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 격차 해결하기 위한 일본의 승부수…고연봉이지만 성과 없으면 바로 해고
일본 도시 중년들이 지방행을 택한 이유는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고도성장을 통해 도농 격차의 정점을 보여준 일본은 ‘지역의 부활’을 지속 가능한 사회 건설을 위한 돌파구로 채택했다. 도시 우선적인 자원 배분이 낳은 부작용을 극복하고 도농 간 균형을 통해 지방권역의 성장 활로를 되찾겠다는 의도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지방으로 이전한 일본의 중년들

지역 재생, 특히 농산어촌권역의 부활 과제는 일본 정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제2차 아베노믹스의 부제로 ‘로컬 아베노믹스’를 채택했을 만큼 지방 소멸의 위기감은 위험수위에 달했다. 방치하면 도심 간 갈등이 증폭되고 지방 경제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예전에 없던 지방 부활책도 수두룩하다. 도시 청년을 지방 농촌에 보내는 지역이전협력대, 중앙 지원 상품권인 지역부흥프리미엄진흥권, 세제 혜택으로 도심 거주자의 지방 기부를 유도하고 그 답례품이 유력 산업으로 확대·진화된 고향 납세 등이 그렇다.

지방을 되살리려는 최종 목표는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경제 기반의 확보다. 그간은 정반대였다. 도심이 일자리를 독점해 지방의 인구가 유출됐다. 호·불황과 상관없이 도심 블랙홀의 승리였다.

이젠 역발상이다. 도심 고용은 나빠졌고 지역 방치는 위험수위여서 둘의 연결 함수가 떠오른다. 한쪽은 사람이 흘러넘치고 한쪽은 사람이 부족하니 ‘도심 인재+지역 고용’의 매칭 효과를 기대하자는 차원이다. 도시 중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지방 경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촉발제가 된다는 것이다. 중년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도시의 인재들에게도 지역 경제의 부활 작업은 일석이조다. 소득과 보람 모두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해진 것은 지방자치체다. 균형 발전론에 치여 수축된 지방 지역일수록 지역 재생은 최우선적 실행 과제다. 내버려 두면 소멸은 시간문제다. 대부분이 적극적으로 차별화된 정책 발굴에 나선다.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민간 협력을 수용한다.

실체적 지역 활성을 위해 중년의 경험을 빌리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권역 내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세운 산업지원센터가 자원 결집의 일선 무대다. 민간 경험자에 한정해 1200만 엔(약 1억2692만원)의 연봉을 내걸며 수장으로 모신다. 그 덕분에 도심 주재 중년 경험자들이 경쟁적으로 출사표를 내고 있다.

‘도심 인재+지역 고용’의 아이디어는 10여 년 전부터 확산됐다. 둘을 연결하는 매칭 작업을 ‘비즈모델’로 부르며 사업화한 기업 ‘에프비즈(f-Biz)’도 있다. 코이데 무네아키 에프비즈 대표는 은행 출신의 지역 재생 성공 경험자로, 일본에선 독자 스타일의 지역 기업 지원, 창업의 일인자로 불린다. 각 지자체에 걸맞은 경력 보유자를 산업지원센터장으로 연결, 신상품·서비스는 물론 신규 진출 등 매출 증진을 뒷받침한다.

거액 보수와 결합된 지역 거점의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활약할 인재 선발답게 경쟁률은 엄청나다. 엄격한 사후 평가와 연간 계약의 조건이 붙지만 응모자가 3000명에 이른다. 현재 20여 지자체가 도입했고 검토 중인 곳도 늘어나고 있다. 센터장은 30~40대가 많고 이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성과는 출중하다. 센터장 선발 이후 60~70%가 가치 창출에 동의한다. 고급 패션 브랜드 일본 지사장 출신부터 대형 여행 대리점 해외 지점장 등이 지역에 뛰어들어 지역 명물을 이용한 독특한 음식 메뉴는 물론 방직 부품 회사의 유휴 설비를 재활용해 빈틈을 청소하는 편리한 도구도 개발해 냈다.

이른바 ‘지역거리의 컨설턴트’로 불리는 전직 경험자가 지역 한정 기업 지원 전문가로 변신한 덕분이다. 이들은 그간 행정 주도의 산업·기업 지원이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완결되지 못했다는 한계에 정면으로 맞선다. 지역 재생의 성과가 본인의 몸값에 반영되는 만큼 자연스러운 혁신 사고가 발휘된 결과다.

물론 여차하면 해고다. 평가에 따라 봉급이 삭감되기도 한다. 기준점이 성공 모델이기 때문에 노력 여하보다 성과 도출이 중요하다. 월급이 세금이기 때문에 지역 활성화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끝이다.

◆‘기업가 정신’의 무대 된 일본의 지방 도시

성공 사례는 많다. 구마모토 아마쿠사시는 시 직영의 중소기업지원센터 ‘아마비즈’를 열었다. 이곳을 방문한 현지 기업은 전체의 20%에 달하는 1000개다. 주로 소농원 경영자다. 상담 내용은 대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판로 개척이다.

해법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활용한 적재적소의 정보 전달이다. 외자계 대형 컨설팅사 경력자가 직장 생활에 환멸을 느껴 센터장으로 전직해 온 이후의 성과다. 상담 기업 80%가 성과를 낼 만큼 엄격한 평가 속에 3년에 걸쳐 300명의 지역 고용을 달성해 화제다. 지자체가 운영하기 때문에 상담비용은 전액 무료다.

아타미시의 동백기름 사례도 재미있다. 매출 실적이 30배나 늘었다. 머리카락에 바르는 기름이라는 통념을 버리고 식용 제품으로 진화한 덕분이다. 원래 동백기름은 최고급 외자계 호텔의 튀김집 등 일부 고객에게만 식용으로 팔렸는데 이를 튀김 전용 건강 기름으로 이미지를 확대하면서 매출 증진으로 연결됐다.

즉 식용 동백기름을 한층 세분화한 이미지로 튀김 전용이란 의미 부여에 성공한 것이다. 최고급 호텔에 납품되는 튀김 전용의 동백기름은 그 자체로 차별성을 확보한 마케팅의 승부처였던 셈이다. 역시 민간에서의 마케팅 활약 경험이 있는 신임 센터장의 재생 성과다.

2018년 8월 홋카이도 구시로시의 비즈니스서포트센터는 오픈 이후 1개월간 상담 예약이 꽉 찼을 정도다. 대규모 정보 서비스 회사 영업맨 출신 센터장이 가족과 함께 해당 지역에 이주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의 첫째 상담 요청자는 오픈 1개월 만에 생존 기로에 선 피자레스토랑 점주였다. 개점 2주간 매출은 목표의 30%에 못 미쳤고 평일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생기는 등 위기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상담 과정에서 얻은 힌트는 생각지도 않은 포장 주문 수요였다. 맛은 좋았지만 점주 홀로 대응하기가 힘들어 점포 흐름을 개선하며 포장 메뉴를 개발한 게 주효했다.

세키시의 ‘일본도 가위 사례’도 있다. 일본도 모양의 가위인데 그간 매출이 정체 상태였다. 현지 센터가 상담에 나선 결과 과거 전국시대 특정 지역 유명 장군을 모티브로 한 무장 시리즈의 개발이 활로 모색의 계기가 됐다. 모두 14개 모델을 만들면서 매출이 2배나 늘었다. 전통 역사 붐에 편승해 도검을 화제로 연결한 덕이다. 더욱이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했다.

이런 사례가 나오면서 중앙정부도 나섰다. 이른바 ‘만물 지원 거점’을 경제산업성과 지역 지자체가 연대해 광역 단위마다 1개소씩 설치했다. 이와 함께 ‘프로페셔널 인재 사업’은 내각부가 45개 광역 지자체에 설치, 평균연령 60대의 전직 임원들을 매칭하고 있다.

상담은 세세하게 이뤄진다. 돈보다 지혜로 흐름을 바꾸자는 차원에서 ‘1아이템 1시간’ 면접 중시형 상담을 고집한다. 문제보다 장점을 찾는 접근 방식이다. 적어도 1시간이면 집중적인 고민 분석과 틈새 발굴이 가능하다.

어차피 지역 소재의 사업 모델은 거의 모든 게 약점이기 때문에 발상 전환의 혁신 지점이 아니면 역전이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게 치열한 민간 경험에서 축적된 감이다. 어떤 지역이나 비즈니스 모델도 세일즈 포인트는 있기 마련이다. 이를 인식·발굴해 성과로 연결하는 게 관건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작은 혁신 도전을 반복하며 지역에 활기를 넣는 게 미션이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행해 봐야 성과 여부가 확인되고 도전이 넘쳐야 또 다른 활기를 낳는다. 그만큼 기폭제로서 경험이 축적된 인재 확보가 중요하다. 기업가 정신을 지닌 우수 인재의 도전 무대로 활로 모색이 절실한 지방권역에 활용된다면 지역 재생은 한층 매력적일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