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침체기’ 문턱에 들어서, “미국 금리 인상 연기해야” 목소리

이른바 G2 문제, 즉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증시 폭락’이 불거지자 선진국을 비롯한 각국은 정책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탁한 국면에 빠져들었다. 미국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완만한 실물 경기 추세나 낮은 물가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 등 주요 예측 기관들도 최근 발간한 세계경제 전망 수정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IMF는 7월 수정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 4월 전망치 대비 0.2% 포인트 하향 조정해 오히려 작년 성장률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책이나 경기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함에 따라 투자자 등 경제 주체들의 혼란이 심화되고 가격 변수의 순응성이 커지면서 롤러코스터 장세가 재현되고 있다. 순응성은 금융 시스템이 경기변동을 증폭시킴으로써 금융 불안을 초래하는 금융과 실물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말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기와 증시는 ‘대안정기’와 ‘대침체기’가 반복됐다. 이에 따라 이제는 ‘대사이클론’이 정형화된 사실로 굳어졌다. 올해 6월 중순 이후 중국 증시 폭락을 계기로 벌써부터 세계 증시가 대안정기 이후 찾아오는 대침체기를 맞은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토록 많은 나라들이 한꺼번에 경기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비관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2009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힘을 못 쓰던 세계 경기가 같은 해 2분기를 저점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이 역시 예상했던 기관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중국이라는 ‘안전판’ 사라진 세계경제
유동성이 만든 2차 대안정기 ‘흔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취임했던 작년 2월 이후 세계 증시는 재차 ‘대안정기’의 징후를 갈수록 뚜렷하게 내비쳤다. 2009년 2분기 이후 2년 이상 지속됐던 ‘1차 대안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올 5월까지는 각종 공포지수가 안전지수라고 불릴 만큼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 주체들의 위기의식이 급속히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2차 대안정기’ 이후 ‘2차 대침체기’가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한 경고가 위기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마크 파버 마크파버리미티드 회장 등이 ‘옐런 의장 취임 이후 현상이 2008년에 발생했던 금융 위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세계 증시에 대폭발이 올 것이라는 ‘폭풍 전야설’을 경고해 왔다.
대안정기에서 대폭락기로 돌아서는 건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이 ‘자기 암시 가설’ 등에서 지적한 대로 ‘어느 날 갑자기(someday sometimes)’ 시작된다. ‘순간 폭락’ 현상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에서는 2010년 5월 6일, 장 마감 직전 불과 15분 만에 다우존스지수가 1만 포인트 급락한 적이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급등하던 중국 증시가 폭락한 것도 전형적인 순간 폭락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6월 초 한경비즈니스를 통해 ‘중국 증시가 순간 폭락할 수 있는 만큼 특정 국내 증권사가 브라질 국채를 팔며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후 6월 12일 상하이지수가 5166까지 오르다가 40% 이상 급락해 2차 대폭락기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1차 대안정기’와 달리 ‘2차 대안정기’가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초대형 금융 완화 정책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풀린 돈(유동성)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단일 금융법인 도드-프랭크법 추진 이후 ‘볼커 룰’로 상징되는 규제 강화로 금융사의 중개 기능이 약화됐고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전자 거래가 급증하면서 주가 등 가격 변수의 쏠림 현상도 심하게 나타났다.
중국이라는 ‘안전판’ 사라진 세계경제
신흥국의 자금 이탈 가능성 차별화
기초 여건 개선 없이 금융 완화만으로 위기 극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대침체기가 오느냐의 여부는 ‘위기 후 과제’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위기 후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브라운 방식(1930년대 루스벨트 방식)이다. 비상사태에 준하는 선진국의 위기는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문제로 이미 가시화됐다. 미국·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과 일부 신흥국들도 재정 위기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했던 신흥국이 선진국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유입됐던 과다 유동성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2013년 5월 말 벤 버냉키 Fed 전 의장이 출구 전략을 언급한 이후 신흥국이 ‘긴축 발작’에 시달렸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6월 중순 이후 중국 증시 폭락 이전에도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권에 들어옴에 따라 러시아·브라질 등과 같은 원자재 수출국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긴축 발작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시 신흥국의 자금 이탈 가능성을 추정한 자료를 보면 ‘부존자원 의존도’와 ‘외화 보유 정도’에 따라 차별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원유 등 원자재를 수출하고 보유 외화가 갈수록 감소하는 베네수엘라·러시아·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콜롬비아·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 등에서 자금 이탈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원자재를 수입하고 보유 외화가 풍부한 중국·대만·싱가포르·인도 등은 자금 이탈 가능성이 높지 않다.
위기 후 과제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을 너무 낙관해 금리 인상 등의 긴축 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면 ‘제2의 에클스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제로 금리, 양적 완화 정책 등으로 어렵게 돋은 ‘싹’을 다시 노랗게 시든 잡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실물 경기가 회복 국면에 깊숙이 진입한 후 출구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 극복이 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기에 금리 인상 같은 출구 전략을 추진하면 세계 경기와 증시에 어느 순간 ‘대침체기’가 찾아온다. 중국 경제가 안전판 역할을 했던 ‘1차 대침체기’와 달리 이번에는 중국이 증시 폭락 등을 계기로 무너진다면 의외로 빨리 ‘2차 대침체기’가 올 수 있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미국의 금리 인상을 내년으로 연기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다. 금리 인상 연기 발언만 나온다면 세계 증시는 의외로 빨리 회복될 수 있다. 투자자는 두 가능성에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기본과 균형’이 최대 덕목인 때가 돌아왔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