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웅 뿅뿅사 사장

[포커스] “재일 동포 설움 딛고 냉면으로 연매출 220억 기업 키웠죠”
일본 최대의 번화가 도쿄 긴자엔 점심시간마다 회사원들이 한 시간씩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다는 냉면 가게가 있다. 바로 ‘뿅뿅사’다. 다소 독특한 어감의 가게 이름은 이곳 사장의 성에서 따온 것으로,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재일 동포 2세 변용웅(66)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함흥식 냉면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모리오카 냉면’ 하나로 일본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휘어잡고 있다.

변 사장의 부모는 일제강점기에 돈을 벌기 위해 고향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왔다. 막노동과 고물상 일을 전전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변 사장과 형제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겪으며 살아왔다. 변 사장은 아버지가 남긴 고물상 터에서 조국의 맛을 모토로 한 뿅뿅사를 차렸고 냉면 맛을 연구하며 노력한 끝에 현재 연매출 220억 원의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모리오카 4곳을 비롯해 도쿄·센다이·가와사키 등 일본 각지에서 운영하는 매장만 11곳이다. 인스턴트 봉지면, 막걸리 사업도 하고 있다. 일본 땅에서 일궈 낸 그의 성공 스토리는 2008년 ‘MBC 스페셜-모리오카 냉면 이야기’ 편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된장·고추장·배추 씨앗 등 싱싱하고 맛있는 ‘국내산(귀화하지 않은 그에게 국내는 한국이다) 재료’를 찾기 위해 자주 한국을 찾는다는 변 사장을 지난 2월 24일 오픈 준비가 한창이던 뿅뿅사 한국 1호점에서 만났다.


맛의 비밀 캐내려 쓰레기통도 뒤져
20대 시절 도쿄에서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변 사장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자 고향 모리오카로 돌아온 후 고철상을 정리하고 음식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항상 조국은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을 동경했고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일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죠.”

현재 ‘모리오카의 명물’이 된 모리오카 냉면의 역사는 1954년부터 시작된다. 재일 동포 1세인 양용철 씨가 고향 함흥에서 먹었던 냉면 맛을 잊지 못해 조선인들의 부락이 있던 모리오카에 냉면집 ‘식도원’을 열었던 게 시초다. 차가운 국물, 고무처럼 질긴 면, 입 안에 불이 날 것처럼 매운 깍두기 등에 익숙하지 않던 일본인들은 욕을 하고 나가기도 했지만 양 씨는 고집스럽게 냉면을 만들었고 서서히 명성을 얻었다. 이후 삼천리·명월관 등 모리오카 시에는 냉면 전문 가게가 수십 곳에 달할 정도로 널리 퍼졌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재일 동포에게 모리오카 냉면은 일종의 희망이었다.

변 사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자세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모리오카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냉면 가게를 몇 번씩 찾아갔어요. 어떤 재료로 육수를 우려내는지, 어떤 조미료를 쓰는지 알고 싶어 남은 음식을 주머니에 넣어오기도 하고 새벽마다 가게의 쓰레기통을 뒤져 살펴보곤 했지요.”

요리의 기초를 알기 위해 학원에도 다녔다. 총 2년을 투자해 음식점 창업을 준비한 변 사장에겐 운도 따랐다. 마침 모리오카 시에서 주최한 ‘일본 국수 서밋’에 참가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 대회가 전국 방송(NHK)에 방영되며 유명세를 탔다. 이 때문에 신용이 쌓여 은행에서 가게 창업에 필요한 대출금도 얻을 수 있었고 1987년 오픈과 동시에 많은 손님들을 끌어모으게 됐다.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자 도쿄의 부동산 업계에서 긴자 진출을 제안해 왔고 자연스레 대도시로 ‘진격’하게 됐다.

“당시엔 긴자에 가게를 열게 됐다는 사실이 스스로 참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만든 음식을 좋게 평가하고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어 준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죠. 사업가는 기초를 잘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실행력이 무척 중요합니다.”


면 반죽부터 담는 법까지 ‘매뉴얼화’
모리오카 냉면의 최대의 특징은 끈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평양냉면은 메밀과 녹말로 만들지만 모리오카 냉면은 메밀 대신 감자 녹말가루와 밀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강한 탄성을 갖게 된다. 그간 접한 ‘스테레오’ 타입과 달리 여간해선 잘 끊어지지 않는 굵은 면에 사골 육수를 붓고 깍두기를 넣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생소할 수 있지만 “먹을수록 몸이 받아들인다”는 게 변 사장의 설명이다.

맛도 맛이지만 뿅뿅사의 성공엔 변 사장의 엄격한 경영 방침이 큰 몫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매뉴얼화’한다. 그 세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다시 가게를 찾았는데 맛이 달라지면 안 되잖아요. 누가 어떤 상황에서 만들더라도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려면 철저하게 매뉴얼화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냉면 위에 계란 반 조각을 얹고 3시 방향엔 오이, 6시 방향엔 수박이나 배, 9시 방향엔 수육, 12시 방향엔 깍두기를 넣는 식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면을 감아 담아 놓는 방향, 오이 담그는 법, 수육 손질법, 과일 자르는 법, 완성된 냉면을 손님에게 내놓는 시간 등도 다 정해져 있다. 이는 가장 맛있는 상태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그가 고안한 방법이다.

“하지만 원칙만 철저히 지킨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손님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진심을 담아야 해요.”

직원 관리도 남다르다. 뿅뿅사의 직원들은 모두 승급 시험을 치러야 한다. 기술 시험은 물론이고 논문 시험에도 통과해야만 승진이 가능한데 채점 또한 변 사장이 직접 한다. 12년째 뿅뿅사에서 근무 중인 변 사장의 큰 아들 공철(31) 씨도 얼마 전 사내 시험에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논문이 합격점을 받아 오는 4월부터 뿅뿅사의 전 지점에 제공되는 식재료와 육수 등을 관리하는 공장의 공장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공철 씨는 “사장 아들이라는 특혜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포커스] “재일 동포 설움 딛고 냉면으로 연매출 220억 기업 키웠죠”
변 사장은 최근 뿅뿅사의 한국점(뿅뿅사 제록) 오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점은 프로농구팀 LG 세이커스 선수 출신의 신제록(30) 사장이 대표를 맡는다. 신 사장은 농구선수 시절 용병으로 모리오카에 살면서 냉면 맛에 매료됐다. 지난해엔 아예 일본에 건너가 변 사장의 집에서 6개월을 ‘동거’하며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변 사장은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던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한국에 가게를 꼭 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하기 어려웠는데 모리오카 냉면을 너무나 사랑하는 젊은 청년이 한번 해보겠다고 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허락했지요. 그 눈빛과 열정이 꼭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신 사장에게 그가 주문한 것은 딱 세 가지. ‘요리학원에 등록할 것, 회계 공부를 할 것, 미적 감각을 키울 것’이었다. 변 사장은 “음식점을 하겠다는 사람은 맛의 기초를 알아야 하며 경영자이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하며 맛과 공간을 아름답게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변 사장은 ‘모리오카 냉면’을 ‘나 자신’이라고 했다. 한국의 냉면이 일본에서 독특한 맛과 모양으로 변해 활약하는 것이 지금의 재일 동포의 삶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의 땀과 눈물로 자라났고 조국의 음식으로 성공을 일궜기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뿅뿅사의 음식을 더 많은 곳에 알리고 싶습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