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보다 저축 많고 물가도 안정…정부의 상승 전망은 또 다른 헛발질
최근 금융정책 당국은 은행들에 고정 금리 대출을 유도하고 있다. 그들은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 부담 증가를 미리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금리가 오를 수 있을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요인을 보면 앞으로도 저금리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일반적으로 금리는 금융시장에서 자금 수요자가 공급자에게 자금을 빌린 데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이자 금액 혹은 이자율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자율을 현재의 소비를 미래로 넘기는 데에 대한 대가(the rate of time preference:시간 선호율)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100만 원을 가지고 있고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거나 쇼핑을 하면 즐겁다. 그러나 그 돈을 은행에 맡겼다면 그 즐거움을 미루는 데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그것이 금리라는 것이다.
구조적 저금리 시대 불가피
앞으로 기대되는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우리는 현재의 소비를 미루고 미래의 더 큰 소득을 기대하며 저축을 하게 된다. 또한 물가가 오르면 그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금리도 오른다. 그래서 실질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거나 물가가 상승할 때 금리도 오르게 된다. 금융시장에서 관찰되는 명목금리는 실질금리와 물가 상승률의 합(피셔 방정식)이다.
최근 한국 금융시장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4%로 예상하고 있는데, 국고채(10년) 수익률이 그보다 낮은 3.4%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피셔 방정식이 옳다면 물가가 하락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4월까지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1.2% 상승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금융시장에 참가하는 투자자들이 앞으로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상승률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현재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채권시장이 미리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10년 사이에도 그해의 국고채(10년) 수익률이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경우가 네 번(2004년, 2006~2007년, 2010년)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해에 경제성장률이 모든 경우에 낮아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07년 5.5%였던 경제성장률이 2008년에는 2.8%로 낮아졌고 2010년과 2011년에도 경제성장률이 각각 6.5%에서 3.7%로 떨어졌다. 25년 동안 금융시장을 지켜보면서 시장은 참 똑똑하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한국 경제가 4% 성장한 데 이어 내년에도 4.2%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국고채 수익률 3.4%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떨어질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금리는 다시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저금리 상태가 오래 지속될 구조적 요인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에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한국 경제에서 ‘국내 총투자율보다 저축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투자는 자금 수요이고 저축은 자금 공급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투자가 저축보다 많아 자금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고 그래서 자금 부족으로 고금리가 지속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투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섰다. 자금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구조적으로 저금리 경제로 바뀐 것이다. 2013년에도 총저축률은 34.4%로, 국내 총투자율 28.8%를 훨씬 웃돌았다. 앞으로 몇 년을 내다볼 때 투자가 저축을 넘어 자금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기업들이 투자 여력은 있어도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만큼 높은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큰손 된 중국 자본
다음으로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설 때 그 나라의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국민소득 결정식, 즉 ‘C(민간 소비)+I(투자)+G(정부 지출)+X(수출)=C(민간 소비)+S(저축)+T(조세)+M(수입)’에서 정부가 균형재정(G=T)을 편성한다면 저축과 투자의 차이는 수출과 수입의 차이와 같게 된다(S-I=X-M). 이에 따라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서면 경상(무역)수지가 흑자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1998년부터 한국 경제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저축률이 투자율보다 5.6% 포인트 높았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가 779억 달러로 규모로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6.1%로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경상수지 흑자는 그만큼 달러가 국내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상수지 흑자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증가하면 원화 가치가 오르게 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20원대로 하락했는데, 대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반영한 것이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 물가 하락을 통해 전반적으로 국내 물가가 안정되며 피셔 방정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가 하락은 다시 금리 하락을 초래한다. 최근 소비자물가가 1%대에서 안정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실제 GDP가 잠재 GDP보다 낮아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율 하락이 앞으로도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에서 저축률이 투자율을 넘어서면서 자금의 초과 공급으로 금리가 하락했고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 가치가 상승하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금리가 오르려면 기업의 투자가 크게 늘어 투자율이 저축률보다 높아야 하는데,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게다가 한국의 은행이 채권을 사고 4조 달러에 가까운 중국의 외화보유액 중 일부가 한국의 채권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은행으로 돈이 들어오면 은행은 그 돈으로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해 주거나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내고 있지만 투자는 상대적으로 줄이고 있다. 높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가계도 은행 돈을 계속 빌려 쓸 형편은 아니다. 은행은 대출이 줄어든 만큼 상대적으로 유가증권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보수적인 은행은 주식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들어온 돈의 상당 부분을 채권에, 그것도 안정성이 높은 국채에 투자할 전망이다. 금융회사들의 채권 투자 비중은 2011년 25.8%에서 2013년 27.5%로 높아졌다.
한편 중국 투자 자금이 한국 채권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으로 수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미 국채를 사들였다. 2010년에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1조1601억 달러어치 매입해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 중 26.1%로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2011년부터 소폭 매수에 그치고 있다. 2014년 3월 현재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1조2721억 달러어치였고 그 비중은 21.4%로 낮아졌다.
중국은 2014년 3월 말 현재 3조95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그 돈 일부가 한국의 국채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올해 4월 현재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채권은 13조860억 원어치로 최근 4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었다. 외국인이 차지하는 한국의 국채 중 중국 비중은 13.6%로 아직 미국(19.5%)보다 낮지만 5년 이내에 미국 비중을 넘어설 가능성 높다. 한국의 수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0.7%에서 2003년에 18.1%로 미국(같은 기간 21.8%에서 17.7%)을 넘어서 최대 수출국으로 등장했다. 그 이후 2013년까지 이런 추세가 지속돼 중국 비중은 26.1%로 높아졌고 미국 비중은 11.1%로 낮아졌다. 이제까지 중국은 상품 교역을 통해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줬지만 앞으로는 금융시장을 통해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 더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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