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현 KT신사업본부장·전무
오세현 KT 신사업본부장(전무)은 172cm의 훤칠한 키에 논리적이면서도 유창한 말솜씨가 인상적이다. 지난 1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KT 올레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오 전무는 최근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가 주관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하는 ‘제5회 여성공학인대상’의 산업 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산업을 비롯해 연구·교육·공공 부문까지 총 4개 분야의 대상자를 선정하는 ‘여성공학인대상’은 이공계 전공자로서 기업이나 공공 부문에서 경쟁력 확산에 이바지한 공이 크거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여성 공학인을 선발하는 과학기술계의 권위 있는 상이다.
차세대 공학기술인이 될 4년제 공과대 학사·석사·박사과정의 여학생 비율이 고작해야 12~17% 수준이고 오 전무처럼 산업계에서 주류로 활약하고 있는 공학도 출신의 여성 리더가 극히 드문 현실이기 때문에 대상 수상자들은 앞으로도 후배들의 자랑스러운 롤모델이 되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상과 함께 받게 됐다.
오 전무는 “제가 83학번인데, 당시에는 여성 공학도가 정말 흔하지 않았거든요. 그때부터 쉬지 않고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 왔다고 상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도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공학도가 거의 없으니까요. 제 뒤로도 많은 후배들이 나와야 합니다”라고 했다.
오 전무는 창의성·감성·포용·배려 등 ‘여성 특유의 장점’과 냉철함·논리정연함을 무기로 한 ‘공학’을 실제 산업에 접목한 융합형 공학도로 손꼽힌다. 특히 국내 굴지의 기업인 KT의 ‘전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활약하고 있는 파워 여성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여학생이 흔하지 않은 공학 전공을 거쳐 정보기술(IT) 업계, 전자·통신업계까지 오 전무는 항상 남성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지금의 커리어를 쌓아 왔다. 이러한 현실들이 힘에 부치지는 않았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전 여자들보다 오히려 남자들과 일할 때 더 편한 것 같아요. 어찌된 영문인지 여대에서 강연하면 더 떱니다. (웃음) 대학교 때부터 항상 남학생 무리에서 공부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더 익숙한 것 같아요.”
독일 생활 12년, 합리주의로 신사업 개척
강한 카리스마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오 전무는 KT의 신사업 부문을 전담한다. 그룹 전체의 사업 방향을 총괄하고 새로운 분야의 사업 확장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심사한다.
오 전무는 공학도 출신이지만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타입이 아니다. 대기업·벤처업계까지 두루 거쳐 왔기 때문에 정보기술을 비즈니스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결혼과 동시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IT네트워크 분야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귀국했다.
LG CNS 컨설팅사업본부에서 컨설턴트로 기업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1년 종합 보안 업체 인젠 부사장, 2005년 서버 솔루션 벤처 업체 큐론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한때 ‘오세현=보안’으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이사까지 맡으면서 여성들의 IT 산업 진출을 힘껏 독려하던 그녀의 행보를 두고 ‘보안 업계의 잔다르크’라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오 전무는 2006년 동부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영입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동부그룹의 IT 계열사인 동부정보기술의 컨설팅사업본부장 겸 최고경영기술자(CTO)로 임명되며 컨설팅과 기술을 두루 책임졌고 IBM 컨설팅사업부문장을 거쳐 2010년부터 KT의 신사업 부문을 맡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수학을 좋아하던 말괄량이 여고생이 1980년대 당시 구경도 못해 본 ‘신문물’인 컴퓨터를 다루는 ‘컴퓨터공학과’로 진로를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오빠의 강력한 조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오빠는 공학이 더 유망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공학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그 오빠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독일에서 12년을 살면서 오 전무는 ‘합리주의’라는 옷을 가치관으로 입게 된다.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그냥 학교와 집만 다녔으니까요. 독일에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실속을 추구하고, 깊이 사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독일식 합리주의가 몸에 밴 오 전무에게 한국 특유의 ‘소극적인 태도’와 ‘경직된 분위기’는 꽤 적응하기 힘든 문화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전 그게 참 답답하더라고요. 모두가 속마음을 숨기다 보면 본질을 놓치게 될텐데요.”
남들 눈치를 보느라 일이 힘들어도,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아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모여 결국 우리 사회의 큰 낭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회사 생활을 할 땐 특히 진솔한 태도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제 판단이 틀리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달라고요.” 후배들에겐 따뜻한 ‘빅마마’이고 싶어
누구보다 ‘오픈 마인드’인 그를 따르는 사내의 후배들도 많다. 한 번이라도 그에게 와서 인사하는 후배들에게 꼭 밥이라도 한 끼 사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후배들에게는 자신도 겪었던 회사 생활의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대학 강연 등에서 인연을 맺은 여자 공학도 후배들에게도 가슴 따뜻한 ‘멘토’를 자처한다.
오 전무는 워낙에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대뜸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이야기한다. ‘가정집에 약국을 차려 놓고 일하면서 열두 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 로망이었단다.
실제로는 슬하에 아들, 딸까지 1남 1녀로 꿈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 안에 샘솟는 모성애를 직장의 후배, 대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단다.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많은 직장 여성들의 고민이랄 수 있는 ‘육아와 일’의 고개를 어떻게 넘겨왔는지 물었다.
“우리 아이들이 워낙 순해서 제가 워킹우먼으로 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복이 참 많죠?”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오 전무의 얼굴에 전과 다른 화색이 돈다. 발랄하고 호기심 많은 대학교 1학년 딸은 엄마의 성격을 쏙 빼닮았고 현재 강원도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아들은 차분한 성격이 남편과 비슷하지만 얼굴은 오 전무와 붕어빵이다. 1년 전 아들의 군입대를 앞두고 기념삼아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는 오 전무는 아이들 자랑에 싱글벙글한다. 게다가 ‘벌써 결혼 27주년 차’라는 자랑까지 애교 있게 곁들인다. 이럴 때 보면 ‘KT전무, 여성 공학도’라는 무거운 직함은 사라지고 ‘아들딸바보’인 ‘엄마 오세현’,오 ‘아내 세현’으로 돌아간 듯하다.
이제 연말도 다가오니 오 전무의 내년 계획을 물었다. “제 나이가 벌써 쉰한 살입니다.” 대뜸 나이 고백부터 나온다. “그동안은 앞뒤 안 보고 정신없이 살았지만 사람이 마흔다섯이 넘어가면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그간 제가 걸어온 길, 공부해 온 것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 말이죠.”
전력 질주 대신 이젠 찬찬히 숨을 고르고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싶단다.
“그간 합리주의를 삶의 기준으로 세우고 살아왔지만 혹시라도 필터를 끼고 세상을 본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 볼 겁니다. 방향도 다시 세워 보고요. 여전히 기대가 큽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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