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상권 활성화 등 기대감…‘문화 공간’ 활용 등 보존 주장도

서울 이대역에서 시작되는 아현고가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1968년 건설된 아현고가는 오는 4월까지 철거를 완료한 후 7월까지 버스 중앙차로를 설치해 8월에 개통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효용 가치가 떨어진 고가도로를 지속적으로 철거할 방침이다. 반면 무조건 뜯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SPECIAL REPORT] 고가도로 철거의 경제학
아현고가는 1968년 9월 19일 설치된 대한민국 최초의 고가도로다. 인근 홍대입구역이나 신촌·서강대 등지에서 사대문 안의 도심권으로 막힘없이 이어지는 길로, 인력 수송과 교통 흐름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서울시도 아현고가의 역사성을 인정해 교명주·표지판 등 고가를 상징하는 주요 시설물을 서울역사박물관에 보존할 계획이다.

철거 작업에 따른 차로 변경과 축소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교통 체증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라는 특단의 조치에 나선 것은 도로의 노후화 때문이다. 아현고가는 ‘시설물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1종 시설물로, 2004년 11월부터 교량 안전을 위해 통행 가능 중량을 40톤에서 20톤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량을 초과한 하중이 몰리면 자칫 목숨을 내놓고 타야 했다는 뜻이다. 특히 서울시의 정밀 안전 진단에 따르면 노후화에 따른 보수·보강 비용이 80억 원에 이르고 매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유지·보수비만 4억 원 이상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오래돼 안전성 떨어지면 철거가 답
아현고가가 철거된 자리엔 2.2km의 버스 중앙차로가 새로 들어선다. 이에 따라 이대역 웨딩타운과 굴레방다리, 충정로 삼거리 방향으로 6곳의 버스 승강장이 설치될 예정이다. 그동안은 아현고가 때문에 양화 신촌로와 마포로의 버스 중앙차로가 단절돼 있었다. 중앙에서 도로변으로 차로를 옮기는 버스와 이를 피해 고가로 진입하려는 일반 차량들 때문에 러시아워 시간에는 상습 정체 현상이 일어나던 대표적인 병목 구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앞으로는 버스 중앙차로 신설을 통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로 출근하는 시민들의 교통 편익이 크게 늘어날 거란 예상이다.
[SPECIAL REPORT] 고가도로 철거의 경제학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고가도로는 무려 86개에 달한다(아현고가 포함). 2000년 이후에만도 16개가 새로 들어섰다. 고가도로를 설치하는 가장 큰 목적은 병목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도로의 입체화’라고 부르는데, 1960~1970년대에는 주로 고가도로가, 1980년대 후반 올림픽 이후부터는 지하도가 많이 건설됐다. 1호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나 2003년 10월 철거된 청계고가 등이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격 고가도로였다.

고가도로는 흔히 경제성장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성장과 ‘빨리빨리’가 화두였던 시대에, 막힘없이 한 번에 도심으로 진입하게 해주는 고가도로가 실제 우리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준 게 사실이다. 고가도로가 우후죽순 들어서게 된 것은 도로 교통의 패턴도 한몫했다. 30~40년 전에는 서울의 교통 패턴이 오로지 도심, 즉 사대문 안을 향했다. 강변북로·올림픽대로·외곽순환고속도로·내부순환로 같은 도시고속도로도 없던 시절이라 간선도로의 축이 모두 도심으로 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심 주변에서 병목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답이 고가도로였다.

서울의 도심 교통 패턴은 88올림픽 이후로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먼저 도시고속도로 등 고기능 도로가 속속 개통됐다. 이에 따라 도심의 교통 몸살이 분산됐고 도심 집중도도 자연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사대문 안이라는 구도심이 쇠퇴하고 신도심인 강남 지역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도심 중심 사고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구도심에 몰렸던 병목현상이 분산되자 그동안 지었던 고가도로의 ‘과투자’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현고가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곤 차량 통행량이 뚝 떨어져 ‘빈 도로’가 되기 일쑤였고 급하게 휘어진 도로의 특성상 과속에 따른 사고도 빈발했다. ‘혼잡통행료’까지 받아가며 차량의 도심 진입을 막는 판에 ‘막힘없이 도심으로 진입하게 해주는’ 고가도로는 더 이상 원활한 교통 흐름의 상징이 못 됐다. 이와 함께 교통을 바라보는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사람보다 차량이 우선하는 기존 시각에서 보행자와 대중교통을 중시하는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YONHAP PHOTO-0274> A portion of the 27 acres of public land called the Rose Kennedy Greenway is seen from a building in South Boston, Friday, July 27, 2007. The greenway was made available by the removal of the elevated Central Artery during Big Dig construction. (AP Photo/Lisa Poole)/2007-07-28 06:18:45/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portion of the 27 acres of public land called the Rose Kennedy Greenway is seen from a building in South Boston, Friday, July 27, 2007. The greenway was made available by the removal of the elevated Central Artery during Big Dig construction. (AP Photo/Lisa Poole)/2007-07-28 06:18:45/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차보다 사람 우선 정책으로 변화
서울시는 2002년 전농동의 떡전고가 철거를 시작으로 안전성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거나 경제적·환경적 가치가 떨어지는 고가도로를 단계적으로 철거할 방침이다. 현재 서울시에만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노후 고가가 40여 개에 이르고 기능적인 면도 떨어지는 고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광훈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가를 짓는다고 해서 반드시 교통량이 두 배로 느는 건 아니다”며 “철거 후 도로 용량 자체는 줄어들지만 대중교통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자동차 대당 운송 능력은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현고가는 고가 통과 후 신촌 지역으로 접어들면 다시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도심지로 진입한 반대 경우에도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환경문제도 고가도로 철거에 힘을 싣는다. 대개 고가도로가 들어선 지역은 교각 때문에 주위 상권이 붕괴되고 슬럼화까지 진행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철거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2012년 대한토목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철거된 11개 고가도로를 분석한 결과 적게는 연간 63억 원(혜화고가), 많게는 133억 원(한강대교북단고가)의 경관 가치 편익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효용 가치가 다한 고가도로 철거의 대표적인 예는 청계고가다. 1960년대 급증하는 도심 교통량을 흡수하기 위해 건설된 청계고가는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과 맞물려 철거됐다. 총 길이 5km에 달했던 고가가 사라진 자리에는 14.5km의 중앙 버스차로와 편도 2차로 도로가 설치됐다. 도로의 용량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심각한 교통 정체를 우려하는 주장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현재 청계천 인근의 교통량이 ‘지옥’ 수준인 것은 아니다. 도심지 패턴 변화와 신도심 개발 등이 이어졌고 무엇보다 아예 진입을 포기하는 차량이 늘면서 대중교통 위주의 도로 정책이 완성됐다는 평가다.

해외 사례에선 미국 보스턴시의 ‘빅딕(Big Dig)’ 프로젝트가 손에 꼽힌다. 빅딕은 보스턴시 도시 재개발을 일컫는 명칭으로, 말 그대로 ‘땅을 크케 팠다’는 뜻이다. 애초 1950년대에 지어진 고가도로가 철거된 자리에는 왕복 8~10차로, 길이 26km에 이르는 지하 고속도로가 건설됐다. 지상에는 시 외곽과 도심 사이에 607㎦ 면적의 공원과 90만㎡의 녹지가 새로 조성됐다. 1991년 첫삽을 뜬 후 2007년 12월에 종결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빅딕 이후 시 외곽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의 병목현상은 사라졌다. 지상에는 대규모 공원과 편의 시설이 들어서며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빅딕은 ‘주거와 업무 기능을 높여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21세기형 개발 프로젝트’라는 찬사를 받았고 한국의 청계천 복원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가도로의 천국이라는 일본 도쿄도 청계고가 철거를 모범 삼아 고가 철거 프로젝트에 나선 적이 있다. 일본은 1960년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도로망 개선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높은 효용 가치를 지닌 고가도로 건설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도쿄의 도로망은 고가도로를 빼놓고선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2000년대 들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청계고가 철거를 벤치마킹해 “일본 도시고속도로 망의 핵심인 C1(중앙 간선 도시고속도로)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로 국토교통성 관료들이 서울시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 한국과 같이 외곽에서 도심을 향해 찔러놓은 형태의 고가가 아니라 도로망 자체가 고가를 중심으로 짜였기 때문에 C1을 걷어낸다면 도쿄의 도로망 전체가 망가진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철거에 따른 손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
고가도로 철거로 도로의 용량 자체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결과다. 조한선 한국교통연구원 실장은 “청계고가는 철거 전에 난리가 날 것 같았지만 아예 차량 진입 시도가 좌절되면서 예상됐던 심각한 교통난은 없어졌다”고 분석했다. 청계고가 철거는 해외 언론이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 조 실장은 “이에 따라 고가도로 철거가 교통 흐름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철거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 대세가 됐고 이런 흐름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SPECIAL REPORT] 고가도로 철거의 경제학
[SPECIAL REPORT] 고가도로 철거의 경제학
보행자·대중교통 중심의 도로 정책이 큰 틀에선 맞지만 ‘철거 만능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경관과 주변 상권 활성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교통량 저하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무실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시공학 박사)는 “차량 활동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경제활동이 위축된다는 뜻도 포함된다”며 “상업용 차량 진입 불가에 따른 손해는 비용 추계에 계산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차량의 진입 자체를 막아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은 아무도 측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거가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이다. 길이 1.6km의 공원은 본래 산업용으로 이용되던 고가철로였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열차 운행이 멈췄고 1990년대 말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뉴욕시는 하이라인을 녹지 공간과 휴게 시설을 갖춘 도심형 고가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2009년 개장한 새로운 하이라인은 인근 상권 부활, 부동산 가격 급등 등 도시 경쟁력을 크게 강화했다. 흉물스러웠던 고가철로는 맨해튼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관광 명소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운용 가치만 놓고 보면 하이라인은 철거가 정답이었다. 하지만 뉴욕시는 뜯어내기보다 기존 시설 활용에 무게를 뒀다.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고 유적으로서의 가치도 보존한 윈-윈 전략이다. 심 교수는 “회현고가를 하이라인과 비슷한 콘셉트로 개발했다면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었을 것”이라며 “대세가 철거라고 해서 무조건 뜯어내기보다 도시 재생 측면에서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요코하마시는 지역 활성화에 고가도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통행에 직접 이용되지 않는 고가도로 아랫부분을 민간에 임대하는 방식이다. 임대 업종은 지역 활성화에 공헌한다고 인정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2012년 10월 시 도로국과 아동청소년국이 연계 협력해 고가도로 하부를 60명 정원의 인가 보육원으로 정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에선 임차인으로부터 도로 점용료를 따로 받는데, 자동차 주차장으로 이용한다면 연간 1㎡당 4500엔, 건축물 신축은 연간 1만3200엔을 납부해야 한다. 고가도로 밑의 공간이 발상의 전환에 따라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철거 일변도의 정책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과와 함께 도시 재생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고가도로 주변 정비, 상권 활성화, 지역 재개발 등을 놓고 철거와 보존(활용)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고가 철거를 주도하는 서울시는 철거와 도시 재생을 맡은 부서가 별개 부서여서 유기적인 협조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