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거지 등 이색 알바 SNS서 화제…입소문 타고 관람객 ‘쑥’

젊은층 홀린 민속촌의 소셜 마케팅
흰 소복을 차려입은 묘령의 여인이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언뜻 무서울 수 있는 모습이지만 머리에 꽂은 커다란 여우 귀와 특유의 애교로 지나가던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든다. 이 여인의 정체는 한국민속촌의 구미호 알바(아르바이트)생이다. 한국민속촌에 다녀온 남자 관람객이 “구미호에게 홀려버렸다”고 후기를 남기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드라마·영화 세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한국민속촌의 마케팅이 최근 심상치 않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SNS는 한국민속촌의 마케팅팀에서 운영하고 있고 내부 합의하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담당자가 ‘속촌아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속촌아씨는 “기체후일향만강 하셨사옵니까(건강하게 편히 잘 계셨습니까). 아침 문안인사 드리겠나이다”는 말과 함께 매일 아침 민속촌의 행사·근황을 SNS로 알린다.

마케팅의 성과로 한국민속촌의 공식 페이스북 ‘좋아요’ 수는 8만 개에 다다르고 사진 한 장에 ‘좋아요’ 수도 1000~3000개를 넘나든다. 공식 트위터의 팔로워(구독자)는 5만여 명에 달하며 공식 블로그인 ‘촌스러운 이야기’도 꾸준히 방문객을 늘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주목받아 SNS 우수 활용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민속촌은 1974년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개관된 테마파크다. 한국의 민속적인 삶을 종합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어 내외국인 모두에게 유명한 관광지다. 조선시대 500년의 생활상과 특히 전국 각지의 특색 있는 주거 문화를 재현했다.


‘박물관’이 아니라 ‘테마파크’로
집집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와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한복을 차려입은 관리인들이 각각 머무르고 있다. 남부 지방 민가를 지키던 관리인에게 “온돌방 체험은 어디서 하느냐”고 묻던 김정숙(62) 씨는 “진짜 이 집에서 기거하는 조선시대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다”며 “엿판을 멘 엿장수도 자유롭게 돌아다녀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원래 한국민속촌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영화·드라마 팬들이 세트장처럼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속촌아씨는 ‘“전통은 고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편견으로 관람객이 점점 감소해 한국민속촌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전통 문화 테마파크’로 변해야 했다”고 말했다.

변화의 첫 단계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 마케팅팀을 만들었다. 체험과 놀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직접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만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의 콘텐츠가 생겨났고 여기에 맞춰 새로운 접근 방식의 마케팅이 시작됐다.
이는 사람들의 바뀐 인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학생 이은주(26) 씨는 “요즘 ‘한국민속촌’이라고 하면 인터넷에서 봤던 이색 알바생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며 “특히 관상 보는 알바생의 영상을 보니 재밌어 보여 주말에 시간을 내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한국민속촌의 이색 알바는 거지·구미호·관상가·사약·죄인 알바 등 다양하다. 이들은 대부분이 20대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끼로 주목받고 있다. 주말 및 공휴일에 하루 8시간씩 근무한다. 속촌아씨는 “알바생의 자격 조건은 대한민국 성인 남녀로, 주어진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해 관람객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한다면 누구나 환영”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속촌의 알바가 일명 ‘꿀 알바(쾌적한 근무 환경과 업무 대비 높은 급여를 제공하는 알바)’라고 입소문이 퍼지자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한국민속촌에서는 2014년 4월 아예 ‘조선에서 온 그대’라는 스타 알바 오디션을 진행했다. 서류 전형과 현장 오디션을 통과해야 합격이다. 개인기를 소지해야 유리하다.

미모와 애교로 무장한 구미호 알바는 근무 영상이 유튜브 메인 페이지까지 올라가며 인기를 증명했다. 또 ‘최고의 꿀알바’로 불리는 거지 알바는 2012년 5월 첫 알바생이 등장한 후 넷째 거지까지 채용되며 한국민속촌의 마스코트가 됐다. 민정대(32) 씨는 일명 어깨거지로 시작했다가 KBS2 방송에 출연하는 등 입지를 다진 뒤 한국민속촌의 관상가 알바로 ‘신분상승’했다. 최근에 생긴 죄인 알바는 ‘시간 되면 억울해 하며 끌려가기만 하면 되는’ 근무 조건 때문에 주목 받았다.

SNS를 통한 마케팅팀의 역할도 크다. 실감나는 영상 촬영과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 뺨치는 자막 편집이 홍보 전략이다. 특히 알바생뿐만 아니라 한국민속촌 행사에 참여하는 일반 관람객들을 영상의 주인공으로 다뤄 더 다양하고 생생한 재미를 준다. 또 종종 민속촌의 소소한 일상을 마케팅팀의 시선으로 편집해 잔잔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렇게 제작하고 편집한 영상을 SNS에 올려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한다.

속촌아씨는 이러한 SNS 접근에 대해 “재치와 유머 ‘드립(애드리브)’을 통해 젊은층이 자연스럽게 민속촌에 다가올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강제 주입’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갖고 노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참여를 이끄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3년 3월에는 ‘홍보보다 드립 치는 것이 더 재밌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장석문(36) 씨는 “알찬 드립은 홍보용 포스터 제작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전통 재해석한 혁신적인 콘텐츠 시도
한국민속촌의 마케팅에서 행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설맞이 행사인 달집태우기와 지신밟기 등 전통 행사부터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행사들까지 다양하다. 사극 드라마 축제, 초가집 새 지붕 얹는 날, 500 얼음땡, 야간 공포 체험 등 오직 한국민속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행사들이 진행된다. 속촌아씨는 “전통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젊은층의 관심과 공감이 필수”라며 “전통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마케팅팀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말했다.

속촌아씨의 말에 따르면 500 얼음땡, 야간 공포 체험 등은 젊은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전략적으로 만든 한국민속촌만의 혁신적인 콘텐츠다. 특히 500 얼음땡은 전래 놀이 순라잡이를 재해석한 대규모 ‘얼음땡’ 행사다. 참가자는 술래와 안술래로 나뉘어 민속촌을 누비며 서로 쫓고 쫓긴다. 2014년 7월에 제3회 500 얼음땡이 열렸을 때 1차·2차 티켓 모두 10분 만에 매진되는 저력을 보였다.

마케팅에 힘쓴 이후 일어난 가장 큰 변화에 대해 속촌아씨는 “주 관람객 연령층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지난 10년간 감소 추세였던 관람객 수가 최근 증가세로 돌아섰다. 또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20~40대 관람객의 비율이 80%를 넘고 있다. 재방문율 역시 2012년 대비 8.5% 증가했다.

속촌아씨의 ‘드립’ 실력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마케팅의 효과에 대해 속촌아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은 주말만 되면 한국민속촌 근처의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시고 있사옵니다. 정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돋보기
거지 알바, 뭘 하기에 ‘꿀알바’일까?
한국민속촌에서 소개하는 거지 알바의 근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 졸리면 땅바닥에 누워 잔다. 둘째, 배고프면 아무 곳에서나 구걸한다. 셋째, 구걸해 생긴 수익은 온전히 알바생의 몫이다. 관람객들 또한 이들을 자연스럽게 대한다. 일례로, 한 알바생이 앞에 바가지를 내려놓고 땅바닥에 앉아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바가지 안에 세계 각국의 화폐와 먹다 남은 꼬치·과자·음료수가 그득했다. 한편 그동안 한국민속촌을 거쳐 갔던 4명의 거지 알바생들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했다. 4명 중 3명은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국인 관람객에게 구걸하기도 했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