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자금력 무기로 시장 재편… 중국·홍콩 ‘태풍의 눈’

세계 미술품 애호가들의 눈이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2010년부터 세계 1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경매시장에서는 연일 신기록이 경신된다. 갈수록 값이 오르는 아시아 미술품은 피카소, 잭슨 폴록의 아성에 도전한다. 아시아 미술품의 힘은‘컬렉터’로부터 나온다. 자국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이며 가치를 높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SPECIAL REPORT] Go to ASIA 미술 시장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사례 1
중국 현대 화가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이 올해 미술 시장의 빅 이슈였다. 지난 10월 6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330만 달러(약 250억 원)에 팔리면서다. 경매가 시작된 지 단 15분 만에 익명의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돼 아시아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폭 4m의 2001년 작인 이 유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붉은 넥타이를 맨 젊은 공산당원들로 대체한 게 특징이다.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을 표현한 것이다.

사례 2
같은 경매에서 명나라 영락제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불상은 3050만 달러(약 327억 원)에 낙찰돼 중국 조각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불상은 명 황실이 네팔•티베트•몽골 등에 보내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1960년대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다시 중국을 찾은 이 작품을 사간 사람은 허베이성에 개인 미술관을 짓고 있는 중국 자산가, 부동산 개발업자다.


아시아 미술의 힘이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고 투 아시아(Go to Asia)’ 바람은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글로벌 미술 시장 분석 업체 아트프라이스 집계에 따르면 중국은 2010년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 33%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12년 41%로 올라섰다. 3년 연속 선두 자리를 지키며 아시아 미술 시장을 선도하는 중이다.

세계 미술 시장의 축이 유럽•미국 중심에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동진하고 있다는 데 미술 시장 전문가들은 큰 이견이 없다. 아트이코노믹스 창업자인 클레어 맥앤드루 이코노미스트는 “1950년대 세계 예술품 거래 중심지인 파리에서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pa03913808 A visitor looks at a work of art entitled  'The last supper' displayed as part of the retrospective exhibition of Chinese painter Zeng Fanzhi in the Museum of Modern Art in Paris, France, 17 October 2013.The exhibition runs from 18 October to 16 February 2014.  EPA/IAN LANGSDON
epa03913808 A visitor looks at a work of art entitled 'The last supper' displayed as part of the retrospective exhibition of Chinese painter Zeng Fanzhi in the Museum of Modern Art in Paris, France, 17 October 2013.The exhibition runs from 18 October to 16 February 2014. EPA/IAN LANGSDON
신흥 슈퍼리치가 시장 주도… 경매가 톱10 중 5명 ‘중국’
올해 특히 두 가지 포인트에서 본격적인 아시아 미술 시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 본토 시장의 개방이다. 그동안 중국이 이끌어 온 성장세는 조금 독특한 모양새였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매시장은 해외 진입을 막고 자더•폴리옥션 등 중국 경매 회사가 자체적으로 규모를 키워 왔다. 급증하는 자산가와 미술품을 5대 투자 품목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올해 각종 규제를 풀며 진입 장벽을 낮췄다. 상하이는 자유무역지대 공식 출범을 앞두고 무관세 혜택과 함께 해외 경매사의 경매를 허용하고 앞으로 이곳을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실제로 문턱을 낮추자마자 미술 경매의 양대 산맥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먼저 움직였다. 전체 경매시장의 7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진출하는 곳이 곧 미술 시장의 주무대가 된다. 크리스티가 먼저 지난 9월 26일 상하이에서 첫 경매를 열었고 중국 국영기업인 거화문화개발그룹과 손잡고 중국 본토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소더비는 베이징에서 12월 초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내년 대규모 아트 페어를 열기로 하고 올해 말 베이징에 첫 공식 사무소를 여는 등 다방면으로 준비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 중국 진출을 모색해 왔던 세계적인 경매 회사들이 아시아 시장의 메인 헤드 본토에 진출하는 원년의 해가 된 것이다.
[SPECIAL REPORT] Go to ASIA 미술 시장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두 번째 포인트는 홍콩 시장에서 감지된다. 지난 10월 소더비는 홍콩 진출 4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경매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각 분야의 신기록들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과 영락제 시대 청동 불상을 비롯해 보석에서도 최고가가 경신됐다. 국내 최대 경매 회사인 서울옥션의 김현희 경매사•근현대미술 스페셜리스트는 “아시아 진출 40년의 결실을 보는 것”이라며 “아시아 미술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다시 한 번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인 ‘아트바젤’은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해 2013년부터 ‘아트바젤홍콩’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아시아 허브 역할을 할 후보군 중에서 홍콩이 당첨된 것으로, 아시아 미술 시대의 쐐기를 박은 셈”이라고 아트바젤홍콩의 의미를 부여했다.

해외 미술 시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근 제2의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는 2011년보다 6% 늘어난 122억 달러(약 13조 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에이트인스티튜트가 분석한 미술품 경매 역사상 가장 비싼 작품 10점 중 절반이 최근 3년 사이 경신된 레코드다. 최근에는 11월 12일에는 크리스티의 뉴욕 이브닝 세일에서 역대 경매 최고가(1억4240만 달러, 1528억 원)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 슈퍼리치들이 있다. 중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도자기와 근대 회화들을 중심으로 자국 문화재들을 사들이는 열풍이 불었다. 유럽순수미술재단이 밝힌 지난해 중국인이 미술품 경매로 쓴 돈은 약 5조5923억 원으로, 2년 연속 세계 1위다. 주요 경매 회사들의 글로벌 경매에 참여하는 중국인들이 2008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

결국 ‘고 투 아시아’의 의미는, 즉 아시아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고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미술품을 팔기 위해 아시아 시장을 연구하고 또 직접 지사를 꾸려 전진하기도 하는 것이다. 소더비의 루프레히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미술가 히라노 료이츠 등을 영입하는가 하면 지난 6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고가 부동산 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스티븐 머피 크리스티 CEO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예술품 시장에서 중국은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여 줬다”며 중국 본토에 단독으로 지점을 내 향후 30년간 중국 전역에서 경매를 열 계획을 세우고 있다.
[SPECIAL REPORT] Go to ASIA 미술 시장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중국에서 시작된 미술 열기는 주변국에도 빠른 속도로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홍콩•싱가포르•대만 등 중화권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인도•필리핀 등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아시아 미술 시장 플랫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주목해 볼 곳은 홍콩이다. 홍콩은 중국에 속해 있지만 미술 시장에서는 별개의 시장으로 구분해 본다. 홍콩 시장은 아시아 미술 판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이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일찍이 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삼으면서 한국의 서울옥션 등 아시아 각국에서도 진출하며 아시아 미술품 의 ‘빅 매치’가 일어난다. 홍콩의 무관세 정책이 가장 큰 혜택으로 최근 2년간 세계 메이저 갤러리 톱3도 이곳에 지점을 열었다.


글로벌화 선결 조건은 자국 컬렉터의 관심
싱가포르는 홍콩과 같은 ‘격전지’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로 나서 정부 지원 아래 미술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트스테이지라는 아트 페어를 진행하고 별도의 문화예술 지구를 만들었다. 홍콩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가 관세 때문이라고 판단, 트리 포트라는 무관세 지역을 만들었다.

같은 중화권인 대만은 라베넬과 같은 자국 경매 회사를 중심으로 성장한 국가다. 대만 컬렉터 파워를 무기로 유명 작가들을 배출했다. 주로 중국 작품 중에서도 모더니즘 작가들과 골동품 위주의 시장이 높은 가격에 형성돼 있다.

인도네시아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후원자와 컬렉터가 늘면서 시장이 급격히 성장(2012년 39%)하고 있다. 인도는 수보드 굽타라는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하는 등 홍콩 소더비나 크리스티 주요 경매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미술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필리핀은 후발 주자로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곳이다.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위상과 작품의 가치도 크게 뛰어올랐다. 중국에선 근대미술의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우관중•자오우지•치바이스•장다첸과 현대 미술의 4대 천황으로 꼽힐 만한 쟝사오강•쩡판즈•리우웨이•아이웨이웨이가 대표적이다. 모두 중국 경매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중요한 인물들이다.

일본은 시장 상황은 정체돼 있지만 구사마이 아이웨이,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등 글로벌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뇨만 마스리아디, 인도에서는 수보드 굽타가 별 중의 별로 꼽힌다. 불과 2006년에만 해도 주목 받지 않았던 작가들이 대부분으로, 안목을 가진 컬렉터들은 그림 투자로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아시아 각국의 미술 시장 성장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정부 지원과 자국의 파워 컬렉터가 자리하고 있다. 김현희 스페셜리스트는 “자국 컬렉터들이 지원해 줘야 시장의 중요성을 알고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데 한국은 그런 문화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 시장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한국 미술 경매시장은 지난해 낙찰 총액 기준 891억 원 규모다. 뉴욕에서 거래되는 값비싼 작품 두 점을 합한 것과 비슷하다. 긍정적인 부분은 올해 숙원 사업이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문을 열었고 2013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환기 회고전을 시작으로 내년에도 100주년 작가들이 연이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계의 볼거리가 더욱 풍요로워지면서 미술 시장 저변을 확대하는 데 호재가 될 수 있다. 김현희 스페셜리스트는 “아시아에 쏠리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미술 시장의 확산 흐름에 우리도 발맞춰야 한다”면서 “미술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져야 양지에서 활동하는 컬렉터들도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죠”
[SPECIAL REPORT] Go to ASIA 미술 시장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미술품 가격은 고유의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전반의 미학적 흐름과 시의성과 역사성이 어우러져 형성된다. 기존 작가들을 중심으로 마켓이 존재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세가 있다고 보면 된다. 1차시장인 화랑에서 먼저 가격이 정해지고 이후 2차시장인 경매에서 다시 사고팔 수 있다.

폭락의 우려는 없나.
경매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오픈 시장이 됐다. 웬만한 작가들은 가격이 형성돼 있고 그 기준에 따라 동년배 혹은 비슷한 커리어 작가들의 가격도 평가받을 수 있다.

재테크에 도움이 되는 작품 보는 법이 따로 있나.

열심히 1차시장을 탐험하고 경매시장에서는 프리뷰 정도는 꼭 보길 바란다. 국내 경매 회사는 메이저 2개를 포함해 총 6개가 있는데 3, 6, 9, 12월에 큰 경매가 열린다. 프리뷰에 가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아시아 미술품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나.

아시아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국내시장은 특히 중저가 미술품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기발하고 참신한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