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투자액 3배 증가, 해외 펀드도 오랜 침체 벗어나

해외 증시의 동반 상승에 국내 투자자들도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 증시는 4년째 박스권을 맴돌고 있다. 여기에 1%대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고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 투자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해외 펀드다. 해외 펀드는 전년 대비 24% 급증했고 자금 순유입도 금융 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4월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1일 기준 해외 투자 펀드는 공모 펀드 914개, 사모 펀드 1167개로 1년 전보다 24.1% 증가했다. 공모 펀드는 12.7%, 사모 펀드는 34.8% 늘었다. 특히 유럽과 중국 펀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이 지역과 관련된 펀드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직접 투자 붐…개별 종목보다 ETF 선호
고금리에 목마른 투자자 몰려
자금도 해외 펀드로 흘러가고 있다. 3월 기준 9218억 원의 자금이 해외 펀드로 순유입됐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대 금액이다. 이 중 해외 공모 펀드에만 7604억 원의 자금이 몰렸다. 국내 공모 펀드에서 4910억 원이 순유출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해외 펀드 중에서도 주식형 펀드에는 6258억 원의 자금이 몰렸다. 2월 181억 원 순유입된 것과 비교해 보면 가파른 상승세다.

중국과 유럽은 펀드 수도 늘었지만 자금도 급증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월 3일 기준으로 중국 본토 펀드에만 연초 이후 6445억 원의 뭉칫돈이 흘러들어갔다. 유럽 펀드도 올 들어 5379억 원의 자금을 흡수했다. 또 러시아 펀드도 최근 유가가 바닥을 찾으면서 수혜가 기대되며 1233억 원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2006~2007년에 ‘아이 업은 주부까지 증권사 객장에 찾아와 가입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2005년 말 1조1999억 원에 불과했던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006년 말 6조4087억 원, 2007년 말 49조8856억 원으로 급격히 불어나 2008년 6월 말 60조8919억 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해외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고꾸라지면서 자금이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2009년 초반에는 잠깐 순유입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2009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 달도 빠지지 않고 환매 행진을 이어 갔다. 지난 1월 말 기준 해외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15조7068억 원까지 감소했다가 현재는 16조4148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해외투자로 자금이 몰려들고 있는 이유는 고금리를 원하는 수요자(투자자)와 불황 타개를 목표로 하는 공급자(금융 투자 업체)의 니즈가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2~3년간 금융 투자 업체 중 증권사는 계속된 거래 부진에 몸살을 앓았고 자산 운용사들은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는 투자자들을 잡기에도 바빴다. 그래서 금융 투자 업계는 글로벌 투자 상품 개발에 사활을 걸면서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게 해외의 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올해 1분기 ELS 발행액은 20조2000억 원으로 분기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조9000억 원에 비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포함하면 총 24조1000억 원으로 작년 4분기 24조200억 원을 웃돌았다. 특히 해외 지수형 ELS는 ELS 시장 성장의 핵심이었다. 해외 지수형 ELS 발행액은 1분기 8조9800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ELS 발행액의 절반 정도를 소화하며 ELS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이와 함께 각 증권사는 해외 주식 직접 투자를 적극 홍보 중이다. 해외 주식 직접 투자는 미국·중국 등의 성장성 있는 종목을 발굴해 사들이거나 유망해 보이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주식을 사들이는 것보다 여러 가지 번거로운 면이 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매수할 종목의 증거금을 원화로 낸 뒤 거래가 체결되면 다음날 환전해 입금하는 ‘원화 증거금 서비스’, 24시간 주문을 주선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나이트데스크’, 해외시장 개장 전 미리 주문해 놓는 ‘예약 주문 서비스’, 해외 주식 구입으로 발생하는 세금 이슈들을 해결해 주는 ‘양도소득세 무료 신고 대행 서비스’ 등을 잇달아 선보이는 중이다.


고액 자산가는 세제 혜택이 매력
그 결과 해외투자에 보수적이던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이 해외 주식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펀드에 투자하면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하고 배당소득은 종합소득에도 포함이 돼 고액 자산가들은 최고 41.8%까지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면 양도소득세 22%를 내야 하지만 분리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고액 자산가들은 직접 투자를 선호한다.

해외 주식 직접 투자 금액은 빠르게 증가 중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3월 외화증권 결제 처리 금액은 64억9000만 달러(약 7조526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27억2700만 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연초 이후로는 총 169억1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0억7600만 달러보다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개별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은 ETF를 주로 거래하고 있다. 올 들어 거래가 많았던 종목 10개 중 7개는 ETF였다. 홍콩 증시에 상장돼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AMC CSI 300 인덱스 ETF’의 거래 대금이 연초 이후 3906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머징 마켓 지수의 3배 수익률을 추종하는 ‘다이렉션 SH ETF TR’가 748억 원, 유가 하락 시 낙폭의 3배 수익률을 내는 ‘VS 3X INV 크루드(CRUDE)’도 693억 원이 거래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펀드는 못 믿겠고 직접 투자가 부담스러운 투자자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투자자들은 증권사에서 출시한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랩이나 신탁을 활용하고 있다. 이승호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 부장은 “지난해 10월 미국 헤지 펀드 운용사에 자문해 전 세계 주식에 투자하는 하나글로벌알파랩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수익이 모두 10%를 넘었다”며 “5000만 원 이상을 가입할 수 있는 자산가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1분기 해외 펀드 수익률은…
유럽·중국 수익률 으뜸…‘역발상’ 러시아
직접 투자 붐…개별 종목보다 ETF 선호
에프앤가이드가 4월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20개 지역별 주식형 펀드 가운데 올해 1분기 평균 수익률은 브라질(-17.3%)과 중남미(-11.0%)를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플러스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15.0%), 중국 본토(13.9%), 일본(12.0%), 러시아(10.8%) 지역 펀드는 석 달 만에 수익률이 10%를 넘었다.

테마별로 봐도 대부분의 펀드 수익률이 좋았다. 에프앤가이드가 분류한 37개 테마 펀드 가운데 원자재(-4.0%)와 농산물(-8.0%) 펀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 펀드도 3월 중순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미국이 점진적으로 달러를 인상해 나갈 것이란 방침을 밝히면서 플러스로 반전했다.

테마별 펀드 가운데 헬스 케어(13.0%) 펀드가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올 들어 펀드 설정액도 1549억 원이나 늘었다. 이어 소비재(7.7%)·가치주(6.4%)·배당주(6.1%)·삼성그룹주(5.3%) 펀드 등도 불과 3개월 만에 정기예금의 2~3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미선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글로벌 펀드 자금 움직임을 살펴보면 주식 투자 수요는 유럽 주식형 펀드로, 채권 투자 수요는 미국 채권형 펀드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글로벌 유동성 확대 기조에서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