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산업의 경쟁력을 말한다 |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병상 연중 다 차도 수익 안 남는 기형적 구조…올해 지출 10% 삭감 자구책
[스페셜 인터뷰] “규제 풀어야 의료 산업도 성장합니다”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 의대·치대를 총괄하는 수장인 이철(65)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하 이 의료원장)이 안고 있는 책임은 막중하다. 세브란스병원의 약 9000명 이상의 의료진 및 직원을 통솔하며 병원 살림을 챙길 뿐만 아니라 의료 산업화, 병원 시스템 수출, 특허 출원을 통한 연구 산업화, 발전기금 모금 등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산업화와 최근 의료계 이슈에 대해 지난 3월 12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이 의료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의료원장은 “막 환자를 만나고 왔다”며 하얀 가운 차림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올해 제중원으로 의료원이 설립된 지 130년이 됐습니다. 기존 신촌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병원들의 의료 인프라 현황부터 알고 싶습니다.
1885년 한국 최초로 근대 의학을 도입한 세브란스의료원은 의료기관과 교육기관 및 의학 연구 시설을 두고 있는 국제적인 메디컬 콤플렉스(Medical Complex)입니다. 신촌에 세브란스병원과 치과대학병원, 곧 개원 예정인 연세암병원이 있으며 강남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등 6개 부속 병원으로 구성된 전문 병원 그룹의 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문의이자 의과대학 교수 900명, 전공의 1000명, 간호사 3200명을 포함해 직원이 총 9300명에 이릅니다. 병상 수는 의료원 전체 3300병상이며 하루 평균 1만3000여 명의 외래 환자와 2800명의 입원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오는 4월 말 연세암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브란스의료원은 ‘최초이자 최고(the first, the best)’를 지향합니다. 암센터는 1969년 국내 최초 암 전문 진료 기관으로 출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암 환자를 치료해 왔습니다. 연세암센터를 ‘연세암병원’으로 승격하기로 하고 2010년 착공한 지하 7층, 지상 15층, 총면적 10만5785㎡ 규모의 건물이 오는 4월 준공될 예정입니다. 1100여 명의 전문 의료진 및 진료 지원 인력이 환자를 맞을 예정입니다. 기존에는 검사·내시경·수술·항암치료 등을 각각 진료과·내과·외과 등을 환자가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연세암병원은 암 종류에 따라 15개 센터를 두고 관련 의사들이 모여 전문성을 배가한 통합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암 환자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빨리 진단하고 조속히 수술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수술방도 18개로 준비해 수술실을 기다릴 필요가 없죠. 이와 함께 암예방센터·완화의료센터·암지식정보센터도 마련해 암 예방에서부터 회복 과정까지 토털 케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을 수출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외국인 환자 유치와 해외 진출 상황은 어떻습니까.
1962년 미국인 선교사 자손인 인요한 교수가 처음으로 외국인 진료소를 열었고 이후 세브란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을 진료해 왔습니다. 외국인 환자가 해외 병원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국제의료기관인증(JCI) 여부입니다. 세브란스는 2007년 국내 최초로 인증 받았고 3년마다 재인증을 받고 있어 외국 에이전시와 보험회사 등이 믿고 환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가던 러시아 환자들이 최근 심장병·암·뇌질환 치료를 받기 위해 세브란스를 많이 찾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층 환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도 활발합니다. 중국 내 남동 지역 이싱시에 2012년부터 이싱세브란스VIP건강증진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중국 굴지의 중대그룹과 합자로 지어지는 이 센터는 우리의 자본 투자 없이 의료 기술만 수출하는 것으로, 세브란스는 운영 자문과 전문 인력 파견 및 브랜드 사용료로 향후 5년간 500만 달러를 지급받을 예정입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몽골의 의료 인력 교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료 산업에서 연구 부분도 중요합니다. 특히 특허나 연구 자체가 수익의 원천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는 신생아 호흡부전증 치료약을 국산화하는 등 제약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 결과, 병원 현장에서의 여러 아이디어들이 약 700개의 특허로 등록돼 있습니다. 기업들이 제품을 출시하는 것처럼 세브란스는 ‘특허 박람회’를 열고 의료 기술과 특허를 국내외로 판매하고 있죠. 병원 수익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해 4월 의학 연구 시설인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를 개소해 의료 산업화를 주도할 연구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의학 연구센터이자 아시아 최대의 동물 실험실을 갖추고 있어 실제적인 신약 개발과 기초 의학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는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세브란스의료원의 차별적인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세브란스는 미국의 자선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 씨의 기부로 세워진 병원입니다. 태생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독지가들의 기부와 진료 수입에 의해 성장해 왔습니다. 2005년 세브란스 본관 건물을 건축할 때에도 대학 동문과 환자 및 일반 시민 등 6000여 명이 짧은 5년여 기간 동안 무려 570억여 원을 기부했습니다. 주인이 없는 기관이나 기업은 내실 있는 성장을 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세브란스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주인 의식을 갖고 있어요. 직원 모두 공감하는 주인 문화가 세브란스병원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저수가 문제로 상황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대형 병원도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상황인데요.
신촌 세브란스의 2000병상이 연중 가득 차도 병원에 수익을 남길 수 없고 임대·장례식장·주차장 등 부대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문제가 많은 거죠. 외국은 공공 병원이 전체의 50%이지만 한국은 민간 병원이 90%, 정부 투자 병원이 10%에 불과해요. 국민이 지불하는 건강보험료는 매우 적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선진국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 민간 병원의 공헌과 희생이 너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 병원을 폐쇄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제한, 그리고 수가를 통제하는 상황입니다. 병원에 압박과 부담이 과중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세브란스는 올해 지출의 10% 일괄 삭감을 결정했습니다. 최근 핵자기공명장치(MRI) 수가가 30% 깎이는 등 더 이상 수입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출 억제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료 산업 개혁 논의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정부 움직임이 현재 복잡하게 얽혀 가는 양상입니다.
의료 산업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 등과 ‘의료 산업 경쟁력 포럼’을 10년째 하고 있어요. 하지만 10년을 노력해도 한 치 앞도 나갈 수 없는 것이 실망스럽습니다. 의료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것은 규제입니다. 아마 의료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가장 많을 거예요. 외국인 환자 병상 5% 미만 규제, 전공의 선발 배점 규정, 병상 중 6인실 비중, 약품 실구매가 상환제 등 수많은 규제가 병원을 옭아매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말한 것처럼 의료 산업의 성장을 원한다면 수많은 규제를 정말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의료 산업도 국내 제조업처럼 세계 최고 수준이 되기 위한 제언을 하신다면.
우선 건강보험 제도를 바꿨으면 합니다. 의료 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이죠. 의료 수가 역시 의료 산업화 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손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인구 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질 텐데 노인 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대담 김상헌 편집장·정리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