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산소만 마시면 오히려 위험… 언제나 옳은 ‘상식’은 없어

잔잔하고 깨끗한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멋지게 수영하는 것도 즐겁지만 깊은 바닷속에 내려가 수중 세계를 둘러보는 건 정말 멋지다고 한다.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건 거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은 스쿠버다이빙의 아이콘이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신고 산소통을 메고….

물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웨이트벨트·마스크·스노클·레귤레이터(호흡기)·옥토퍼스(보조호흡기)·게이지·부력조절기 등을 고루 갖춰야 한다. 단순한 스노클링이 아니라 수중으로 잠영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공기통’이다. 흔히 ‘산소통’이라고 하지만 산소통은 용접할 때 쓰는 게 산소통이고 스쿠버다이버에게는 ‘공기통’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통에 산소가 가득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산소통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다이버들이나 용품 몰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그건 바른 이름이 아니다. 산소를 담은 게 아니니 산소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스쿠버다이버에게 ‘산소통’은 독이다
잠수에 필요한 건 산소통 아니라 공기통
만약 100% 산소만 마시면 산소 중독에 빠지게 된다. 산소 중독은 산소 분압이 1.4~1.6기압이 될 때 나타난다. 그걸 스쿠버 탱크에 넣고 다이빙하면 수심 4m에서 산소 분압이 1.4기압이 되고 수심 6m에서는 1.6기압이 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한다. 중환자실 등에서 쓰이는 산소통과는 다르다. 그러면 스쿠버 탱크에는 뭘 담아둘까. 바로 공기를 압축해 담는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숨 쉬는 바로 그 공기 말이다. 그래서 산소통이 아니라 ‘공기통’이라고 해야 옳다. 탱크에 주입된 건 모두 산소려니 하는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만들어 낸 희극적 지식이다.

어떤 조직을 재편하거나 개혁하려고 할 때 무조건 밖에서 좋다는 것을 다 끌어 모은다고 능사가 아니다. 소 잡는 칼 다르고 무 자르는 칼 다르듯이 천편일률적인 접근은 오히려 해가 되고 병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무조건 아웃소싱한다고 조직이 가벼워지고 비용이 절감되는 게 아니다. 철공소나 병원에서는 탱크에 산소를 담지만 스쿠버 탱크에는 공기를 담아야 하는 것처럼 제거하거나 외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있어야 하거나 또는 있으면 전체 공정과 작업 능률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두산그룹은 전체 조직 리모델링의 아주 좋은 표본이 되기에 충분하다. 적어도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두산은 4대째 기업을 유지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친숙하다는 것과 함께 정체적이거나 현실 안주적 이미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두산의 주 아이템은 소비재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맥주를 비롯해 콜라·필름 등이 두산의 대표 상품이었다. 그런데 그 기업이 자회사들을 정리했다. 그것도 적자 기업이 아닌 알토란같은 흑자 기업들이었다. 코카콜라·3M·코닥 등 꾸준히 이익을 얻는 기업들을 매각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기업의 매각은 대부분이 적자 기업의 처분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산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에게 쓸모없는 기업은 다른 기업에도 마찬가지고 이익을 내는 기업을 팔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판단한 혁신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두산은 모기업적 성격이 강한 OB맥주는 매각했지만 새로운 분야, 특히 중공업 분야에서는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성장의 추이는 아주 가파르다. 물론 최근 건설 경기 불황으로 건설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 거저 얻은 성공과 성장이 아니다. 정확한 자기 판단과 주변에 대한 인식을 계속해 온 결과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채우며 버티다가 어디서 한 방 터지면 그것으로 다시 덩치를 키우는 습성에 익숙한 한국 기업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굴뚝 청소부 두 사람이 청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한 사람은 검댕이로 덮이고 한 사람은 말끔했다고 치자. 누가 세수를 할까. 말쑥한 사람이 세수한다. 다른 사람을 보고 제 얼굴이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검댕이 묻은 사람은 세수를 하지 않는다. 상대 얼굴 보고 그러는 것이다. 항상 보고 자라온 게 무턱대고 기업 확장하는 것이어서 너도나도 그래 왔다. 하지 않는 게 바보인 나라였다. 그러나 더 이상 국내에서의 골목대장 싸움이 통하지 않게 됐다. 그래도 그 습관 못 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의 구조조정은 나라 살림에만 해당된 게 아니다. 기업도 대비하지 못하고 골목대장 싸움하다가 피니시블로(결정타)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매를 번 셈이다. 나라 밖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자기 현실을 인정하는 판단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 강펀치에 쓰러진 기업 숱하다. 다행히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몸을 추스르는 기업들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다. 그런 점에서 멀리 보자면 그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기업에 고마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소싱 선택한 귀뚜라미보일러의 성공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구조조정은 모든 조직에 뼈아픈 출혈을 요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상태로 내몰렸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사과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불행은 능력과 팔자 탓이려니 체념하면서 눈을 돌렸을 뿐이다. 여전히 그들의 삶은 고달프고 어렵다. 불가피한 것을 넘어선 감량 경영은 자칫 조직의 비효율성에 대한 면피나 합리화일 뿐인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면서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칼을 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무조건 붙잡아 두고 지속적인 지출을 감내하라는 게 아니다. 구조조정이니 아웃소싱이니 할 때 반드시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더 주의해야 할 것은 당장 먹기에 곶감이라고, 현재의 상황만 따지며 솎아내고 감량하는 건 자칫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 되기 쉽다. 경영자의 입장에서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하겠지만 그걸 처음 받아들였을 때 왜 그랬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등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해 왔다. 비용 절감과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아웃소싱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검토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평면적 접근이거나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자화자찬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급한 아웃소싱 때문에 품질의 균일화나 기술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속출한 사례도 많다. 그런 점에서 귀뚜라미보일러의 역발상은 주목할 만하다. 남들이 아웃소싱으로 몸집을 줄일 때 그 회사는 오히려 인소싱으로 생산 조직을 더 강화했다. 결과는 품질의 만족도와 균일화에서 성공적이었다. 더 나아가 기술의 축적과 시야의 확대는 보일러에 그치지 않고 냉난방 공조기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덤으로 얻었고 그 탄력으로 다른 일관 사업 분야에까지 진출하는 소득도 얻었다. 아웃소싱이 대세라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가기보다 반대로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하기야 ‘거꾸로’ 타는 보일러를 만들 때 이미 그런 ‘청개구리적 발상’이 엿보이긴 했다).

조직을 총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냉정한 자기 판단을 통해 결정하되 면밀한 접근과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가지를 잘못 치면 오히려 나무를 죽일 수도 있다. 감량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상식’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모두가 산소통이라고 부른다고 정말 산소를 채워 물에 들어가면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조직 간편화와 효율성 제고에만 매달리다가 그게 산소만 채워진 ‘산소통’이 될 수 있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