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구전략 실패로 ‘엔고의 저주’…아베노믹스 전망도 ‘안갯속’

플라자 합의 30년, ‘환율 덫’ 벗어날까
플라자 합의가 시행된 지 30년을 맞았다. 플라자 합의는 G5(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됐다. 당시 미국은 고금리 정책, 경제와 정치적 위상이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대규모 경상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G5 재무장관들은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경상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각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와 마르크화를 중심으로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데 동의했다. 합의 전 235엔을 기록하던 엔·달러 환율은 합의가 이뤄진 지 1주일 만에 8% 절상됐고 그 후 2년 동안 60% 넘게 절상돼 140엔대까지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엔고 현상으로 극심한 타격을 입게 된 일본 경제는 기준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다. 1985년 6.3%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1986년 2.8%까지 떨어졌다. 엔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감소하자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잃어버린 20년’의 시발점이었다.

1990년 성급한 금리 인상이 화 불러

급작스러운 경기 둔화에 당황한 일본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1987년까지 기준 금리를 3% 포인트 인하했다. 기준 금리 인하로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증시로 자금이 몰리자 닛케이225지수는 1989년 역사 최고치인 3만8915.87을 기록하고 시가총액이 한때 미국을 넘어섰다.

부동산 시장에는 금리 인하로 대출 여건이 완화돼 투기와 상속 목적의 부동산 수요가 급등해 도쿄 등 6대 도시의 상업용 땅값이 연평균 27.7% 급등했다. 전체 부동산 가치도 2000조 엔을 넘어서는 등 자산시장 거품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1990년대 이후 거품 붕괴와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기준 금리를 인상해 자산 거품 붕괴를 방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1990년 2월 일본 정부는 금리를 한번에 0.7% 포인트 인상하는 등 4.9%까지 인하했던 기준 금리를 1990년 10월 8.9%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성급한 금리 인상 결정은 오히려 시장 거품을 붕괴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한때 3만8000선을 유지해 오던 닛케이225지수는 6000대로 떨어지며 6분의 1 토막이 됐고 주요 도시 주택과 상업 부동산 가격은 2002년까지 각각 60%, 85% 급락했다. 기준 금리 인상으로 엔·달러 환율은 80엔대까지 떨어져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기록하던 경상수지 흑자는 1%대로 감소했고 성장률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다.
플라자 합의 30년, ‘환율 덫’ 벗어날까
플라자 합의 30년, ‘환율 덫’ 벗어날까
플라자 합의 30년, ‘환율 덫’ 벗어날까
서방 선진 7개국(G7)은 일본 경제의 추락을 방지, 유도하기 위해 1995년 4월 플라자 합의에 반대되는 역플라자 합의에 도달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환율이 달러당 140엔대까지 상승하며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였지만 일본은 전통적인 경기 부양책이 소진된 상태에서 성급한 출구전략을 단행해 환율을 달러당 75엔 대까지 떨어뜨렸다.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20년’에서 경제의 미회복으로 민간 자본량이 높아 경기가 침체될수록 엔화가 강세로 이어져 수출이 감소되고 그에 따라 추가 침체되는 ‘엔고의 저주’가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 12월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본은 엔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지만 최초 의도와 달리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엔저 효과에 따라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수출 경기도 가격 기준으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물량 기준으로는 여전히 정체 국면이다. 궁극적 목표가 ‘스트롱 재팬, 스트롱 이코노미(Strong Japan, Strong Economy)’, 즉 중·장기적으로 튼튼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관점에서 볼 때 아베노믹스는 현재 30%만 성공한 것으로 평가돼 50% 성공했다고 보고 있는 아베 정부와 차이가 있다.

‘잃어버린 30년’ 위기감…제3의 방안 필요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이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현시점에서 아베 정부는 제3의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제3의 방안은 추가 구조 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재정정책을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높은 국가 채무로 한계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간 나오토 내각이 구상했던 세금과 재정지출을 동일한 규모로 늘리는 지연 정책이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아베 정부는 과감한 구조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신성장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IMF 등은 “아베노믹스 1기의 첫째와 둘째 화살인 무제한 양적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일시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이끌었지만 마지막 화살인 신성장 정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경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베 정부도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기업 운영 및 근로 여건 개선, 고령화에 따른 간호 시설 확충 등을 골자로 한 2기 아베노믹스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 개혁에 대한 효과는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되기 때문에 세부 시행 방안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해야 하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아베 정부는 일방적으로 통화 공급을 확대해 환율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경쟁 우위를 점하고 극우 발언을 쏟아내 스스로 고립시키는 행보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미국 금리 동결,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 등 각국의 이기주의에 따라 세계 교역 증가율이 1%대로 하락하면서 수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용어 설명
플라자 합의: 1985년 9월 22일 미국의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프랑스·독일· 일본·미국·영국으로 구성된 G5의 재무장관들이 외환시장 개입으로 발생한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결의한 조치

엔고의 저주: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의 주장으로, 과거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기가 침체일수록 엔화가 강세를 보여 수출이 감소되고 그에 따라 추가 침체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