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공급과잉 해소 불가피…해외 기업 저가 인수 가능해

‘글로벌 구조조정’에서 기회 잡아라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재정 및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경기를 부양했다. 이에 따라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면서 세계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하지만 최근 경기가 다시 위축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수요 측면에서 경기를 부양할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이미 선진국 정부는 부실해졌고 정책 금리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0%다. 결국 공급 측면에서 뼈아픈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야 세계경제는 새로운 성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부양 정책 수단 ‘바닥’
2008년 금융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가계의 과소비와 기업의 과잉투자였다. 위기가 시작되자 이들이 디레버리징을 하면서 소비와 투자를 줄였다. 우선 정부가 나서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경기를 부양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63%였지만 2013년 104%까지 올라갔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도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부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110%(2013년 평균)를 넘어섰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더 적극적이었다. 이미 일본이 0%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연방기금 금리를 금융 위기 전의 5.25%에서 0.00~0.25%로 재빨리 인하했고 뒤따라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렸다.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도 5%에서 1.5%로 낮아졌다.
이와 함께 이른바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중앙은행이 돈을 대규모로 찍어냈다. 2013년부터 일본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2%’라는 정책 목표를 내세우고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해 무한정 돈을 찍어내고 있다. 일본의 본원통화는 특히 2013년과 2014년 각각 46%와 37%씩 증가했고 올 들어 10월까지 23%나 늘었다. 이와 함께 유럽중앙은행(ECB)도 ‘돈 풀기 경쟁’에 끼어들었다. ECB는 올해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매월 600억 유로씩 1조1400억 유로를 풀 방침이다. 최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로존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돈을 더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주가와 집값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세계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됐다. 2010년 세계경제는 5.2% 성장했고 2011~2014년에도 연평균 3.5% 성장해 과거 20년 평균 성장률(3.6%)에 거의 접근했다.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가장 빨리 진행됐는데, 올해 3분기 미국 GDP가 금융 위기 발생 직전이었던 2008년 2분기보다 10% 증가했다. 올해 2분기까지 일본 경제는 1% 성장하고 유로존 경제는 2008년 2분기 GDP 수준을 겨우 회복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마저도 아직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 의회 추정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현재 미국의 실제 GDP는 잠재 GDP보다 3% 정도 낮다. 2009년의 7%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미국 경제가 그만큼 능력 이하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 경제에서 공급이 수요를 3% 정도 초과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보다 회복 속도가 느린 일본이나 유로존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올해 하반기 들어 재정 및 통화정책 효과가 사라지면서 경기가 더욱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월의 한국 수출은 전년 동월에 비해 15.8%나 줄어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2009년 8월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인데 한국의 수출 감소는 그만큼 세계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우선 한국 수출 중 26%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경제성장률이 10%대에서 이제 7%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대중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부터 감소세로 전환됐고 올 들어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다. 다음으로 수출 비율(13%)이 높은 미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 들어 제조업 중심으로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반기까지 증가했던 한국의 대미 수출이 8월 이후에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10월에는 11%나 감소했다. 일본이나 유로존 지역으로의 한국의 수출 감소 폭은 훨씬 더 크다.
‘글로벌 구조조정’에서 기회 잡아라
경쟁력 없는 기업 퇴출 시작돼
문제는 더 이상 수요를 부양할 정책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지난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출을 늘린 결과 선진국 정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을 정도로 정부가 부실해졌다. 정책 금리를 0%까지 내려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인하할 여지도 없다.
그래서 우선 고려되는 정책은 또 다른 양적 완화일 것이다. 미국마저도 내년에는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2014년 10월 중단했던 양적 완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돈을 계획 이상으로 더 풀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소비와 투자가 더 이상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민간 부문의 디레버리징 과정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돈을 푼다는 것은 내수 부양뿐만 아니라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을 국외로 수출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신흥 시장도 공급과잉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러시아와 브라질 경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심각하다. 2009년 선진국이 금융 위기를 겪을 때도 중국 경제가 투자 중심으로 9~10% 성장하면서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중국의 거의 모든 산업은 공급과잉 상태에 있다. 중국 기업 이익이 줄면서 기업이 부실해지고 있다. 기업 부실은 결국 은행 부실로 이어져 중국 경제도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위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신흥 시장은 아직 정부 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선진국 정부는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거의 소진했다. 금리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다. 게다가 양적 완화 효과가 이제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 경기 침체가 오면 수요 측면에서 경기를 부양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급이 줄어들면서 전 세계경제에 존재하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될 수밖에 없다. 공급이 준다는 것은 경쟁력 없는 기업들의 시장 퇴출을 의미한다. 모든 산업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산업 내에서 기업체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상장 기업 10개 중 3개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기업이 아니라면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하도록 맡겨야 한다.
내년부터 공급 측면에서 구조조정이 각 나라에서 시작될 가능성 높다. 구조조정을 당하는 한국 기업에는 큰 고통이겠지만 한국 경제가 해외투자로 국부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1100억 달러에 이르고 내년에도 930억 달러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해외 직접 투자나 금융자산 매수로 다 나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업을 헐값에 살 수 있다. 또한 구조조정 시기에 세계 주요국의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08년 이후 0% 금리 유지와 양적 완화로 선진국 주가에 거품이 발생했는데, 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돈을 해외 금융자산 투자에 잘 활용해 국부를 늘려야 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