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 끝나면서 작년 3분기부터 흑자 전환 속속 이어져
태양광 산업이 ‘흐림’에서 ‘맑음’으로 턴어라운드하고 있다. 오랜만에 볕이 들면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태양광 산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물 먹는 하마’ 등의 오명을 면치 못한 게 사실이다. 수익은커녕 적자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태양광 폴리실리콘 국내 1위 업체인 OCI가 흑자로 전환하며 청신호를 켰다. 한화 역시 3년 만에 적자 행진을 탈출하는 반전을 앞두고 있다. 신성솔라에너지·웅진에너지 등도 올 상반기 흑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져 줄도산하던 국내 태양광 기업들에 부활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이는 글로벌 시장의 공통적 현상이다.‘태양광 거인’들인 중국 상위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모듈 생산 1위 잉리솔라는 2013년 모듈 생산량이 3.3기가와트(GW)로 3GW 이상 생산하는 첫째 기업이 됐다. 캐너디언솔라는 2012년 1억4200만 달러 적자에서 2013년 상반기 3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냈고 트리나솔라는 2012년 2억6600만 달러 적자에서 2013년 3분기 흑자로 전환했다.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해외에서 흑자 전환 기업들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고 올 들어 국내 기업들도 개선 효과를 보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도 좋지만 하반기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시적 실적 개선이 아니라 태양광 산업 성장이라는 추세적 전환이 거론되는 이유다.
태양광은 시장과 산업을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시장은 수요, 산업은 공급을 뜻한다. 최근 3년간 태양광이 빛을 못 본 이유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은 ‘공급과잉’ 때문이었다. 태양광 시장 자체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중국이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을 발판으로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휩쓸면서 ‘지구촌 공장’이 됐고 수급 불안정에 따라 가격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격 폭락으로 채산성이 떨어져 만들수록 손해가 나면서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말 상당수 기업들의 가동률이 50% 이하로 급락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불황은 2013년 상반기까지 지속됐다.
핵심 소재 가격, 바닥 찍고 ‘회복 중’
반등의 시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2010년 말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태양광 소재 가격이 바닥을 찍고 안정 단계로 접어들면서 수익성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특히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올해 3월 말 기준 전년 대비 22.7% 상승했다. 3년간 내리막길이던 소재 가격에 변화가 생긴 배경에는 ‘공급과잉 완화’가 있다.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기업들의 전략은 ‘버티기’였고 그 사이 많은 수가 공장 폐쇄, 생산 중단,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거쳤다. 유럽의 최대 태양광 기업이었던 큐셀(Q-cells)·BP솔라(BP Solar)·스카이라이트솔라(Skylight Solar)와 미국의 에버그린솔라(Evergreen Solar)·스펙트라와트(spectrawatt)·솔린드라(solyndra)가 줄줄이 무너지거나 M&A됐다. 특히 2013년 중국 정부가 생산 용량, 효율, 에너지 사용량 등을 기준으로 태양광 산업의 진입 장벽을 설정한 후 상위 업체 위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공급과잉의 주범이었던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지원 축소 정책과 함께 줄줄이 구조조정 중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태양광 산업은 수급 안정, 가격 회복, 실적 개선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측면에서도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다. 시장을 전망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지표는 태양광발전 설치량이다. 기대 이상의 시장 확대로 주요 분석 기관들은 2014년 설치량 전망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40GW에서 올해 3월 들어 45GW 선으로 수정됐고 3월 말 다시 상향된 전망치가 나왔다. 시장조사 기관인 NPD솔라버즈에 따르면 올해 태양광 시장 규모는 50GW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계 태양광 설치량이 38GW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시장 성장률은 30%가 넘는 셈이다.
친환경 에너지,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게 태양광이다. 2013년 신·재생에너지 분야별 투자액은 태양광 1090억 달러, 풍력 784억 달러이며 2010년 이후 신·재생에너지 중 태양광 분야에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자되고 있다. 강정화 연구원은 “시장 자체는 매년 20% 가까이 성장해 왔고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데 추가적인 공급 설비 확장 계획은 별로 없는 상태로 기존 태양광 기업들에 기회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하반기 정도면 공급이 모자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구조조정을 거친 기업들이 수익성 개선을 체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덤핑으로 시장에 제품을 내놓고 다시 가격 하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기고 있다. 기업들이 3년간의 악성 재고 물량을 거의 소진했기 때문에 이제는 돈을 벌어들이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생존’의 문제에서 ‘확장’의 단계로 태양광 산업의 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양성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선도 기업을 육성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공급과잉 사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했던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태양광 산업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같은 중흥기는 아닐지라도 경쟁력 있는 곳만 살아 남았기 때문에 업황 자체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치킨게임 가속화” 시각도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내 태양광 업체들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활력이 도는 곳은 단연 공장이다. 주문이 몰려들며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한화케미칼은 1만 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풀가동 중이다. OCI도 작년 9월부터 공장 풀가동 중이며 내년 3분기에는 1만 톤 규모로 증설할 예정이다. 2012년 부도 처리됐던 한국실리콘은 작년 9월 법정 관리를 조기 졸업한 후 지난 4월부터 전남 여수 공장을 풀가동 중이다.
현재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기존 라인을 개선하고 있지만 시장이 좋아지면서 본격적인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서재홍 한국태양광협회 부장은 “마치 도요타의 린 방식으로 생산량을 늘리듯 불합리한 라인을 바꾸고 공정 병목을 개선해 주문량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지만 내년쯤이면 새로운 공장 및 장비에 투자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태양광 기업은 80% 이상 수출에 의존한다. 해외시장이 중국·일본·미국에서 점차 개발도상국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이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 중이다. 또한 ‘제조’ 중심에서 ‘설치’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제조보다 수익성이 나은 발전소 설치 사업으로 진출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시장과 산업 전반적으로 봄볕이 들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 과실을 누가 따먹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상위 업체가 호황을 누릴 뿐 다수 기업들은 아직 불황의 터널을 지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태양광 밸류 체인의 전 단계에서 호황을 누릴 때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직 글로벌 구조조정이 진행 중으로, 향후 치킨게임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동규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수요와 공급의 고성장 구조에서 반도체처럼 상위 업체의 시장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며 “결국 핵심은 원가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시장 부활의 의미는 ‘태양광의 판’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더 무게중심이 쏠린다. 공정 자체는 반도체와 비슷하지만 반도체와 달리 기술 장벽이 낮아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한 게 태양광이었다. 하지만 향후에는 정보기술(IT)과 접목해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휴대용 태양광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올해는 미래 태양광의 방향성을 볼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성진 연구원은 “태양광 산업이 턴어라운드해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추가로 뛰어드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와 내년을 지켜보면 달라진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