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국 지향한 ‘베이징 컨센서스’, 미·중·IMF 관계 변화…한국, 선제적 대응책 마련해야
[한국경제신문=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최장기 ‘콘트라디예프 파동’, 중기 ‘주글라 파동’, 단기 ‘키친 파동’ 중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주글라 파동으로, 2010년 이후 떨어져만 가던 중국 경제가 올해 1분기 성장률 발표를 계기로 ‘그린 슛(green shoots)’ 기대가 일고 있다. 그린 슛은 엄동설한을 뚫고 봄날에 새싹이 돋는 현상을 말한다.
그린 슛의 운명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새싹이 잘 자라 가을에 ‘풍성한 과일(golden goals : 본격 경기 회복)’과 다른 하나는 노랗게 질려 다시 죽는 ‘시든 잡초(yellow weeds : 일시 회복 후 재침체)’다. 미·중 마찰, 3대 회색 코뿔소 등과 함께 두 운명을 가름할 새로운 복병으로 중국의 ‘부채 함정 외교(DTD : Debt Trap Diplomacy)’가 떠오르고 있다.
DTD는 중국이 개도국에 대출해 주고 이를 빌미로 모든 문제를 간섭하는 일종의 세 확장 전략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해 주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청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신탁통치와 동일한 방식이다. 올 들어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선진국으로 그 대상을 넓혀 가고 있다.
◆ 중국의 세 확장 전략 ‘DTD’
1956년 창립된 파리클럽의 비회원국인 중국은 개도국에 얼마나 대출해 줬는지 통보할 의무가 없어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파리클럽은 제삼자의 관점에서 대출 상환 연장, 채무 탕감, 이자율 조율(주로 인하) 등을 다루는 공적 채무 조정 협의체다. 상업적 채무를 조정해 주는 런던클럽과 대비된다.
중국은 패권국을 지향한 이후 ‘베이징 컨센서스’를 추진해 왔다. 초기에는 자원 확보를 매개로 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을 매개로 세력을 확장해 왔던 ‘워싱턴 컨센서스’와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신용 경색에 시달리던 미국이 디레버리지(달러 자산 회수)에 나서자 그 틈을 파고들어 자금을 공급하면서 충돌이 심해졌다.
베이징 컨센서스에 따른 중국의 세 확장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개도국에 대출을 늘리는 동시에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참가국에 차관 공여를 최대한 늘려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IMF의 특별인출권(SDR) 바스켓 준비 통화로 들어가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이다. 후자는 2016년 달성했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대출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도국(일부 선진국 포함) 대출과 세 확장 간 선순환 관계가 형성됐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에는 DTD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이 부채가 급증하고 신용 경색이 심해지자 DTD가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년 전부터 성장률 계획 경로에서 이탈될 기미를 보이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질병인 3대 회색 코뿔소를 해결해야 한다. 3대 회색 코뿔소는 알면서도 당하는 투자 용어로, 중국의 경우 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을 말한다. 발생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면 직간접적으로 부동산 투기와 연계돼 있다.
중국 정부는 3대 회색 코뿔소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부동산 투자부터 ‘네거티브(원칙-자유, 예외-규제)’에서 ‘포지티브(원칙-규제, 예외-자유)’로 정책의 고삐를 틀었다. 무제한이었던 개인의 해외 자금 송금도 제한했다. 증시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융 완화를 추진하는 속에서도 3대 회색 코뿔소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 등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 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70%(일부는 300%)로 일본의 250%보다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10년 전 수준인 160%를 목표로 과감하게 줄여 나갈 계획이다. 작년 이후 중국 기업의 디폴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부실채권도 급증하고 있다.
◆ IMF도 ‘DTD 후유증’ 우려
특히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의 부채가 골칫거리다. 세계 3대 평가사의 하나인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의 부채는 35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 10%가 넘는 360억 달러의 부채 만기가 올해 상반기에 몰려 있는 것을 세계 부동산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채무 불이행 사태를 막기 위해 해외 부동산과 채권을 매각하는 등 차이나 머니를 본격적으로 회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자산시장은 디레버리지(투자 자금 회수)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중국은 종전처럼 개도국이나 일대일로 참가국에 자금을 줄 만한 상황이 아니다.
IMF의 재원 사정도 녹록하지 않다. 특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쿼터 조정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자체 신용을 토대로 영구채 발행을 검토할 만큼 재원 사정이 악화됐다. 아르헨티나·터키·파키스탄 등 구제금융 신청이 급증했던 작년 이후 IMF 파산설이 나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IMF로서도 중국의 DTD를 막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DTD의 후유증으로 자금난에 봉착한 회원국이 신청한 구제금융을 지급해 주면 IMF가 중국의 세 확장을 도와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IMF가 중국의 시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 춘계 회의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루는 배경이다.
트럼프 정부가 IMF에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하다. IMF·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과 동일한 선상에서 중국 중심의 긴급외환기금(CRA)·신개발은행(NDB)·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간 ‘3×3 매트릭스 구도’가 잡힌 상황에서 IMF가 중국으로 넘어가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 온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 질서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IMF 구제금융 수혜국이자 중국에 대한 경제 비율이 높은 국가다. 대외 경제정책도 중국에 편향적이다. IMF에 따르면 미·중 무역 협상 불발로 세계 관세율이 1%포인트 인상되면 GDP가 0.65% 감소돼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로 추정됐다. DTD에 따른 IMF·중국·미국 간 삼자 관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할 때다.
sch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