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승소로 내곡동 신축 공사 중단…허가 내준 서초구·서울시 ‘네 탓 공방’

말 많고 탈 많은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문제. 내곡지구 주민들이 아우디 정비 공장 건축에 반대하며 낸 행정소송에서 또 이겼다. 1심과 2심 판결 모두 주민들이 승소하면서 아우디(위본모터스)는 궁지에 몰렸다. 용도 변경과 건축 허가를 내준 당사자인 서울시와 서초구는 대체 부지를 찾아보겠다는 핑계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 내곡지구 주민들의 속병은 언제쯤 끝날까.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았다.
상처뿐인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
지난 2월 10일 오전 10시.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했다. 칼바람을 맞으며 1번 출구로 나오자 공사 현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황량하다. 서울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이하 내곡지구)의 첫인상이 그랬다. 출구 앞 중앙광장을 가로질러 큰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었을까. 왼쪽으로 서초포레스타3단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출입금지’ 표시가 산만하게 붙어 있는 초라한(?) 공사 현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공사 현장이었다.

현장은 고요하다 못해 음산한 기운마저 풍겼다. 현장 내부를 가리기 위해 걸쳐 놓은 천막만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사는 지난해 7월 건축 허가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1심)이 나온 뒤부터 현재까지 전면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작업을 중단한 공사 현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변 내곡지구의 분위기가 너무 한산했다.

최근 아우디 정비 공장 관련 2심 소송에서 또다시 주민들이 승전보를 남긴 만큼 거리는 활기가 넘치고 승리를 자축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공사 현장 인근에 자리한 언남초교 입구에서 한 주민을 만났다. “소송이요? 맞아요. 주민들이 힘을 모아 또 이겼어요. 너무 지쳤다는 게 문제죠. 대법까지 갈 수도 있고….” 다 끝난 줄 알았던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른 듯 보인다.


다윗 vs 골리앗, 다윗의 승리로 일단락
서울고법 행정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9일 내곡지구 주민들이 “아우디 주차장·정비 공장 건축을 허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이 옳다”며 서초구청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아우디의 국내 딜러 회사인 위본모터스는 이미 70% 정도 지어진 정비 공장 신축 공사를 마무리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위본모터스는 자동차영업소·주차장·정비공장 등을 갖춘 ‘(가칭)아우디센터 강남’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2013년 11월 공사에 착수했다. 아우디센터 강남은 완공 시 아우디가 국내에서 운영 중인 정비 공장 중 최대 규모(1만9835㎡, 지하 4층~지상 3층)로 신축될 예정이었다.

매머드급 정비 공장 건립의 부푼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사 시작 직후부터 내곡지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다. 분진과 소음, 대기오염 물질인 벤젠·톨루엔 등이 배출될 우려가 높은 자동차 정비 공장 부지가 초등학교(언남초교)와 불과 40여m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에 따라 정비 공장 건축을 반대하며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정비 공장과 자동차영업소를 해당 지구 계획에서 허용한 ‘노외 주차장의 부대시설’로 보기 어렵고 해당 시설이 들어서면 신규 주차 수요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미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아니라 입주 예정자는 소송 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실제 주민에 대해서만 승소 판결했다. 이에 아우디(위본모터스) 측은 즉각 항소했지만 2심에서는 1심의 판단을 인용하며 항소심 시점에 내곡지구에 입주한 주민들의 이전 패소 부분까지 승소로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내곡지구 입주민 손민상 씨는 “1심 판결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2심 판결문이 나왔다”면서 “이번 판결에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가 담기며 논란에 방점을 찍었다”고 강조했다.

내곡지구 주민들은 이번 승소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며 감격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주민들은 외부 지원 없이 그들의 힘만으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는 데 큰 의미를 뒀다. 실제로 주민들은 5만 원, 10만 원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했고 법률팀과 홍보팀 등도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하며 위본모터스에 대응했다. 그야말로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환한 미소를 짓지 못하고 있다. 일단 아직 대법원 항고심이 남아 있는 상태다. 상황에 따라서는 위본모터스가 소송전을 이어 갈 수 있고 혹시라도 대법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


위본모터스 “우리도 피해자”
또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호사 비용 때문에 또다시 주민들이 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내곡지구 주민들이 이미 너무 지쳐 있다는 점도 한산한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수년간 힘겨운 싸움을 이어 오며 대다수 주민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지 오래다. 상처가 크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초포레스타3단지에 거주하고 있는 변종민 씨는 “새 아파트에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최근에는 과연 이곳이 행복한 보금자리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면서 “주민 모두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았던 만큼 집단 치료를 받을 필요성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이 빨리 정리돼야만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내곡지구 주민들과 아우디(위본모터스) 간에 지루했던 힘겨루기가 주민들 쪽으로 무게추가 쏠리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위본모터스가 이미 전투력을 상실해 버린 상태로 더 이상의 소송전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변선보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보통 3심에서는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고 법리적인 부분만 검토한다”며 “이번 소송은 1심과 2심의 법리가 그대로 이어진 만큼 3심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황이 일방적으로 흘러가자 일각에서는 위본모터스에 대한 동정표도 나오고 있다. 건축 허가를 내준 서울시와 서초구 등은 쏙 빠진 채 위본모터스만 덤터기를 쓴 꼴이라는 분석이다.
상처뿐인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
이와 관련해 위본모터스 관계자는 “사실 위본모터스가 억울한 부분이 많다”며 “가이드라인에 나와 있는 절차를 그대로 밟고 (시와 구청의) 사전 질의까지 받은 뒤 합법적인 건축 허가를 받고 진행한 공사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서초구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한 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당초 서비스센터 확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며 위본모터스를 채찍질한 본사 아우디코리아도 고개를 돌린 모양새다. 서비스센터는 딜러사가 직접 토지를 매입해 짓는 것인 만큼 본사와는 무관하다는 것. 아우디코리아는 “우리도 많이 아쉽고 안타깝지만 내곡동 정비 공장 건립은 위본모터스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허가자인 정부 기관을 비롯해 발주처인 본사마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미운 오리 신세로 전락한 위본모터스다.

골이 너무 깊었던 탓일까. 위본모터스에 대한 내곡지구 주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위본모터스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동정심을 사려고 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위본모터스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억울하게 누명 쓴 선량한 회사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내곡지구 한 주민은 “이번 2심 때만 해도 위본은 원고로 나선 주민들의 직장으로 연락을 취하며 소송에서 빠지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가 법원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본인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지만 소송을 진행 중인 원고가 누구인지는 피고나 피고 측 변호인이 아니라면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위본모터스 관계자는 “법원에서 그 부분에 대해 언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면서 “만약 정말로 압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면 더 강력하게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내곡동 정비 공장 미스터리. 사건 해결의 키는 이제 서울시와 서초구로 넘어갔다. 하지만 서울시와 서초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현재 궁지에 몰린 위본모터스지만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70% 이상 공사가 진행된 가운데 토지 구입비용과 건축비 등 이미 투입된 수백억 원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서울시와 서초구는 위본모터스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이미 투입된 공사비 보상 문제 남아
일단 건축 허가를 내준 서초구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만약 위본모터스가 내곡지구 주민들과의 소송에서 진다면 방향을 선회해 서초구와의 소송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을 위반해 건축 허가를 내준 서초구의 과실이 분명한 만큼 일정 부분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위본모터스가 더 이상 주민들과의 소송을 원하지 않더라도 서초구가 앞장서 대법원에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서초구 관계자는 “현재 소송 결과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일축했다.

내곡동 정비 공장은 서초구가 허가를 내준 것이라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서울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위본모터스가 서초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서초구는 서울시와 서울시 산하 기관인 SH공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서울시가 애초에 부지의 용도를 경관 녹지에서 주차장으로 바꿔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서초구의 주장이다.

서울시와 서초구의 ‘네 탓 공방’에 오히려 승소한 내곡지구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 간다. 공사를 중단한 아우디 정비 공장이 그대로 흉물로 방치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고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어서다.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곡지구에 현장시장실을 만드는 등 돌파구 마련에 앞장섰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인 게 전무하다는 평가다. 주민들의 협의체 회의도 성과가 없었고 대체 부지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울시가 대체 부지 검토에만 목매지 말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서울시와 서초구가 비용을 분담해 위본모터스로부터 정비 공장 부지를 매입하는 방법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대체 부지를 검토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비용 분담 등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돋보기
AS센터 확충 시급한 수입차 업계 ‘노심초사’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을 둘러싼 논란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수입차 업계다. 서비스센터 확충이 수입차 업계의 시급한 과제로 지목된 가운데 내곡동 정비 공장 소송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수입차 시장은 2015년 1월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사상 최대인 18.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수입차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 속에서 애프터서비스(AS) 부실 문제는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비스센터 확충은 수입차 업계의 공통된 숙제로 떠올랐다. 2월 11일 업계에 따르면 BMW·벤츠·아우디·폭스바겐·포드·도요타 등 국내 주요 수입차 업체들은 올해 45개의 신규 서비스센터를 확충을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서비스센터가 들어설 부지를 찾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여유 부지 자체가 많지 않은 가운데 이번 내곡동 아우디 정비 공장 소송 결과에 따라 남아 있는 부지의 주민 반발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상처뿐인 ‘아우디 정비 공장’ 논란
본사 방침에 따라 직접 서비스센터 부지를 찾고 매입해 건물을 세워야 하는 수입차 딜러사들의 걱정은 더하다. A딜러사 관계자는 “강남에 서비스센터 부지를 사 놓은 B딜러사가 내곡동 아우디 소송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소송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땅 팔고 빠지겠다는 것인데 최근 이 같은 생각을 하는 딜러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상 고객이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서비스센터를 지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정비 면허 자체가 이미 포화 상태라 정비센터 한 곳이 문을 닫아야 새로운 정비센터가 들어설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내곡동 아우디 소송에서 법원이 두 차례나 주민 손을 들어준 가운데 수입차 업계도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이미 지방 서비스센터 확충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화 기자 hkfor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