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청년=빈곤’은 위험한 접근법…안심·안전지향 지출은 증가세, 복합적 경험 소비로 전환
[한경비즈니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일본은 최대 호황기다. 통계지표와 체감 경기 간 논란이 많지만 장기·복합 불황으로 시작된 헤이세이(平成) 30년(1999~2019년)의 마무리는 호황 확률이 지배적이다. 이미 전후 최장기 확대 국면(이자나미경기=73개월)을 넘어선 75개월(2012년 12월~2019년 2월) 연속 호황을 기록, 아베노믹스에 힘을 싣는다.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20년’도 옛말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 시장은 그만그만하다. 실질임금이 늘면 소비지출도 커진다는 속설마저 의심받는 처지다. 하물며 미래 시장의 성장 품목을 읽어내는 것은 더 어렵다. 지금부터 몇몇 일본 보고서에서 이 난센스의 본질 해법을 모색해 본다.
소비 정체는 구조적 이유 때문이다. 한국도 곧 맞을 성숙사회의 소비 감퇴 원인 분석은 그래서 의미 있다(닛세이기초연구소, 2018년). 먼저 경제 불안이 가계 심리에 배어 방어 소비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일상화된 고용·복지 불안 등 미래 염려 때문이다. 소비 규모가 작은 고령 인구의 비율 확대도 있다. 성숙사회답게 덜 쓰면서 고품질의 소비생활도 가능해졌다. 가치관의 변용도 있다. 소유에서 사용으로 공유 경제가 확산, 품질 동경과 물품 욕구가 약해졌다. 소비 수급의 불일치도 거론된다. 자녀 교육 관련 서비스 등 소비 욕구가 커졌지만 공급 체계가 달려 충분한 소비지출을 유도하지 못해서다. 공유 소비와 통신 결제 등 실제는 활황인데 정작 통계에 잡히지 않는 기술적 문제도 있다(가계 조사 등 불포함).
한국은 갈림길에 섰다. 곧 성숙사회다. 이제 고성장은 없다. 1~2%의 국내총생산(GDP)으로 활황을 얘기할 날이 머지않았다. 기업은 고민스럽다. 발 빠른 미래 선점으로 고객 욕구를 읽지 못하면 현상 유지마저 어렵다. ‘인구 변화→고객 변화→수요 변화’ 속 사업 모델의 혁신 변화로 성숙 시장의 핵심 고객을 확보하는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호황세인 일본마저 소비 정체로 야단인데 성장 지체에 소득 상황까지 악화된 한국으로선 중첩 악재에 놓였다. 한국이 일본 경로를 분석해야 할 이유다. 오늘의 일본은 내일의 한국을 읽는 바로미터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내일의 소비 시장을 읽으려면 현재 일본의 정밀 분석이 관건이다. 그들은 이미 감축 미래를 지배할 신기준(new normal)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소비는 밝다
먼저 일본 시장은 소외되기 십상인 청년 소비에 주목한다. 고령화에 걸맞지 않은 상식 파괴적인 접근 전략이다. 원래 인구 변화가 초래할 성숙사회의 주요 고객은 중·고령 인구다. 베이비부머까지 가세하면서 인구 비율도, 노후 기간도 압도적인 파이를 차지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소비를 강조하는 것은 청년 기호를 장악해 가치관에 맞는 공급 체계를 갖추면 생애 전체에 걸친 장기·충성 고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미쓰이스미토모트러스트기초연구소, 2019년). 또 ‘소비행위=소득수준’은 맞지만 불황기조차 품목별 증감 항목이 다르다는 점에서 ‘청년=빈곤’의 단순 키워드도 위험한 접근법이다. 결정적인 것은 청년 각자의 기호 변화, 즉 세대 특성(코호트)에 맞는 제품·서비스의 발굴 여하에 달렸다.
분석에 따르면 청년 소비는 밝다. 전체적인 지출 수준은 절약 지향적이지만 건강식품·일용품 중에서 안심·안전 지향이 높아 관련 지출이 증가세다. 또 서비스에 특화, 단순한 제품 소비에서 복합적 경험 소비로의 전환 추세도 뚜렷하다. 가족 구성 여부도 청년 소비의 분기점이다. 나 홀로 홀몸 세대와 2인 이상 청년 세대는 가령 외식의 경우 성향이 구분된다. 홀몸 청년보다 가족 세대의 외식 의향와 지출 비율이 강해서다. 외식업계라면 청년 맞벌이를 노려볼 만하다는 얘기다. 패션·교양오락·여행소비도 젊다고 같지는 않다. 가족 수는 반비례이지만 연령 증가는 비례다. 즉 중년 미혼이 늘면서 4050세대의 독신 인구는 적극적인 지출 경향이 뚜렷하다. 청년 전체의 일반화보다 청년 각각의 특성화에 주목하라는 뜻이다.
반대로 고령 수요가 성숙사회의 알짜 시장인지 보는 것도 필요하다. 으레 커질 것이란 일반화의 오류 지점을 찾자는 시도다. 실제 2017~2027년의 10년 시장을 봤더니 같은 고령 수요라도 소비 품목별 기상도는 엇갈린다. 보건 의료 서비스와 의약 건강식품, 오락 서비스, 일용·화장품은 소폭 성장하되 가구·가사 용품, 가전, 식료품, 서적·신문, 패션 등은 감소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앞의 성장 품목은 지금도 활황세다. 중요한 것은 추세 여부다. 미래 시장의 결정권은 현재의 고령 인구가 아닌 앞날의 고령 인구에게 있다. 다양한 가치관의 청년 세대가 늙어갈 시점엔 상황이 달라진다. 건강식품만 해도 현재 청년은 관심이 많아 이들이 고령 인구가 됐을 때는 대폭 성장이 기대된다. 결국 청년 그룹의 현재적 소비 이탈만 볼 게 아니라 욕구별 가치 제공으로 미래 수요를 선점하는 게 중요해진다.
다만 이 작업은 긴 호흡이 전제된다. 당장 매출로 직결되기보다 일종의 선투자에 부합하는 접근법이다. 연령 효과(특정 연령에 주목한 경향 분석)보다 세대 효과(특정 세대의 시간 변화에 맞춘 경향 분석)를 중시, 장기 시선으로 현재 청년의 소비감 각에 주목하자는 차원이면 족하다.
◆미래 시장의 결정권은 ‘앞날의 고령 인구’다
일본의 가구주가 환갑을 넘긴 비율은 2015년 45%에서 2035년 52%에 달한다. 고령 세대가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소비 여력이 적은 고령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소비 시장의 하향 압박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품목별 고령화 영향이 소비 시장에 어떻게 적용될지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다(미즈호종합연구소, 2019년). 결과에 따르면 소비 확대는 역시 고령 인구의 욕구 발현에 달렸다는 것이 증명된다. 소비 신장률 1위인 간병 서비스(23.2%)를 필두로 집안 생활을 위한 설비 수선·유지, 건강식품 등 고령 인구의 필수 품목이 상위에 랭크된다. 특이한 것은 교제비다. 교양·오락용 교제비는 고령의 홀몸 여성이 압도적인 소비 주체로 보이고 실제 이들의 여행 욕구도 높아 보인다.
반대로 소비가 대폭 감소하는 품목도 적지 않다. 공통 키워드는 ‘아동’이다. 아동용 의복·교육비 등 관련 품목이 대거 올랐다. 자전거·자동차 등 교통 관련 지출도 마이너스다. 단지 자동차는 향후 자율운전차의 보급 여부에 따라 고령 세대의 수요 환기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콘텐츠 이용과 휴대전화 통신 등의 비용도 예상으로는 감소 품목이지만 고령 세대 소비 지향에 눈높이를 맞추면 하방 경직성을 지켜낼 수 있다. 다만 청년 세대의 고민거리인 임대료 등 주거 안정을 위한 소비지출은 다소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대 감소와 고령 심화의 시대 변화를 볼 때 소비 정체는 불가피한 대세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좋아질 품목과 나빠질 품목을 명확히 파악, 선제 대응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고정관념의 탈피다. 각 보고서의 내용처럼 시대 변화는 같아도 세부적인 개막 현실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저성장·고령화의 성숙사회에 진입하면 전체 소비는 하향 압력을 받을지 모르지만 개중에도 성장 품목은 존재한다. 고령 인구가 늘고 청년 인구가 줄어들어 관련 시장이 자연 발생적으로 변동할 것이란 판단은 섣부르다. 시간이 흐르면 고객은 바뀌고 욕구도 달라진다. 성숙사회의 소비 시장을 위한 힌트 카드는 이미 눈앞에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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