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위험 커져 기존 방식 이미 무용지물…언제까지 기득권 안주할 텐가
작금에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엄청난 재난(세월호 침몰 사고)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의 실체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사고라기보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누적돼 나타난 필연적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이 방치되고 누적돼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게 된 배경으로 기득권자들의 안이함과 각종 지침의 편협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의 재난 사고를 계기로 금융이나 다른 분야의 모든 위험 요인들에 대해서도 과거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금융 위기 이후 급변하는 위험관리 패러다임
우선 한국 사회의 평가 기준이 통합돼 있는 네트워크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단기 실적 위주로 짜여 있었다. 압력솥에 비유될 만큼 편협한 기준 하에서 소모적이면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일찌감치 경쟁 제한적인 사회 상부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물론 그 덕분에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얻어 낸 것도 사실이지만 성장의 결실이 과도하게 편중되면서 점차 지속 성장의 장애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기득권의 보호 장치인 ‘대마불사(대형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나 ‘대연불사(상호간 지나치게 복잡하게 연결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시스템 위험의 핵심인데도 이를 모니터하기 위한 각종 계기판이나 기준이 낙후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주체들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입을 다문 상태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해야 그때서야 대응이 구체화되는 현실은 집단적 이기주의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최근 세계적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비로소 시스템 차원의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사회 전반의 조직 체계는 아직 변화된 의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사고가 빈발하는 가운데 더 이상 시스템 위험을 방치하기는 어렵다. 현세대가 위험을 파악하고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주변과 후손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걸러지지 않는 위험으로 인해 온갖 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갈등 요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사고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 조직이나 법률 체계, 규제 시스템은 모두 고도로 발달한 전문성에 기초해 짜여 있다. 반면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시스템에서조차 전체에 영향을 주는 거대 위험은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 위험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대응에 나설 주체를 찾기는 더욱 어렵다. 소위 공공재 성격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주체들이 초기에 맞서는 위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반면 위험 감수의 대가는 현 체제하에서 인정조차 받기 어렵다. 그래서 시스템 차원의 위험에 대한 대응 체계는 여전히 허술하고 그래서 우리가 당면한 재난의 크기는 점차 커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까지도 통섭과 융합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연결 고리에 대한 관심은 추상적 수준에 그쳤다. 사실 대형 여객선 운항에서부터 거대 금융그룹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위험 요인을 사전에 관리하면서 헤쳐 나가는 것은 전례 없는 도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인식 체계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변화는 주변과 미래의 연관을 충분히 파악하는 자세다. 소위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웃과 미래에 대한 영향 분석은 시스템의 안정에 필요한 모든 결정에 반드시 반영돼야 하는 필수적 사안이다.
그동안 우리는 변화의 혜택에 치중해 위험관리에는 소극적이고 안이한 자세로 일관했다. 안전 운항 지침이나 금융권의 건전성 기준만 보더라도 개별적인 지침의 수행만으로는 불행이나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울어져 가는 배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지시나 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한 안정 위주의 발언은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쏠림 현상이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자신을 보호하는 자구책일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각종 기준들의 타당성을 새로운 환경에서 작동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실제로 시스템 위험관리의 중요성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부터 줄곧 제기돼 왔다. 개별 기관 차원에서 건전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시스템 차원의 위험관리가 어려웠다는 때늦은 자각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이후 대응책과 관련해서는 가시적 결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개별 기관 차원에서 주변과 함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기 어렵고 이를 강제로 구현할 방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시스템 위험관리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역량이 집중된다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실전 차원의 대응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스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실천 과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사실 우리의 실패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서라기보다 가장 기본적인 수칙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시스템 위험의 본질도 사실은 조그만 위험의 관리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우리 스스로의 조그만 변화로도 얼마든지 작금의 사태와 같은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 위험관리의 핵심은 간과되고 있는 조그만 위험이 누적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정작 조그만 위험이 누적돼 커지는 배경은 자기중심적 단기 이익 추구와 직결돼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현재의 재난이 보내는 시장 신호는 이웃과 미래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시장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정부 조직도 과도한 전문 관료 체제 중심의 ‘칸막이식’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수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민간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이러한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개방과 다양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환경이야말로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적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씨앗을 살려갈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 리더십이 적극 발휘돼야 한다.
칸막이식 사고에서 벗어나야
위험관리의 첫 단계는 위험의 파악이다.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위주의 칸막이식 평가 외에도 균형적 시각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 즉, 소위 ‘상자 밖 해법’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수렴될 수 있는 개방 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평가 관련 기준도 특정 조직이나 기간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는 부분을 벗어나야 한다. 회계연도와 사업연도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일부라도 실적이나 평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 조직 관련법이나 회계 및 규제 체계의 변화가 절실하다.
그리고 파악된 위험을 토대로 효율적 대응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컨트롤 타워와 함께 수시로 개방적 태스크포스나 팀 조직 구성이 가능해야 한다. 네트워크와 함께 위원회 조직 개편을 통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역량을 수시로 집결,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제 주체들의 현상 유지적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기득권자들의 자기 이익 보호 유인이다. 선도 계층일수록 점차 늘어나는 사회 갈등 해소 비용을 감안해 변화된 환경이 요구하는 일련의 도전을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례적인 ‘꼬리 위험(tail risk)’을 줄일 수 있으며 지속적 동반 성장도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시스템 차원의 위험관리를 위해 우리 모두는 주변 환경과 미래의 예산 제약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는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일련의 변화는 어쩌면 인류 역사에 전례가 없는 주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환경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주저한다면 더 큰 파국은 불가피하다.
워싱턴(미국)=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IMF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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