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환경서 전기 소모 엄청나… ‘디지털 우주’ 지탱할 차세대 기반 기술 관심

[테크 트렌드] 인간 뇌 닮은 초저전력 기술을 찾아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스마트 시대의 진보는 수많은 기술적인 난제를 함께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골칫거리인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새로운 ICT 환경을 지탱할만한 에너지, 특히 전기에너지의 생산·저장·소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마트 환경이 쏟아내는 빅 데이터 시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컴퓨팅 파워와 저장 매체, 전송 장치가 24시간 뒷받침돼야 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의 데이터센터만 해도 2010년에 260메가와트, 원전 1기가 발전하는 전력의 3분의 1~4분의 1을 소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전체로 보더라도 2011년에는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 소모의 3%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 먹는 하마’ 디지털 기기들
데이터센터 바깥 곳곳에 산재한 각종 스마트폰, 실내·외 디스플레이, PC 이외에도 이제는 보편화된 무선 인터넷 등으로 소모되는 전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세 공정을 이용한 저전력 제품들이 계속 보급되고 있지만 워낙 디바이스와의 연결이 촘촘해지고 막대한 데이터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전체적인 에너지 소모는 증가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2013년 기준으로 우리의 디지털 우주를 지탱하는데 세계 전력의 약 10%가 쓰였고 앞으로도 그 비율은 꾸준히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와 관련된 사용자 경험은 만족과 한참 거리가 멀다. 당장 최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리뷰 때마다 빠지지 않는 비평거리는 배터리 용량과 수명에 관한 것들이다. 한 번 충전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방전되는 배터리 때문에 조마조마하고 충전할 플러그를 찾아 헤매는 눈길은 우리 주변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부피의 상당수를 배터리에 내줬지만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또 얼마나 배터리에 공간을 내줘야 하는지 고심하는 엔지니어들의 탄식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더욱 거대하고 쓰임새 높은 디지털 우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 바닥을 떠받치는 에너지 관련 기반 기술을 다지는 것이 핵심이고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인재들은 이 부분에 창의와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과연 여기에는 어떤 해결책들이 있을까. 그 가운데 흥미로운 방향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디지털 컴퓨터 밑바닥의 전자회로는 인간의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회로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다르다. 전자회로는 일단 매우 미세한 트랜지스터들끼리 오로지 전기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비해 신경회로는 개별 신경세포 내부에서는 전기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서는 화학물질이 신호를 전달한다. 반면 전자회로의 트랜지스터는 서로 연결 관계가 그리 많지 않고 비교적 균일한데 비해 신경세포는 수천 개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 엮인 강도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차이는 컴퓨터와 두뇌의 기능에도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일단 두뇌는 화학물질이 개입하는 부분에서 속도가 확 느려져 전체적인 계산 속도는 컴퓨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신경세포 사이의 어마어마한 연결은 컴퓨터가 흉내 내기 어려운 ‘직감’을 가능하게 만든다. 흘깃 보기만 해도 사물의 패턴을 인지하고 즉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우리 지능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차이다. 우리의 두뇌는 대략 20와트의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이는 가정용 PC에 들어가는 최신 저전력 중앙회로장치(CPU)의 전력 소모량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지난번 소개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이런 인간의 지능을 따라잡기 위해 100여 개가 넘는 CPU와 수많은 기억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수십 kW의 전력을 소모한다. 각 개인의 두뇌에 저장되는 수많은 정보와 직관적인 판단 능력 면에서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에 비해 수천~수만 배는 족히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착안해 이미 1980년대부터 공학자들은 인간 두뇌와 유사한 컴퓨터를 만들어 고효율 인지 능력을 구현하는 ‘신경 모방(neuromorphic) 컴퓨팅’ 기술을 연구해 왔다. 물론 인간의 두뇌 속의 복잡한 연결을 이해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세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기업이 다름 아닌 왓슨을 개발한 IBM이라는 점은 결코 무시해서 안 될 포인트다.

IBM은 이미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후원으로 시냅스(SyNAPSE)라는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착실히 연구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작년에도 미국 특허 취득 1위 기업을 고수한 IBM이 내세우는 대표 특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경 모방 컴퓨팅 관련 기술이기도 하다. 미래 어느 시점이 될지는 몰라도 왓슨 기능의 일부라도 대체할 수 있다면 에너지 소모를 극적으로 줄일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대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에너지 조각이라도 다시 회수해 쓰려는 기술 또한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가정의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해 내듯이 말이다.


허공에 뿌려지는 에너지 재활용도
에너지 재활용의 원천 가운데 하나는 멋쟁이 남성 연예인의 손목에서 빛나고 있는 기계식 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뭇 남성들의 로망이기도 한, 내부의 정교한 무브먼트가 드러나는 기계식 손목시계 가운데에는 손으로 태엽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움직일 때마다 내부 무게추가 흔들리면서 자동으로 태엽을 감아 주는(automatic winding) 것들이 상당수다.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이런 시계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동작 속에 흩어지는 에너지 일부를 회수해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데 쓰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기기의 에너지 소모량에 비해 이렇게 회수되는 양은 매우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줌의 에너지도 아쉬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이러한 장치로 배터리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으면 훨씬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애플이 이런 특허를 이미 수년 전에 획득했다는 점은 앞으로 이러한 에너지 회수 장치의 쓰임새가 훨씬 많아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직 기초 연구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예 배터리 없이 우리 주변 공간에 가득한 전파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다 작동하는 디바이스를 만드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미 주파수를 할당할 대역이 부족할 정도로 우리 주변은 보이지 않는 전파로 가득하다. TV와 라디오를 비롯해 스마트폰 중계기, 와이파이 핫스팟 등 모두가 전파 신호에 적지 않은 에너지를 실어 퍼뜨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대의 연구진이 낸 재미있는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굳이 새로 전파 신호를 만들어 내지 말고 기존의 널린 이러한 전파를 반사해 통신한다는 것이다. 태양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빛을 작은 거울 조각으로 반사시켰다 가렸다 하면서 반짝반짝 통신을 해온 오랜 옛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이들 연구진은 약 60cm의 간격에 초당 약 1000비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험 장치를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실용화까지는 역시 멀어 보이는 기술이지만 사물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기기 간에 간단한 통신을 주고받는 수요도 폭증해 가는 요즘, 다른 목적으로 뿌려진 전파 신호의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끌어 쓸 수 있으면 그 총량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월드와이드웹 25주년을 맞아 디지털 우주에 또 한 번의 빅뱅이 펼쳐질지, 아니면 맥없이 탄력을 잃고 부풀어 오를지 갖가지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수십억 명에서 더 늘어나기 어려운 인류가 연결의 주 대상이 돼서는 제2의 빅뱅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백억, 수천억 개를 넘어서는 사물이 연결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만 그리기에는 우리 지구와 인류가 가진 에너지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폭증해 가는 연결을 더욱 적은 에너지로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기술이 확보돼야만 그러한 디지털 우주의 거대하고 찬란한 미래가 열릴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25년 뒤 어떤 에너지 기술의 진보와 함께 디지털 우주가 성장해 갔는지 함께 흥미롭게 지켜보자.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