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계 앞에 서다 ‘화장’
감독
임권택
출연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11년 전 김훈의 소설 ‘화장’은 문단에 충격을 안겼다.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화장’을 김성곤 문학평론가는 “한국 문학사의 커다란 성과로 남을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 ‘화장’도 똑같이 적용될 찬사다. 김훈이 써 내려간 “죽음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리멸렬한 삶의 흔적”은 임권택 감독의 언어로 스크린에 새겨졌다. 죽음이라는 결과보다 늙어감의 과정이 심장을 파고드는 영화다. 노감독의 102번째 영화에 걸맞은 진득한 무게로 여지없이 공감의 탄식을 자아낸다.

‘화장’은 중의적인 제목이다. 주인공 오 상무(안성기 분)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암에 걸린 아내(김호정 분)를 화장(火葬)시키기까지의 이야기다. 병들어 죽어 가는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는 오 상무 자신도 심한 전립선비대증 때문에 오줌조차 마음껏 누지 못하는 처지다.

세월에 좀먹어 가는 육신에도 욕망은 똑같이 깃든다. 죽음의 무게에 짓눌린 오 상무의 마음을 언젠가부터 차지하고 들어앉은 아름다운 부하 직원 추은주(김규리 분)의 새파란 젊음이 쐐기처럼 박혀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의 장례식에서조차 묵묵히 다음 시즌 광고 시안을 지시하고 또 발목에 찬 소변 봉지를 내색조차 하지 않는 중년 사내에게 사랑은 어쩌면 죽음보다 멀다. 1996년 영화 ‘축제’에서 장례를 잔치로 그렸던 노장 감독은 19년이 지난 지금 상여도 망가(亡家)도 없는 그저 죽음을, 덧없는 이별을 그린다.



장수상회

죽음의 경계 앞에 서다 ‘화장’
감독 강제규
출연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한지민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도 액션을 걷어내면 가슴 저미는 드라마였다. 선 굵은 남성적 서사의 흥행사로 통했던 강제규 감독이 오랜 절치부심 끝에 한결 순연해진 초심으로 돌아왔다. 장수마트에서 일하는 까칠한 홀몸노인 성칠(박근형 분)은 이웃집 금님(윤여정 분)의 다정한 참견이 싫지 않다. 아기자기한 황혼 로맨스 진득한 감동으로 가슴을 친다.



엘리노어 릭비:그 남자 그 여자
죽음의 경계 앞에 서다 ‘화장’
감독 네드 벤슨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제임스 맥어보이

같은 비극을 겪은 남녀가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탐구한 멜로드라마다. 비극에서 갑작스레 달아나 버린 여자 엘리노어(제시카 차스테인 분)가 주인공인 ‘그 여자’ 편과 연인 엘리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코너(제임스 맥어보이 분)의 시야로 본 ‘그 남자’ 편, 두 사람의 입장을 번갈아 바라본 ‘그 남자 그 여자’ 편까지 세 가지 버전이 동시 개봉되는 독특한 프로젝트다.



후쿠시마의 미래
죽음의 경계 앞에 서다 ‘화장’
감독 이홍기

원자력발전 기술의 해외 수출이 고무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동시에 원전 산업 재해율이 너무 높아 우려를 사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는 국토 넓이당 가장 많은 원전을 가진 한국의 미래를 해외 원전 사고 현장에서 점검한다. 후쿠시마의 주부는 방사능 오염 측정기를 강박적으로 들고 다닌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2세들은 여전히 병명 없는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나원정 맥스무비 기자 wjna@max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