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과.홍당무로 친환경 크레용 개발, 방치된 대나무.차는 흡착제로 가공

시장은 우성(優性)에 주목한다. 열성(劣性)은 설 자리가 없다. 적자생존과 승자 독식의 게임 법칙이다. 새롭고 뛰어난 부가가치 창출 전략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어려운 길답게 실패는 많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다. 역발상의 틈새 전략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버려지거나 방치된 뭔가가 고객을 모으고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다. 방치의 경제적 재발견이다. 과연 어떤 게 유효할까.
현대는 풍요 사회다. 지구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층이지만 적어도 선진 대열에 진입한 국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 빈곤은 있어도 절대 빈곤은 벗어났다는 게 맞다. 대량생산·대량소비가 다품종·변량생산으로 바뀐 게 증거다. 미시적 고객 계층이 늘면서 소비 수요가 까다로워졌다. 폐기 신세로 전락한 제품도 많다. 불량은커녕 하자조차 용납하지 않는 시대 조류다. 원하면 다 갖기 때문에 꼭 원하는 것만 가지려는 심리 발동이다. 불합격이면 선조차 못 보인 채 버려진다.

‘버릴 게 없다’... 불량 농산물의 재발견
겨기름에 채소 분말 섞어…농가도 반색
대박은 틈새에서 비롯된다. 버려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플러스알파가 없는 것과 같다. 생활·생산 현장 곳곳에서 버려지는 것일지라도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기발한 상품성의 대박 후보로 진화할 수 있다. 실제 소재 가치가 있지만 모양 변질과 상처·흠집 이유로 폐기되는 게 많다.
재발견·재활용의 시대다. 벤처의 눈썰미도 이런 틈새에 꽂힌다. 지방 도시 아오모리의 한 디자인 회사(미즈이로)는 버려지는 불량 농산물에 주목해 사업 모델로 승화했다. 채소·과일·곡물을 활용해 만든 크레용이 주력 무기다. 이른바 채소 크레용 ‘베지타보’다. 10색 모두에 채소 분말을 넣어 배합한 것으로, 색깔별 이름은 해당 농산물명을 그대로 붙였다. 빨간색은 사과, 검은색은 흑두, 노란색은 옥수수 등으로 색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제품의 주성분은 겨기름(米油)이다. 겨기름은 정미 과정에서 생성되는데 대개는 조리용 기름으로 팔리거나 폐기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게 채소 분말과 잘 섞이고 매끄럽게 그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이다. 제조는 60년 역사의 크레용 공장 장인이 수동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낸다.
지역 농가와의 상생 협력은 기대 이상이다. 농산물 폐기처분에조차 상당한 비용이 드니 농가로서는 환영 일색이다. 가령 양배추는 수확 때 폐기된 겉잎, 파는 잘려 나간 부분, 홍당무는 크기가 작아 납품할 수 없는 것 등을 활용한다. 특히 공산품과 달리 농산품은 잘 버려진다. 신선도가 생명이니 유통기한을 감안하면 돈을 들여 폐기할 수밖에 없다. 회사는 농가와 협력해 수집한 폐기 채소를 분말로 가공해 공장에 보낸다. 아이디어의 힘은 컸다. 알려지기 시작한 2014년부터 각종 수상 무대에 자주 등장한다.

청과물 선도 유지에 대나무 흡착제 효과
현재는 대폭적인 리뉴얼을 거친 시즌 3를 발매 중이다. 나무상자에 그림 패키지를 넣어 선물 콘셉트로 만들었던 이전 제품과 달리 책 디자인을 채택, 어필한다. 10색 1세트에 2000엔을 책정했지만 인기가 높아 판매 랭킹 상위권을 독점한다. 기발한 크레용으로 성장 탄력을 받은 회사는 추가적인 새로운 상품 개발에 적극적이다. 채소 분말과 밀랍만으로 만든 안전·안심의 양초 발매가 대표적이다. 제품 취지는 동일하다. 폐기 직전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고향 사랑이다.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농산품으로 만든 차·과자·수프 등의 이종업자는 물론 해당 출신의 작가 작품까지 연계·광고하며 판매를 거든다. 지역이 사업 성공의 기본 재료를 줬으니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서다.
대나무도 중요한 재활용의 발견 소재다. 플라스틱 개발 이후 대나무 생산량은 현격하게 줄었다. 1976년 1000만 속(1속=100개)이던 생산량은 최근 120만 속까지 줄었다. 줄어든 물량만큼 방치된 대나무 밭은 늘었다. 관리 포기의 대나무는 주민 생활을 방해하는 골칫덩이로까지 전락했다. 이런 쓸모없는(?) 대나무를 연구해 청과물의 신선도 유지 기술을 개발한 회사(탄카)가 있다.
2012년 설립된 직원 4명의 신생 벤처지만 특허 등 탁월한 사업 모델이 알려지며 정부 지원 등도 크게 늘었다. 건설 회사에서 정년을 맞은 설립자가 방치된 대나무에 인생 2막을 걸고 대나무 활용 사업에 도전했다. 대나무를 분쇄해 화로에 까는 독특한 방법으로 일종의 죽탄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죽탄은 습기·냄새를 흡착, 물과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결과다. 주력 제품은 ‘탄카후레시’라는 흡착제다. 흔히 방습제·건조제로 불리는 실리카겔 종류다. 대나무로 환경적이면서 안전한 흡착제를 개발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장기간 청과물의 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개발 덕분이다.
장점은 많다. 화학제품이 태반인 보통의 흡착제와 달리 대나무 천연 성분이 주재료로 안전성이 높다. 채소의 장기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특유의 방출 가스인 에틸렌뿐만 아니라 암모니아·아세트알데히드 등을 단시간에 흡착, 선도를 유지해 준다. 실험 결과 에틸렌의 60%가 흡수된다. 천연 성분인데다 광촉매 기술로 비용 절감까지 실현했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새로운 틈새 공략에도 나섰다. 이번엔 삼번차로 불리는 폐기 예약의 차까지 시선을 넓혀 재활용에 성공했다. 4~6월에 따는 1번차, 2번차와 달리 7~8월의 3번차는 맛이 확연히 떨어져 판매는커녕 폐기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회사는 흡착제에 3번차를 넣어 선도 유지 효과를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3번차에 항균 작용을 하는 카테킨이 많아 흡착제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입소문은 빠르다. 홍콩의 고급 슈퍼마켓은 일본에서 채소를 들여올 때 이 회사의 흡착제를 쓰기 위해 협상 중이다. 그간 채소 운송은 항공편을 이용했지만 장기간 선도 유지가 가능하면 배로도 수입할 수 있어 경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11일간의 일본·홍콩 수송 실험을 해봤더니 11개 품목 중 9개가 선도 유지에 합격했다. 업계는 이 제품이 상당한 물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