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모호한 ‘창조 경제’…중국판 우버 쏟아지는데 한국은 뒷짐만

[우버 세상을 바꾼 혁신의 힘] 미래부, ‘기초공사’에 1년 허송세월
우버를 비롯한 공유경제가 창조 경제의 대표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 서비스와 기술이 기존 제도와 법과 충돌하면서 창조 경제가 산업 현장과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를 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파괴되는 것들이 많다”며 “낡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창조를 하지 못한다. 창조하라고 하면서 과거의 것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창조 경제 정의에 대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창조 경제의 의미는 첫째, 한 사람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시장의 틀을 바꾸는 것. 둘째, 정보통신 및 과학기술을 타 산업과 접목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선진국을 쫓아가는 ‘추격형 성장 전략’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상상력이 시장을 개척하고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어 가는 개념이다. 이때 한국의 강점인 정보통신기술(ICT) 및 과학기술을 매개로 융합을 통해 육성하자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우버도 이런 점을 적극 강조한다. 자사 서비스가 ‘기술 플랫폼’을 활용한 공유경제의 성공 모델이라는 것이다.

알렌 펜 우버 아시아 총괄대표는 8월 6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울시의 제재 방침에 대해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규제 사이의 갈등”이라고 말했다. 승객과 운전사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운영할 뿐 운송업을 직접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알렌 펜 총괄대표는 “운송업은 안정성과 신뢰성이 기본이므로 합당한 규제가 존재해야 하지만 창조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혁신 지향적인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인 자동차·공유 숙박 등 법 이슈 걸려
국내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우버와 같은 혁신 서비스를 기존 제도와 법규 틀 안에서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우버뿐만 아니라 무인 자동차와 무인 비행체, 공유 숙박, 온라인 부동산 중개 서비스 등 현행법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서비스들이 계속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해 막거나 서울시처럼 공공 서비스로 대체해 시장을 빼앗는 것은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짓밟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우버 사태를 계기로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탄력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가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혁신 서비스와 기술이 현행법 등과 충돌하면서 창조 경제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산업계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채 표류하는 창조 경제가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지난 1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창조 경제 전담 부처로 야심차게 출발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지난 1년은 ‘기반 조성’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6월 말 30개 정부 부처와 함께 ‘창조 경제 실현 계획’을 수립한 미래부는 첫째, 창조 경제 생태계 측면. 둘째, 신산업·신사업 창출 측면. 셋째, 창조 문화·인프라 측면에 걸쳐 세부 계획을 추진해 왔다.

창조 경제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특히 미래창조펀드(6000억 원), 성장사다리펀드(2조 원) 등 벤처·창업 펀드를 조성하고 엔젤 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한도 40%→50%, 비율 30%→50%)를 통해 융자에서 투자 중심으로 자금 조달 체계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미래부 관계자는 “벤처 창업 펀드들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되고 있고 실제로 벤처·창업 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산업·신시장 창출 측면에서는 ‘창조 비타민 프로젝트’가 주요 활동이다. 창조 비타민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이 다른 산업 분야에 비타민처럼 투여돼 경쟁력을 높이자는 융합 프로젝트다. 이와 관련해 미래부에서는 농식품 ICT 융·복합 확산 대책 등을 통해 기존 산업과 과학기술·ICT의 융합 방향을 제시했고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ICT 융합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을 대표 성과로 꼽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 13개 분야를 선정해 육성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창조 문화 조성을 위해서는 ‘플랫폼’ 조성에 힘을 쏟았다. 창조경제타운을 구축한 게 대표적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창업교육센터·창업선도대학 등을 통해 창업 교육을 확대하고 누구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창조경제타운’을 개설했으며 ‘무한상상국민창업 프로젝트’ 추진, 무한상상실 설치 등을 통해 국민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고 설명했다.


성과 없이 기초공사만 한 창조 경제
결론적으로 보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기초공사만 한 셈이다. 물론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창조 경제 특성상 조급한 성과주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창조 경제가 이런 기초공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신사업·신시장이 결국 공유경제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정호 특임교수는 “지금까지 쓰지 않던 것들을 꺼내 사람들과 함께 나눠 쓰자는 게 공유경제인데,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방식 아니냐”며 “이것을 규제로 막거나 서울시가 하면 괜찮고 민간이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미래부 또한 창조 경제 관점에서 보면 기존 규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이창희 미래부 창조경제기획부 과장은 “큰 틀에서 보면 새로운 산업이나 시장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혁파해 나가는 게 창조 경제 관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창조 경제에 맞는 정책이나 제도가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벽은 또 있다. 규제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국회 입법에서 또 한 번 표류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지난해 6월 발의된 이후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그 안에는 크라우드 펀딩 제도가 포함돼 있다.

정부가 향후 전략적으로 육성 예정인 창조 경제 분야로는 소프트웨어·콘텐츠·빅데이터·클라우드 등이 있다. 하지만 정작 산업계에서는 신사업을 추진할 때 고민이 많다. 우버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카카오 택시’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지만 아직 카카오에서는 내부적으로 사업을 확정짓지 못한 상황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여러 신사업 아이디어 중 하나일 뿐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우버 택시와 서울시와의 갈등을 빚고 관련 규제도 더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카카오가 사업에 뛰어들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김정호 특임교수는 “중국에서는 이미 우버와 비슷한 자국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며 “창조를 하고 변화를 겪다 보면 결국 기득권과 충돌하게 돼 있다. 규제와 법으로 기득권이 보장되는 이상 새로운 기술, 새로운 영업 방식은 나올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