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로 R/GA 글로벌 CCO…나이키의 퓨얼밴드 디자인·개발 주역

[크리에이티브 마케팅의 거장들 ③] “광고와 실리콘밸리의 융합 실험하죠”
일부 마케팅 캠페인은 때로 소비자들에게 마케팅 활동이라고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첨단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기존 브랜드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은밀하게’ 진행된 마케팅 전략은 대부분이 큰 성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좋은 예가 바로 나이키의 퓨얼밴드다. 2012년 출시된 웨어러블 디바이스 퓨얼밴드는 산업적으로도, 소비자 측면에서도 큰 호응을 이끌어 낸 캠페인으로 평가된다. 나이키 퓨얼밴드는 쉽게 말해 운동할 때 팔찌처럼 착용하는 하이브리드 만보계다. 출근·근무·운동·식사 등 일상생활에서 이용자의 움직임이 퓨얼밴드를 통해 모두 수치화된다. 매일 매일의 활동량 정보는 이용자의 온라인 나이키 계정으로 보내져 기록되고 사전에 개인이 설정된 운동 목표에 충족했는지를 평가한다. 만일 목표를 성취하면 팔에 차고 있는 퓨얼밴드에 녹색으로 표시되고 운동량이 부족하면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표시해 이용자에게 경고를 한다.


첨단 기술 통해 브랜드의 사업 변환 유도
퓨얼밴드는 실제로는 미국의 기술 기반 마케팅 에이전시 R/GA가 고안해 낸 장치다. 퓨얼밴드는 활동량 측정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융합한 최초의 기기 중 하나다. 이용자의 운동 정보는 나이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친구나 직장 동료 그리고 유명 연예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활동량을 나타내는 퓨얼 포인트가 500이라면 같은 기간 동안 힙합 가수 카인 웨스트의 퓨얼 점수와 비교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퓨얼밴드의 디자인과 개발을 왜 광고 에이전시인 R/GA에서 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퓨얼밴드 개발을 주도한 닉 로 글로벌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Chief Creative Officer)는 “나이키 퓨얼밴드는 일종의 광고 캠페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니다”라고 답한다.

“현재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변화를 소비자들이 실감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단지 첨단 기술을 알고 있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직접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창조(Create)와 소통(communicate)이 둘 다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에 퓨얼밴드를 개발할 수 있었죠.”

미디어 산업이 일부에서는 사양산업이라고 말하지만 첨단 기술과 결합하면서 오히려 신흥 산업으로 재조명된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마케팅 에이전시와 미디어가 최고정보책임자(CIO)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고용하는 추세다. R/GA는 세계적인 국제 광고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해 세계 최고 권위의 광고 에이전시로 인정받았으며 구글·삼성·나이키·비츠바이드레·HBO·존슨앤드존슨·IBM·로레알 등 여러 브랜드의 캠페인을 집행한 곳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R/GA는 회사의 업종 제한을 파괴하며 첨단 기술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디지털 에이전시로 거듭나고 있다.

R/GA에는 2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400명의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생성해 R/GA의 클라이언트 브랜드가 그들의 사업 영역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뉴 비즈니스 모델은 ‘디지털’이 핵심이다. 즉 여러 브랜드의 기존 핵심 사업과 디지털 사업의 접점을 찾아주는 창의적 발상과 실행이 R/GA가 고안해 낸 새 전략이다.

R/GA가 시대의 조류에 맞게 변화를 꾀하던 2001년 합류한 로 CCO는 R/GA의 혁신 제품 개발을 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나이키 퓨얼밴드뿐만 아니라 나이키+러닝, 비트 뮤직 포 비츠 바이 드레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또한 칸 혁신라이온 등의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를 선정하는 ‘크리에이티비티 50(Creativity 50)’에도 2번 이름을 올렸다.
[크리에이티브 마케팅의 거장들 ③] “광고와 실리콘밸리의 융합 실험하죠”
그는 “우리는 광고계가 집결한 뉴욕 메디슨 애비뉴와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융합을 추구한다”며 “이에 따라 브랜드를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에 움직임에 적용할지를 아는 광고계의 새로운 기획을 실리콘밸리가 생성하는 기술을 통해 구현해 낸다”고 강조한다.


‘누가 이 광고 메시지에 왜 관심을 가질까’
그는 마케팅 업계가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3가지를 들었다. “게임기 ‘엑스박스 키넥트’와 같은 매체를 통한 인터페이스·월드렌즈(실시간 번역 앱)와 같은 정교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소셜 커머스 그루폰과 같은 대규모 소셜 비즈니스를 마케팅 업계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 3가지 모델은 마케팅 업계에서 수년 내 대세가 될 거예요. 대중매체, 온라인, 소셜 서비스를 아우르는 시스템적인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마케팅 에이전시의 생존이 결정될 겁니다.”

그는 첨단 기술을 통해 미디어 마케팅을 집행하는 데 투입되는 많은 노고를 점점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을 통해 대중을 분석하고 분류하면 자동적으로 원하는 집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마케터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여러 미디어 집행에서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적절하고 교묘하게’ 녹여 낼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로 CCO는 강조한다.

“아직도 디지털 마케팅을 두고 많은 마케터들이 혼란해하며 핵심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럴 때 ‘누가 이 광고 메시지에 왜 관심을 가질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럴 때 의외로 답을 찾아 나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그는 마케터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반향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매일 체크하라고 주문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몇 가지를 추천했다.

“광고·첨단기술·비즈니스·디자인 관련 웹사이트나 블로그는 수도 없이 많아요. 단지 내가 최근 방문한 사이트를 꼽자면 테크미미(Techmeme)·기가옴(gigaom)·리드라이트웹(readwriteweb)·와이어드(wired)·디자인옵서버(designobserver)·쿨헌팅(coolhunting)·트렌드헌터(trendhunter)·로직+이모션(logic+emotion)·비주얼콤플렉시티(visualcomplexity), 어매스블로그(amassblog) 등이에요.”

로 CCO는 오는 3월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크리에이티브 아레나의 ‘인터내셔널 크리에이티브 콘퍼런스’에 참석, 최신 마케팅 트렌드 변화와 기술과 창의성의 결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크리에이티브 마케팅의 거장들 ③] “광고와 실리콘밸리의 융합 실험하죠”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