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선풍기로 한 해 72개국에서 10조 원 매출 올려

영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제임스 다이슨이 1993년 설립한 다이슨은 청소기·선풍기·손건조기만을 생산하는 가전 업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다. 판매하는 제품의 종류가 세 가지에 불과하지만 이 회사는 필터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 소형 가전 부문에서 그동안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신제품들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으로 2013년 한 해 동안 세계 72개국에서 매출 60억 파운드(약 10조3000억 원), 순이익 8억 파운드를 올렸다.
다이슨 “실패 없는 혁신은 없다”
‘잡스’처럼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1947년 영국 노포크(Norfork)에서 태어난 제임스 다이슨은 아홉 살 때 암으로 아버지를 여읜 후 자신이 주변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끼며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사고를 하면서 성장했다. 그는 청년 시절 혼자 ‘볼배로(Ballbarrow)’라는 정원용 수레를 개발했는데 보통의 정원용 수레가 폭이 좁은 바퀴를 사용해 땅에 홈을 남기고 넘어지기도 했는데 다이슨은 플라스틱으로 된 큰 공으로 바퀴를 만들어 물을 채워 넣음으로써 안정감을 더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당시 다이슨은 볼배로를 생산하기 위해 커크-다이슨(Kirk-Dyson)을 설립했지만 경쟁 업체의 모조품 생산으로 실적이 악화되기도 했다.

다이슨은 회사를 다시 살리기 위해 1979년 ‘필터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고안했지만 투자자·동업자들이 세계 최대 청소기 업체 후버(Hoover)도 시도하지 않는 생각이라고 반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러한 다이슨의 경력 때문에 그는 자신이 창립한 애플(Apple)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후 다이슨은 홀로 낡은 창고에서 혼자 힘으로 진공청소기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 1985년 일본 기업에 대당 10%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특허를 팔았다. 진공청소기는 일본에서 지포스(G-force) 청소기라는 이름으로 시판됐고 이 로열티 자금을 바탕으로 그는 다시 7년간 제품 개발에 매달려 1993년 다이슨을 설립한다. 다이슨은 기존의 진공청소기가 필터 때문에 먼지에 자주 막혀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깨닫고 필터가 없는 청소기 개발에 집중하는데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후 드디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그의 이름을 딴 제품인 ‘다이슨 DC01’은 경쟁 제품 대비 5~10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2년 만에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진공청소기로 이름을 올렸다. 5126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최고 성능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도전의 산물인 것이다.

2011년 초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트위터에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이 회사의 대표적인 혁신 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품 개발의 시작은 “왜 선풍기는 꼭 날개를 써야 하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1882년 최초의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가 개발되면서 선풍기의 날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당연히 존재해야만 했던 그 날개 때문에 바람이 끊어지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 위해 날개를 분리해야 하는 어려움과 함께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을 때도 있어 위험하기도 하는 등 단점도 있었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의 정식 명칭은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로, 그 명칭 그대로 바람을 몇 배로 강하게 만드는 이 선풍기는 날개를 없애기 위해 비행기 제트엔진의 원리를 채용했다.

제트엔진은 바깥 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인 후 연료와 혼합한 상태에서 태워 고온의 기체를 배출하는 원리로 구동되는데, 에어 멀티플라이어는 받침대에 작은 모터와 날개를 둬 이들이 돌아가면서 1초에 20리터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빨아들인 공기는 시속 88km 정도로 빠르게 흐르다가 고리 안쪽의 작은 틈으로 빠져나가면서 더 강한 공기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고리의 바깥쪽보다 안쪽의 기압이 낮아지면서 주변 공기가 안으로 들어와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의 양보다 15배 정도 많은 공기가 배출된다.

100년 이상 이어진 선풍기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에어 멀티플라이어는 2009년 미국 시사 잡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제품 톱 10에 오르며 고가(65만~100만 원)에도 불구하고 유럽 및 미주 등에서 히트 상품으로 기록된다.


기술 중심의 융합 문화가 성공 비결
다이슨 성공의 근간은 철저한 기술 중심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 출발한다. 불필요한 보고 절차가 없고 시제품을 만들고 버리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기술 중심의 DNA를 보유한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출시된 신형 진공청소기 역시 개발 기간 6년 동안 2000여 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후 탄생했다. 신제품을 만드는 6년 동안 어느 누구도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재촉하지 않고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조직 문화를 보유한 것이다.
다이슨 “실패 없는 혁신은 없다”
최고경영자인 다이슨 역시 1주일에 세 차례 엔지니어와 만나 사소한 부분까지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는 엔지니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다이슨은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로 구성돼 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연구·디자인·개발의 융합이다. 다이슨은 소위 연구(Research)·디자인(Design)·개발(Development) 부문을 ‘RDD센터’라는 한 부서로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자회사들은 R&D와 디자인 부서를 분리하고 있지만 다이슨은 제품을 예쁘게 만드는 것과 좋은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같은 의미라는 철학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RDD센터의 연구 분야는 기계·전기·화학·유체·소프트웨어·음향공학은 물론 미생물학까지 연구하며 다이슨의 제품의 외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부분은 기능 중심으로 디자인된다고 한다.

또한 다이슨은 발명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회사 전략에 맞춰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강력한 보호 전략을 고수하는데 다이슨이 초기 설립한 커크-다이슨이 모조품으로 사세가 기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식재산권 보호 전략은 실용성 없는 특허 남발을 배격하고 시장 점유 확대를 위한 특허만 출원하는데 타 회사에 라이선스 제공을 거부하고 이를 침해할 경우 타협 없는 강경한 보호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에어 멀티플라이어 출시 후 유사품 출현에 특허 소송 등 강력한 대응으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상상하지 못한 혁신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의 전환’이 중요하다. 다양한 시각이 함께 논의될 수 있는 조직 구성과 융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R&D·생산·서비스 판매 부문까지 아우르는 조직을 구성하고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 또한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혁신 연구에 대해 배려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성과 목표가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

실패가 보다 큰 혁신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함께 장기간 연구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