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동아시아의 ‘역사적 대화해’ 강조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이하 외교안보연구소)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로 이름이 높다. 1963년 외무 공무원에 대한 교육기관인 ‘외무공무원교육원’이 창설된 이후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싱크탱크다. 외국 정부와 석학들에겐 ‘아이판스(IFANS:The Institute of Foreign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외교안보연구소는 정부의 중·장기 외교정책 및 전략을 연구하고 분석해 이를 현실 외교에 반영하도록 돕는 핵심 연구 기관이다. 한경비즈니스의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도 6년 연속 1위(외교·안보 부문)를 차지한 외교안보연구소의 경쟁력을 신봉길(60) 소장에게 직접 물었다.
“한중일 협력이 동북아 번영의 초석”
6년째 1위입니다. 경쟁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보다 정부, 즉 외교부와의 연계성을 들 수 있습니다. 외교 현안에 관한 최신·고급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역시 정부죠. 정부 산하 기관이다 보니 정보 및 전략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북핵 문제라면 외교부 북핵팀과 직접 소통하는 식이죠. 현실감 있는 보고서 작성과 전체적인 연구 방향성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주요 국제 문제 분석’이라는 소논문이 매주 나오는데 학계와 연구자들 사이에선 필독서로 통합니다. 정부와 어느 정도 협의 과정을 거친 보고서이기 때문에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전략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연구진도 해외 명문대 박사 출신들이 대부분입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등 쟁쟁한 석학들이 모두 외교안보연구소 출신입니다. 외교라는 분야가 워낙 전문적이어서 일반 국민과는 유리된 성격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대학생·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판스톡스’ 등을 통해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연구 과제의 선정 기준은 어떻습니까.
“외교부 북미국·유엔국·동북아국 등 관련 부처에서 연구 과제를 요청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와 관련된 국제법,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 인권 경향 등이죠. 실무 차원에서 이론적 바탕이 필요할 때 요청하는 식입니다. 또 연구소 차원에서 현재 외교·안보 분야의 첨예한 이슈와 주제를 선정해 이를 연구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해외에 설치된 우리 공관이 150여 개에 달하는데, 이들 모두가 우리 연구소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정세 보고 등이 모두 연구소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싱크탱크와 연구의 질적 역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죠.”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싱크탱크로 이름이 높습니다.
“50년의 역사를 통해 아이판스라는 이름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외교원이 2012년 발족됐기 때문에 해외에선 국립외교원(KNDS)이란 이름보다 오히려 산하 기관인 아이판스로 더 유명하죠. 이렇게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역량입니다.”


국내외 싱크탱크와의 네트워킹과 교류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지난해 연구소가 치러낸 각종 행사가 70회에 이릅니다. 매주 최소 한두 차례는 외부 협력 활동을 벌여 온 셈이죠. 해외 싱크탱크와의 학술 교류가 가장 많고 중국·미국·일본·러시아·유럽·아시아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싱크탱크들과 교류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 네크워킹을 갖춘 곳이 흔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해외 싱크탱크와는 상호 교환 방문이 많은 편입니다.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가 대표적인데, 상·하반기에 서로 방문하고 있죠.”


북핵, 중국 부상, 아베노믹스 등 동아시아 정세가 급박합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역시 북한과 관련된 통일 준비 외교입니다. 북핵 문제와 북한 인권, 그리고 최근에 문제가 된 사이버 테러 등이 주요한 관련 이슈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동북아의 새로운 국면 전환입니다. 구체적으로 한중일 삼국 정상회의 성사가 시급합니다. 우리 외교의 핵심 당면 과제죠. 올해는 종전 70주년, 광복 7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등으로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겁니다. 이런 가운데 삼국의 대화해와 공동 번영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낸다면 한국 외교의 결정적 승리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한일 관계가 여전히 쉽지 않은데요.
“일본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죠. 하지만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내 선거 압승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역사적 업적까지 남기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무라야마 담화처럼 아베 담화를 준비 중이고 실제로 국책 싱크탱크에도 관련 준비를 지시했다고 들었습니다. 종전 70년을 맞아 동북아 질서에 일본이 새롭게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갈등을 유발하는 식의 터무니없는 내용을 포함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이 조성된다면 중국과 한국도 포용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아베 총리, 박근혜 대통령 등 삼국의 지도자는 이미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습니다. 세 지도자는 모두 오랜 정치적 전통을 쌓은 가문 출신이죠. 박 대통령도 취임 때부터 동북아 평화 구상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이를 기반으로 한국이 원칙과 신뢰에 기반한 동북아 질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최근 북한의 전향적인 대화 제의는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실제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교관으로서 직접 북한 문제에 관여하고 여러 차례 교섭에도 참여해 본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북한은 쉽지 않은 국면에 처하면 상대의 수를 모두 읽은 뒤 대응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현재 북한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에요. 인권 문제와 관련해 유엔에선 직접 ‘김패밀리’가 언급됐을 정도죠. 소니 사이버 해킹으로 미국의 제재가 강해졌고 국제적 이미지도 완전히 추락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정은 체제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볼 수 있어요. 큰형님 격인 중국과는 핵 문제로 소원해졌고 국면 카드 전환용으로 쓴 일본 카드도 납치자 문제 등 해결이 쉽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선택지인 러시아는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고요. 이 와중에 한국에서 ‘통일 대박론’이 나오니 위협감을 크게 느낄 겁니다. 결국 통남봉미로 돌아설 가능성 크죠. 정상회담이 아니라 뭐든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오픈할 수는 없고 여러 로드맵을 만들어 놓은 후에나 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이들과의 관계 정립은 어떻게 풀어 가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베이징에서 7년이나 근무했습니다. 외교관으로는 중국에서 제일 오래 일했죠. 현재 한중 관계는 겉으론 최상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처음 수교 때만 해도 대등한 관계였지만 지금의 중국은 G2로 성장했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등 우리의 대중 외교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이 소다자(小多者) 지역 협력입니다. 아세안·유럽연합(EU) 같은 것이죠. 동북아에는 한중일 삼국 협력이 있습니다. 다행히 국제기구인 삼국협력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하는 성과도 거뒀죠. 15년간 삼국이 정상회담을 이어 왔고 장관급 회의만 18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멈춘 상태인데, 이를 다시 활성화해야 합니다. 양자 대화에선 한국이 약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삼국 회의에선 세 나라가 똑같이 3분의 1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거죠. 한중일 삼국 협력과 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연구 활동이 실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연구소의 핵심 목표는 정책 관련 연구 활동입니다. 연구소에서 펴낸 양질의 보고서를 통해 간접적인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셈이죠. 이 밖에 정부의 정책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외교부·청와대·통일준비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의 정책 관련 회의, 전략 회의 등에 외교안보연구소의 연구진이 직접 참여하고 있죠.”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