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에 직원 6명으로 창업…경영 악화로 2013년 회사 떠나 독자 행보

팬택 옛 계열사 기반 특수 물류업 ‘도전’
그는 끝까지 부회장이었다. 창업주이자 오너·경영인으로 팬택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 온 박병엽 전 부회장의 얘기다. 그는 한때 삼성·LG와 맞서는 국내 3대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화려한 성공 신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이 지각변동하면서 자금력의 한계에 부닥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2013년 9월 팬택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부회장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하나의 업종에서 30년을 넘기거나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면 스스로 알아서 회장으로 승진하겠다”던 그의 포부는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된 것이다.


모토로라의 인수 제안에 ‘투자’ 역제안
박 전 부회장을 이야기할 때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샐러리맨의 신화’, ‘오뚝이’, ‘타고난 승부사’ 등이다. 그만큼 그는 국내 벤처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국 나이로 26세였던 1987년 무선호출기(삐삐) 제조업체였던 맥슨전자의 영업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4년 뒤인 1991년, 한국 나이로 딱 30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엔지니어 4명을 포함한 직장 동료 6명과 무선호출기 제조업체로 팬택을 시작했다. 33㎡(10평)짜리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4000만 원이 창업 자금의 전부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최초의 문자삐삐·음성삐삐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성공의 기반을 다진 박 부회장은 팬택이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7년 첫째 승부수를 던진다. 당시는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시장이 급속도로 옮겨 가던 시점이었고 박 전 부회장은 이 같은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1997년 이동전화 단말기를 생산하며 휴대전화 제조사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더니 이듬해인 1998년에는 모토로라로부터 인수를 제안 받는 잠재력이 큰 회사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때 박 전 부회장은 영업맨 출신다운 협상력을 발휘해 오히려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15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이후에도 팬택의 변곡점마다 박 전 부회장의 이 같은 승부사 기질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왔다. 2001년 매출 규모 1조 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과감히 인수할 때도, 2005년 SKY 휴대전화를 만든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텍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박 전 부회장을 두고 세간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라며 우려를 보냈던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부회장은 팬택의 성장을 위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흔들림이 없었다. 박 전 부회장은 현대큐리텔 인수 당시 인터뷰에서 “인수 후 현대큐리텔 직원들 사이에 열패감이 퍼져 있었는데 이유를 살펴보니 업계와 비교해 급여가 상당히 적었다”며 “당시 팬택 주식을 은행에 맡기고 1000억 원 정도를 대출받아 전 직원의 급여를 67% 올려줬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당시 인수 자금 또한 박 전 부회장의 개인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국내 최초 카메라 폰, 2002년 국내 최초 슬라이드 폰, 2004년 세계 최초 지문 인식 폰 등 팬택의 제품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실제로 당시 팬택은 이같이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때는 국내 휴대전화 점유율이 LG전자를 뛰어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팬택의 이 같은 성공 신화는 박 전 부회장의 리더십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박병엽이 없는 팬택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박 전 부회장은 영업맨의 경험을 바탕으로 몸에 밴 친화력이 타고난 리더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회사의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에서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법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임자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뒤 토론을 유도하는 식이다. 결론이 날 때까지 서로의 의견을 좁혀 가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회사의 조직원 모두가 결정에 동참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000억 지분 포기에도 역부족
박 전 부회장에게 ‘오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역시 팬택의 굴곡진 역사와 관련이 깊다. 2000년대 초반까지 거침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박 전 부회장은 2006년 팬택의 첫 고비를 맞닥뜨리게 된다. 2007년 4월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이다. 박 전 부회장은 팬택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출연하면서까지 기업 회생에 매달렸다. 4000억 원 정도의 지분을 포기하고 팬택의 대주주가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 돌아온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퇴근과 주말이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후 5년여 만에 ‘사퇴 승부수’를 던지며 2011년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박병엽이 없는 팬택은 팬택이 아니다’는 공감대가 모아지며 채권단을 압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회복세도 얼마 가지 못했다.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팬택의 영업이익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박 전 부회장은 끝까지 팬택을 되살리기 위해 자금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외부에서 1000억~2000억 원을 투자 유치해 연구·개발(R&D)과 브랜드에 지속 투자할 것”이라는 그의 호언장담처럼 2013년 2월 세계적인 통신 장비 회사 퀄컴으로부터 2300만 달러(약 250억 원), 같은 해 5월에는 경쟁사인 삼성으로부터 530억 원의 지분 투자를 끌어와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탁월한 경영 수완은 대주주인 은행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빛이 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에 매달린 끝에 KDB산업은행·우리은행·농협·대구은행으로부터 1565억 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적 악화가 계속된 팬택은 2013년 9월 강도 높은 구조조정까지 이어진다. 2400여 명의 팬택 직원 중 800여 명이 6개월간 무급 휴가를 결정하면서 박 전 부회장은 이에 책임을 지고 팬택을 창업한 지 꼭 22년 6개월 만에 부회장직에서 사퇴를 결정했다. 사의 표명 후 박 전 부회장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역량 없는 경영으로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만을 드린 것 같다”며 “깊은 자괴와 책임감을 느낀다”고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사퇴 이후에도 박 전 부회장의 행보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병엽 없는 팬택’은 결국 파산에 이르렀지만 박 전 부회장은 ‘물류 사업’을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부회장은 현재 팬택의 전 계열사였던 팬택C&I(박 전 부회장 100% 지분 보유)를 비롯해 6개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시스템 통합 업체인 팬택C&I는 모바일 유통 업체인 라츠의 지분 100%와 휴대전화 배터리와 액세서리 제조·판매 업체인 티이에스글로벌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박 전 부회장이 40% 지분을 보유하고 그의 두 아들인 성준·성훈 씨가 각각 30%씩 지분을 보유한 PNS네트웍스는 화물 운송 중개 업체다. 이 회사는 인적자원 용역 업체인 토스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현금 수송 업체인 발렉스코리아의 지분 80%를 사들였다.

이 중 팬택C&I·라츠·티이에스글로벌은 팬택의 쇠락과 함께 매출이 급감하고 자본 잠식에 빠진 상황이다. 하지만 PNS네트웍스와 토스는 사정이 다르다. PNS네트웍스는 지난해 818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토스는 34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인수한 발렉스코리아는 은행 등을 대상으로 하루 20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수송하며 전국 4000여 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관리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441억 원이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부회장은 2007년과 2014년 워크아웃을 받는 과정에서 은행권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며 “은행권의 현금 수송업 영업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데다 운송 PNS네트웍스와 시너지를 감안한다면 박 전 부회장이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 데 충분할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특히 발렉스코리아와 같은 특송 업체 분야는 향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네트워크와 인력(교육)·정보기술(IT) 시스템이 필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팬택 벤처 신화’의 주역이었던 박 전 부회장이 이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