멀티플렉스 등 산업 인프라를 구축해 한국 영화 산업의 질적·양적 성장에 기여해 왔다”며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기생충’이라는 걸작이 나와 세계적 권위의 시상식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CJ는 1995년부터 현재까지 320편이 넘는 한국 영화를 꾸준히 투자·배급해 왔다. 그간 문화 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만 따져도 7조5000억원이 넘는다. 국제 영화제 진출과 수상으로 한국 영화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데 CJ가 1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설국열차’ 투자 난항에 ‘전액 책임’ 결정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과도 인연이 각별하다. 2009년 영화 ‘마더’를 함께한 이후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4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설국열차’는 촬영을 앞두고 해외투자 유치에 애를 태웠다. 당시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CJ였다. 제작비 전액을 책임지기로 하고 제작에 들어간 뒤 해외 판로를 개척해 글로벌 흥행을 이끌어 냈다. 이를 통해 한국 영화의 제작 역량과 위상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CJ가 20년 넘게 문화 사업을 지속해 온 데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는 문화보국의 사명감이 밑바탕이 됐다. 담대한 비전을 품어 왔던 만큼 투자 규모도 남달랐다.

이 회장은 제일제당 상무로 재직하던 1995년 이런 사명감을 실천으로 옮겼다. 제일제당이 그동안 국민의 입을 즐겁게 해왔다면 앞으론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비즈니스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신생 할리우드 스튜디오인 드림웍스에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등 할리우드 유명 영화감독들이 함께 만든 드림웍스는 총투자금 10억 달러 가운데 30%의 지분을 투자받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이에 제일제당은 각고의 노력 끝에 3억 달러(3000억원)를 투자하는 대주주로 참여했다. 드림웍스 투자를 통해 CJ는 배당금 외에도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고 영화 배급, 마케팅, 관리, 영상 관련 기술 등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투자를 결정했을 때 제일제당의 연간 매출액은 1조3000억원으로, 드림웍스 투자액 3억 달러는 제일제당의 연간 매출액의 20%가 넘는 금액이었다. 그룹 내부에서는 대부분의 임원이 불투명한 문화 산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이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투자를 과감히 밀어붙였다.

이런 투자는 CJ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시기였던 1998년 4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을 오픈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물론 그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해 영화 사업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철수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국내 영화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멀티플렉스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사업 진출을 강행했다.

◆영화 관객 폭발적인 증가 이끌어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CGV강변11의 개관 첫해 관객 수는 무려 350만 명에 달하는 등 성과를 내며 업계 관계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객석 점유율은 평일 38~41%, 주말 77~80%로, 당시 서울 시내 개봉관의 평균 객석 점유율이 평일 15%, 주말 45%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해 2배 이상 앞서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고급스러운 카펫과 인테리어, 여러 개의 스크린과 외식 공간 등을 갖추며 CGV는 점차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CJ는 CGV를 본격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영화 관객의 폭발적인 증가를 이끌었고 이를 토대로 한국 영화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수치만 놓고 보더라도 연간 누적 관객은 6년 연속 2억 명을 넘겼고 할리우드 영화에 밀렸던 한국 영화 점유율은 8년 넘게 50%가 넘고 있다.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가 넘는 국가는 미국·일본·중국·인도뿐이다.

또 CJ는 영화 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도 앞장서 왔다. 표준근로계약서 준수, 스태프 4대보험 가입, 초과근무 수당 지급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이를 철저하게 지켜온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면 전체 제작비가 5~10% 이상 더 들기 때문에 제작사나 투자사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는 2013년 표준근로계약서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영화 ‘국제시장’ 이후 모든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의무화하고 있다. ‘기생충’도 봉준호 감독이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만든 것이 수상과 맞물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문화보국’ 사명감…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또한 2013년 한국 영화 제작사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부율(극장 입장권 수익을 투자·제작사와 영화관이 나누는 비율)’을 조정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제작사와 극장의 부율을 기존 50 대 50에서 55 대 45로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CJ CGV가 부율 개선에 나선 이후 메가박스·롯데시네마도 동참하는 등 시장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이 회장의 현재 목표는 한국 영화를 활용한 글로벌 시장 공략이다.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모색하는 국내 영화 산업이 나아갈 길은 글로벌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성장 뒤에는 영화 산업의 오랜 부침과 적자에도 불구하고 문화 산업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확고한 비전이 있었다”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것을 넘어 세계인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글로벌 1등 문화 기업이 되는 것이 향후 목표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