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탄생 스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술, 때로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내가 가끔씩 재미삼아 해보는 일이 있다. 어떤 문장을 좌중에 들려주고 출전을 물어보는 것이다.
“술을 들며 노래 부르자 / 인생살이 그 얼마냐 / 아침이슬처럼 무상하다/ 허다한 고통 / 슬퍼하고 탄식해도/ 근심 잊을 길 없구나 / 어찌하랴? 술밖에 없네.”
한 문장 더 있다.
“땅 위에서 되어가는 꼴을 보면 모두가 헛된 일이다.… 하늘 아래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밖에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것이 없다면 하늘 아래 하나님께 허락받은 짧은 인생 무슨 맛으로 수고하며 살 것인가?”

심심파적인데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하랴. 앞의 시는 조조의 ‘단가행(短歌行)’이다. 조조와 그의 아들 조식·조비 3부자는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었다. 일세를 풍미한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주창자들이다. 그들의 시는 전란의 와중에 느낀 인간적 고뇌를 진솔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두 번째 구절의 출처가 성경(전도서 8장)이라고 말해 주면 다들 놀란다. 신실한 크리스천 중에도 “진짜 성경 구절이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다. “바이블은 모름지기 엄숙해야 한다”는 편견이 작용했나 보다.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술이 식기 전에 적장 목 베어 오리다!”
기뻐도 마시고 슬퍼도 마신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술 맛 자체를 음미하기 위해? 아니면 그저 취하기 위해? 이유도 다양하다. 사회적인 교제나 종교의식, 전통 의식 때문에 마시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를 광기로 몰아가는 것은 술”이라고 동생에게 고백하면서도 알코올에 중독돼 습관적으로 마셨던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사람도 적지 않다.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년)’의 남자 주인공 같은 이도 있다.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火症)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람들의 근심 걱정을 덜어주고 쾌락을 선사하는 그를 숭배하는 교도들은 21세기 들어서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기뻐도 마시고 슬퍼도 마신다. 어떤 경우에도 마신다.

좀 과장하자면 ‘삼국지’ 시대도 술에서 시작해 술로 끝난다. 전란의 와중에 술이 빠지면 전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군웅들이 국가 대사를 논하는 자리도 술자리였다. 전공을 높이 세운 이를 치하하는 자리도 술자리였다. 심지어 적국과의 숨 막히는 첩보전과 치열한 협상이 벌어지는 장소도 술자리였다.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황제는 술을 하사했다. 이기고 돌아오면 치하의 뜻으로, 지고 돌아오면 위무의 뜻으로 내렸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위문품으로 보냈다.

소설 ‘삼국지’에서 술과 관련해 가장 멋진 장면은 관운장이 연출한다. 동탁의 전횡이 극에 달하자 반(反)동탁연합군이 결성되고 원소가 총사령관으로 추대된다. 연합군은 동탁의 근거지인 낙양의 코앞 사수관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동탁 휘하의 화웅이 연합군 장수들을 연이어 격파하자 연합군의 진격도 멈췄다.

이때 관우가 나섰다. 관군도 아니요, 의용병의 지휘관인 유비 수하의 일개 마궁수(馬弓手)가 까분다고 사령관 원소가 발끈했다. 조조가 말린다.
“지위가 미천하다고 무시하지 말고 한 번 지켜봅시다!”
조조는 관우에게 따뜻한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쥐고 말 위에 뛰어올랐다.
“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 오겠소.”
과연 순식간에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온 관우는 아직 식지 않은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조조가 유비와 따뜻한 매실주를 함께 마시면서 영웅을 논한(煮酒論英雄) 술자리도 유명하다. 유비가 조조의 식객(食客) 노릇을 하던 시절이다.
“현덕공! 그대가 보기에 지금 천하의 영웅은 누구요?”
유비가 몇 명을 거론했지만 조조는 수긍하지 않았다.
“무릇 영웅이란 큰 비전을 품고 좋은 책략이 있어야 하며 기개가 천지를 진동해야 합니다.”
유비가 물었다. “그러면 누가 그러합니까?”
“바로 현덕공과 나 조조외다!”
속마음을 들킨 유비가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마침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번개가 치자 유비는 벌벌 떠는 시늉을 하며 바짝 엎드려 젓가락을 주웠다.
“허허! 유비 이 자가 천둥번개 따위를 무서워하는 졸장부였단 말인가?”
이 사건 이후 조조는 유비의 야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나라 도독 주유가 자신에게 스파이로 온 조조의 부하 장간을 위해 마련한 군영회(群英會) 파티는 극적인 첩보전이 이뤄진 술자리였다. 주유는 술에 크게 취한 듯 멋지게 연기해 장간이 위나라 장수 채모와 장윤의 가짜 항복문서를 가져가게 만든다.


술에 취해 최후 맞은 장비
한편 유비가 빌려간 형주를 돌려주지 않자 화가 난 오나라 노숙은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를 술자리에 초청한다. 형주 반환을 거절하면 관우를 그 자리에서 척살하고 군사를 일으켜 형주로 쳐들어 갈 심산이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칼 한 자루에 시종 몇 명만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다. 상황을 눈치 챈 관우는 노숙을 인질로 붙잡고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마련된 술자리(單刀會)를 유유히 빠져 나온다.

술자리가 언제나 이렇게 극적이거나 낭만적일까. 술에 대취해 주사(酒邪)를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경우도 허다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장비다. 장비는 관우가 죽은 후 이성을 잃고 복수심에 사로잡혔다. 그는 거사를 앞두고 범강과 장달에게 관우 추모용으로 엄청난 양의 흰 깃발과 흰 갑옷을 사흘 이내에 만들어 내라고 지시한다. 불가능을 호소하자 채찍질까지 한다. 불만을 품은 범강과 장달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장비를 단도로 살해한다.

어디 이뿐이랴. 원소의 장수 순우경이 관도대전에서 야간 기습을 당한 일. 조조 수하의 유명한 장수 전위가 완성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일. 천하의 맹장 여포가 백문루에서 조조에게 사로잡힌 일.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신현에서 목숨을 잃은 일. 조조 수하의 장수로 왕실 경비대인 어림군의 책임자였던 왕필이 반란군에게 목숨을 잃었던 일. 이 모두가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해 방만해져 생긴 취생몽사(醉生夢死)의 비극이다.

만사가 지나치면 탈이 생긴다. 술은 생명과 죽음의 이중적 상징을 동시에 가진다.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일거에 해소해 준다. 해방감을 만끽해 준다. 그러나 신과 하나가 되는 신인(神人) 융합의 경지에도 오르게 할 것 같던 술이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황홀을 부르는 요정의 신비가 일순간에 악마의 덫으로 화하는 것이다.

사족 한국 사회는 술에 대해 턱없이 관대하다. 일상적 음주 공동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역설적으로 아직까지 한국이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누리는 이면에는 많은 한국인에게 술이 마약의 대체재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자주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가 개인적·사회적 손실로 이어져서야 되겠는가. 관우의 풍류만 보고 장비의 비극을 간과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2001년)’에서 주인공 동수의 외마디는 사시미 칼이 아니라 술에 찌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