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지지층 정조준…“경기 침체의 여파” 분석

‘부자 증세’ 외치는 공화당 대선 후보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경선 주자들이 ‘부자 증세’를 외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심각해진 미국 내 소득 불균형 문제가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부자 때리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진보나 보수,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구분이 없다. 오히려 정치적 기반을 백인 보수, 중산층 이상 기득권층에 두고 있는 공화당 쪽에서 부자 증세 등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통적으로 경제 침체기엔 포퓰리즘적(대중영합적)인 부자 증세 이슈가 인기를 끌어 왔다”고 보도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젭 부시 플로리다 전 주지사는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공장에서 향후 10년간 3조4000억 달러(4080조 원)의 세금을 깎아 주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세율을 39.6%와 35%에서 각각 28%와 20%로 낮추고 각종 세 감면 규정을 정비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감세 규모는 그의 형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1년 내놓았던 감세안(11년간 1조3500억 달러)을 능가한다.

하지만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감세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젭 부시 전 주지사는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부자들과 헤지 펀드 매니저들은 세법의 ‘구멍(loophole)’을 악용하고 있다”며 “세금 면제(tax break)·소득공제(deduction)·세액공제(credit) 관련 조항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명목 세율은 높지만 갖가지 세 감면 규정이 많아 실효세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고치기 위해 세율을 낮추고 다양한 세 감면 규정들을 대대적으로 고치겠다는 것이다. 젭 부시 전 주지사는 “중하위층 세 감면은 두 배로 늘려 주고 헤지 펀드 매니저들을 포함한 상위 10% 부자의 세금은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젭 부시 전 주지사가 공화당의 지지층인 부자들의 세테크를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샌더스는 로빈후드세 도입 주장

공화당 대선 경선 1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최근 발표한 경제 공약 ‘경제계획 다섯 가지(economic plan 5)’에도 부자 증세가 들어 있다. 그는 “중산층 세금을 낮추기 위해서는 부자들이 더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특히 펀드매니저들에 대해 신랄하다. “펀드매니저는 그저 하찮은 사무직원(paper-pusher)에 불과한데 너무 많은 돈을 벌고 내는 세금은 적다”며 “세법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후보의 경제 공약은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로부터 ‘경제학적으로 옳다’는 지지 선언을 받았다.

민주당 대선 경선 선두권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버몬트 주 상원의원은 더 강력한 안을 주무르고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양도 차익 소득 등에 대한 최고 세율을 현행 18.8%에서 43.4%로 올리는 방안을 비롯해 포괄적인 부자 증세안을 검토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부자 증세와 함께 ‘자본거래세(일명 로빈후드세)’ 도입까지 주장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주식·채권·선물·옵션 등 증시에서 상품을 거래될 때 거래금의 일정액을 세금(로빈후드세)으로 거둬 대학 등록금 지원에 쓰자는 아이디어를 내세웠다.

워싱턴 =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