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작년 이어 두 번째 도전…다국적 제약사와 협업 성과로 호조

[비즈니스 포커스] 제약업 역사상 첫 매출 1조 주인공은
100년이 넘은 한국 제약업의 역사상 올해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이 넘는 제약사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인공은 유한양행이다. 상반기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매출액을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제약회사의 매출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커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도 1조 원 달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에도 유한양행의 하반기 매출액은 4919억 원으로 상반기 매출(4517억 원)보다 4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아직 회사가 밝힌 공식적인 3분기 실적이 나오지 않았지만 제약 업계나 증권업계에서 유한양행이 올해 말까지 매출 1조 원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유한양행의 올 3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5% 증가한 2560억 원으로 예상된다. 1분기 2258억 원과 2분기 2545억 원까지 합치면 누적 매출액은 7363억 원이 된다. 이는 지난해 3분기의 누적 매출액 6734억 원보다 약 8.5% 늘어난 수치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유한양행의 4분기 매출액은 2636억 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분기별 매출액을 모두 합하면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제약업에서 단일 기업 매출액 1조 원은 의미가 크다. 국내 전체 제약사의 한 해 매출액을 다 합쳐도 다국적 제약사 1~2곳의 매출액보다 적다는 점을 따져본다면 1조 원 달성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제약 시장 규모는 13조 원에서 15조 원 규모로 집계된다. 반면 세계 10위의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매출 규모는 24조 원에 달한다.


‘글로벌 제약사 가는 첫걸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제약 시장에서 매출 1위를 지키던 동아제약이 첫 매출액 1조 원 달성 기업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013년 3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 시 동아ST와 동아제약으로 쪼개지면서 매출 역시 같이 나눠졌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10년 전에도 매출 1조 원 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때 주목받던 동아제약이 분리되면서 여전히 누가 먼저 차지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외적인 성장은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유한양행 자체적으로도 1조 원 달성은 반드시 도전해야 할 목표다. 유한양행은 사람으로 치면 미수(米壽)에 해당하는 창립 88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고(故) 유일한 박사에 의해 ‘건강한 사람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회사가 설립된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 환원이라는 사명을 지켜 온 대표적 제약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특히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중 부채비율이 가장 낮아 재무 건전성이 제일 탄탄한 회사다. 보유하고 있는 이익잉여금만 1조 원이 넘는다. 양적 성장과 함께 신약 개발과 해외시장 공략 등 질적인 성장을 굳건히 다져 글로벌 제약 기업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매출 1조 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지난해 유한양행은 2012년 대비 21.5% 늘어난 9436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제약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내친김에 유한양행은 올해 매출 목표를 1조400억 원으로 올려 잡았다.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은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올해 지속적인 약가 인하 정책 시행과 경쟁 심화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올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선포했다.

유한양행이 이 같은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른바 ‘코프로모션’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코프로모션은 쉽게 말해, 즉 다국적 제약사들로부터 유명 약을 들여와 국내에 파는 것이다. 대표 품목인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 당뇨 치료제 트라젠타,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는 각각 3분기에만 200억 원대의 매출이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7% 정도 매출이 늘어난 비리어드는 상반기 실적을 이끈 1등 공신으로 꼽힌다.

물론 이와 관련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국 1등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을 대신 영업·판매해 일정 부분의 수익률은 가져갈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신약 연구·개발(R&D)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다국적 제약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코프로모션을 취소할 경우 매출 감소와 영업이익 감소 타격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제약업 역사상 첫 매출 1조 주인공은
유한양행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국내 4대 제약사 중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유한양행의 2011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7%를 넘겼지만 2012년에는 6.1%, 2013년에는 다시 6%로 줄더니 올 1분기에는 5.4%로 전년 동기 대비 0.5% 포인트가 다시 줄었다. 그 결과 올 1분기 상위 4대 제약사 가운데 유한양행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 가장 낮았다. 한미약품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15.8%, 녹십자 12.6%, 대웅제약은 8.9% 수준이다.


신약 개발은 지속 성장의 필수 조건
다만 이 같은 분석은 급격한 매출 성장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즉 연구·개발비 자체는 늘어나지만 매출 성장이 빨라 ‘비율’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코프로모션을 통해 쌓은 다국적 제약사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떨어질 수 있는 영업이익률을 수출을 통해 끌어올리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도입 품목을 들여와 파는 대신 유한양행에 강점이 있는 원료 의약품 수출 길도 열린 것이다. 지난해 C형 간염 치료제 원료 등을 공급해 1150억 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각각 331억 원, 415억 원어치 수출이 이뤄졌다.

실제로 수익성이 개선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나 증가해 300억 원을 넘어섰다. 배 애널리스트는 “원료 의약품 수출 부문에선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C형 간염 치료제의 매출 증대로 올해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86.2% 증가한 368억 원을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영업이익은 179억 원(전년 대비 +55.6%), 영업이익률은 7.0%(전년 대비 +1.8% 포인트)로 전망돼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유한양행은 신약 개발에서도 자체 개발·공동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개량 신약과 천연물 신약 출시로 수익을 내고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혁신적인 합성 신약·바이오 신약을 내놓겠다는 투 트랙 전략이다.

인수·합병(M&A)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영양 수액제 전문 기업인 ‘엠지’의 지분 36.83%를 인수해 최대 주주 지위에 올랐다. 엠지는 영양 수액제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3위인 전문 기업이다.

한편 유한양행과 함께 제약 업계 2강으로 분류되는 녹십자도 1조 클럽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녹십자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 추정치가 7180억 원에 이른다. 1조 원 돌파를 위해선 4분기에 2820억 원의 매출 실적을 기록해야 한다. 녹십자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6457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작년보다 10.1% 증가한 만큼 1조 원 클럽 가입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